[ 2014-01-24, 22:18 ]
智略도 없고 謀略도 없는 水準 이하의 외교안보 라인
馬仲可/이희도/펀드빌더
*박근혜의 동북아 Initiative(이희도 조갑제닷컴 회원) 朴槿惠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통일은 주변국에도 대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변국에 하는 립 서비스(Lip Service)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협력을 이끄는 아주 중요한 외교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동북아 共榮(공영)이라는 더 큰 그림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일본 아베가 취해야 할 이니셔티브(Initiative)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치고 나오는 것은 정말 놀랍고 대단한 야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변국에 갈등과 부담을 주는 아베의 일본과 주변국에 대박의 그림을 제시하는 박근혜, 누가 옳고 누가 성공할 것인가는 不聞可知(불문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동북아 三國, 한국, 중국, 일본은 세계의 생산 동력입니다. 지금 현재와 같은 無限(무한) 생산국으로선 삼국 공히 미래가 어둡습니다. 따라서 三國은 서로 협력하여 서로가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세계 최대의 경제 블록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길로 가는 킹 핀은 일본으로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앗사리"한 사죄가 첩경입니다. 이걸 거꾸로 우경화로 이끄는 아베는 그야말로 소탐대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서히 그려가는 거대한 그림은 韓民族(한민족)이 다음 세기에 발돋움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에게 神(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智略도 없고 謀略도 없는 水準 이하의 韓國 외교안보 라인(펀드빌더 조갑제닷컴 회원)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 IMF 직전의 급한 상황에서 日本의 도움을 얻지 못해 당했던 그 수모를 또 당하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시는 경제 위기였지만, 곧 닥칠 위기는 '안보'라는 것만 다를 뿐,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다. 경제는 무너져도 다시 설 수 있지만, 안보는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對日 '버르장머리' 발언은, 당시 韓國人의 통 큰 기상을 세계 속에 과시하는 '會心打(회심타)'로서 모두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었지만, 곧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차라리 안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만든 '禍根(화근)'이었음은 아는 바와 같다. 家計(가계)에 비상이 걸리면, 衣食住(의식주)에 들어가는 돈보다 사치나 기호품에 들어가는 돈을 더 줄이게 된다. 급하고 중요한 것이 우선이고, 덜 급하고 덜 중요한 것이 後順位(후순위)가 되는 것이다. 이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외교안보 라인은 이러한 상식 중의 상식조차 머리 속에 담아 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순위와 후순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이들의 직무수행 방식은 우리에게 있어 일종의 큰 리스크라고 볼 수 있다. 외교안보 라인의 이같은 문제점 때문에, 얼마든지 더 안전해질 수도 있는 국가의 安全(안전)이 그 만큼 상대적으로 희생되고 있는 이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한 번 보자. 우리 북쪽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예측불가능한 무리가 核을 손에 들고 입만 열면 '우리 방식의 통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며 혈안이 되어 있다. 또, 우리 안 쪽에는, 여기에 동조하는 從北(종북) 내지 親北(친북) 무리가 여전히 건재한 채 때만 되면, 북쪽의 움직임에 맞춰 啐啄同時(줄탁동시, 부리로 밖에서도 쪼고 안에서도 쪼아 댐) 하려는 이 현실은 누가 봐도 비상상황이다. 비상시에는, 더욱 기본(Basic)이 중요하다.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 비상시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안보' 즉 '현체제를 지켜내는 것'이 된다. 안팎의 敵(적)에 직면한 지금의 우리에게, '自由 大韓民國'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최우선 과제를 위해서는, 후순위의 다른 것은 잠시 보류하거나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現외교안보 라인의 직무수행은 이러한 우리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감성에 따라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日本으로부터의 良質(양질)의 군사정보를, 필요 없다며 거부하는 태도는 대표적 例(예)다. 작년 1월초 日本은 H2 로켓을 이용한 야간정찰 첩보위성 발사에 성공한 바 있다. 그 이전부터 주간정찰 첩보위성 3개와 야간용 1개를 이미 운영 중이던 日本은 이 발사로 주야간 5基(기) 체제의 첩보위성을 갖추게 되어, 지구 상의 어떤 장소든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촬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첩보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地上촬영 능력(해상도)은 美國 수준에 버금가며, 이미 한반도 全域(전역)을 감시하고 있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AL격추 당시 소련조종사의 통신을 감청해낸 日本의 첩보능력은 현재 美國 등과 더불어 세계최고 수준으로 볼 수 있다. 核과 관련하여 北韓內에서 벌어지는 각종 실험이나 實戰(실전)배치 여부, 배치지역, 이동발사대의 움직임, 발사 前단계 징후 등 우리 안보를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특이 동향들은 반드시 우리가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해야만 하는 사항들이다. 이전과는 다르게 앞으로는 더욱 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하는 이유는, 北韓의 核이 이제 거의 막바지 완성을 눈 앞에 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北韓 核이 실전배치된 후 발사되면 서울까지 불과 10분 남짓밖에 안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발사 전 징후를 포착하여 선제대응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선제적 대응의 성공여부는 수 십 만 명의 목숨이 걸린 극히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가장 효과적인 정보수집 수단인 첩보위성의 활용은 아주 절대적이고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첩보위성이 한 대도 없는 우리에게 이웃 日本의 첩보역량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안보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 지금 韓日 양국간에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日本은 군사정보를 상호 공유하자고 적극 나서는데, 우리는 그런 것 필요 없다는 자세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정서(反日感情)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우리가 美國의 첩보위성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필요가 없다는 것일 텐데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다. 국가의 存亡(존망)이 걸린 안보에 관한 限(한) 대비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는 점을 망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미 제한적으로 日本으로부터 일부 군사정보를 얻고 있을 수 있지만, 공식적인 양국간 정보협약 등을 통해, 기존 美國의 첩보에 새롭게 日本으로부터의 체계적인 첩보가 더해지면 이전보다 훨씬 더 정교한 첩보로 완성되어 더욱 효과적인 대비책이 나오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첩보의 질적 완성도 여부에 따라서는 나중에 극단적인 경우 수십만 명의 목숨까지도 좌우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일에는 신경 안 쓰고, 지금 우리는 다른 것들에 몰두하고 있는 듯 하다. 지금 우리의 처해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보와 별 관련 없는 후순위에 해당하는 위안부, 야스쿠니, 안중근 등의 이슈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슈에 밀려, 정작 목숨 줄을 죄어 오는 北韓 核은 다소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듯 하다. 후순위 이슈들의 경우, 지금은 가볍게 다루는 정도로 넘어가고 나중에 核 문제 등이 해소되는 등 비상상황이 종료된 뒤에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나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家計에 비상이 걸렸는데 식구들이 기본 중의 기본인 衣食住 대책은 별로 안 세우고 나중에 형편이 되면 사도 될 명품백이나 밍크코트 같은 사치품에 우선순위를 두고 돈을 마구 지출하여 家計를 더 어렵게 만드는 상황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아울러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기둥 格(격)인 家長(가장)이나 長男(장남) 등도 모두 정신 못 차리기는 마찬가지인 상황 또한 아주 비슷해 보인다. 美國이나 日本이 자신들의 첩보위성 등을 통해 시시각각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北韓 核의 위험한 동향에 가슴 졸이며 그 대책에 고심하는 동안 정작 北韓의 核으로 가장 큰 위험에 처한 韓國은, 時差(시차)를 둔 '상황종료 후의 요약된 정보'를 주로 제공받는 탓인지 오히려, 무덤덤하게 때로는 다리 쭉 뻗고 편히 자고 일어나며 위안부나 야스쿠니 같은 후순위 이슈에 상대적으로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측면에서, 北韓 核을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美國과 日本인 듯싶다. 美國과 日本에는 '아는 게 병', 우리에게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이 각각 적용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北韓 核 등 안보를 거의 美國에만 의지한 채, 속 시원한 '日本때리기'에 온 나라 온 국민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열중하고 있는 모양새가 조금 있으면, 과거 IMF 직전 혹은 南수단의 탄약부족과 같은 상황에서 또 日本과 정면으로 만나는 경우가 꼭 생겨날 것만 같아 벌써 불안하다. 국가 간의 관계도 인간 관계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나중에 또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 굳이 敵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式의 사회생활 또는 직장생활 수칙 같은 것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듯하다. 그 상대가 나보다 더 강하고 크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외교안보 라인이, 日本을 고립시키고야 말겠다며 中國과 손 잡고 이것저것 같이 하며 잘 해오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첩보위성을 많이 보유한 中國으로부터, 우리에게 절실한 北韓 核 관련 '첩보위성 사진' 같은 것 한 쪼가리라도 얻은 적이 있는지 참 궁금하다. 19세기 말 中國의 한 외교관이 당시 朝鮮을 가리키며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燕雀處堂(연작처당)... 집이 불타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저 즐겁게 지저귀는 제비나 참새. 사람 성격은 원래 잘 안 변한다고 했는데, 國家(국가)도 그런가 보다. 작은 해프닝과 왕조의 멸망(馬仲可 조갑제닷컴 회원) 작은 해프닝과 큰 역사 《树有根、江有源》-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강물에는 발원지가 있다. 어제는 오늘의 역사이고 오늘은 내일의 역사이다. 어제, 오늘, 내일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조갑제씨가 《장성택처형은 이명박대통령의 對北 강경정책의 결과》라고 했는데, 얼핏보면 견강부회한 것 같으나 자세히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 전인후과(前因後果)라는 기본원칙이 역사에서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에는 前因後果 뿐만아니라 또 소인대과(小因大果)라는 더 중요한 원칙이 있다. 필자는 아랫글에서 야사(野史) 에 씌여진 작은 해프닝이 어떻게 정사(正史)에 담긴 큰 역사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이치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小因大果의 實例(실례)인것이다. 사서(史書)중에서도 정사(正史)는 중대사만 기록하게 되어있다. 작은 일을 기록하려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4천년동안에 있었던 대사만 기록한 정사가 있는데 이를 《이십사사(二十四史)》라고한다. 전설속의 황제(黃帝)에서 시작하여 明나라 (1366년-1644년)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崇禎)이 자살한 해 (1644년)까지 기록한 史書가 24부란 말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의 역사편찬 방식과 正史의 선정이 분명하지 않아 현존하는 기전체의 정사는 오직 《삼국사기》와《고려사》뿐인데 그 외에 편년체로 된 《고려사절요》가 正史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정사의 내용은 주로 새 왕조의 建國과정을 미화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전 왕조의 흥망성쇠 과정을 쓴것이다. 물론 大事만 쓴다. 그러나 아무리 거창한 역사적인 대사건이라 해도 이따금은 극히 작은 헤프닝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史書를 쓰는 사관(史官)들은 두리뭉실 넘어가든가 아예 고의로 누락시켜버린다. 우리나라 조선왕조(1392년-1910년)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明나라의 멸망이 한 남자의 두 여인(처와 첩)때문에 일어났다는 일은 史書의 여백에 볼펜으로 깨알처럼 끄적인 몇 글자의 작은 글씨쯤 될 것이다. 정사 본문에서는 물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일 때문에 明왕조가 멸망했다는 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명말 마지막 황제 숭정(崇禎)때 호북성(湖北省)에 모우건(毛雨健)이라고 부르는 지현(知县 즉 군수)이 있었는데 숭정2년, 1629년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황제의 부름을 받아 북경에 가서 황궁에서 일보는 어사(御史,즉 지금의 검찰총장)가 되었다. 그의 처 온씨(溫氏)는 그 지역에서 영악(獰惡)한 악녀(惡女)로 소문이 자자한 여자였는데 심지어 “江東 암사자”란 별명까지 갖고 있을 정도였다. 고향 호북을 떠나 몇 수레나 되는 서적들을 싣고 보름이나 걸려 1200키로미터나 떨어진 북경에 부임한 모우건(毛雨健)은 기쁘기 한량 없었다. 그중에서도 낙중지낙 (樂中之樂)은 “암사자”의 감시반경에서 멀리 벗어나 하루빨리 취첩(娶妾)하여 지난 날 못다한 적년회포(積年懷抱)를 푸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날밤 전라(全裸)의 몸으로 애첩(愛妾)과 희희낙낙 놀아나려고 할 때 한무리의 폭도가 문을 박차고 들이 닥쳤다. 명실 공히 청천벽력이었다. 다름이 아닌 1200키로미터 밖의 고향에 두고 온 모우건(毛雨健)의 처인 溫씨가 폭도들을 데리고 쳐들어온 것이다. 도무지 상상이 안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빨리 북경에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역참(驛站)》이란 제도 때문이었다. 역참제도는 200년 이상 명나라에서 실행되던 제도로써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즉 변방이나 지방의 군사정보나 행정자료들을 달리는 말 혹은 수레, 혹은 걸음이 빠른 역졸들이 전달하는 제도이다. 중국에서는 50리마다 1참이 있었다. 그런데 명말(明末) 사회가 점점 부패해지자 지방의 벼슬들이 제 멋대로 역참제도를 개인용도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돈만 주면 민간인도 역참수레를 타고 북경으로 갈수 있게 되었다. 온씨는 바로 이런 군용 속달 수레를 타고 북경에 나타났던 것이다. 온씨는 그날 그 소첩을 거의 죽다시피 패 주었고 자기 남편도 밤새 꿇어 앉아 머리를 조아리게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모우건(毛雨健)은 임금에게 수삼차 상주서(上奏書)를 올려보내 역참제도가 이미 너무 부패해졌으니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숭정임금은 모우건(毛雨健)의 말대로 전국의 역참(驛站)을 일언지하에 없애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지극히 중요한 일 한 가지를 숭정이 간과하였다. 즉 원래 역참에 속해 있던 작은 우두머리들과 역리(驛吏)들, 역졸(驛卒)들, 역노비(驛奴妃)들이 갈 곳이 없이 사회로 내몰린 것이다. 넓은 나라이기 때문에 역참도 수천 개에 달했고 여기에 연관된 인원도 수십만에 달했다. 그리하여 왕조에 불만을 품은 그들은 숭정이 역참을 폐지한 바로 그해인 1629년(역시 온씨가 역참수레를 타고 북경에 나타난 그해이다) 에 폭동을 일으켰는데 우두머리가 바로 감숙성(甘肃省) 은천(银川)의 역졸인 이자성(李自成)이었다. 15년 이후인 1644년 이자성 농민기의군은 북경을 점령했고 황관(皇宮)인 고궁(故宮)을 포위하였다. 그 속에는 숭정이 있었다. 이때 숭정은 이자성(李自成)이 바로 15년 전 자신이 폐지한 역참의 역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자성은 고궁의 수성(守城)부대가 완강히 저항하자 자신의 부하들에게 먼저 임금을 생포하는 사람에게 상품으로 황후, 공주, 왕비들을 나눠주겠다고 공시하였다. 이에 광분한 농민 기의군은 죽기 살기로 고궁으로 쳐들어갔다. 숭정은 황후와 왕비들, 그리고 딸들을 모아 놓고 되는대로 한 사람씩 목을 내리쳤다. 그런데 힘에 부쳐서 첫 두 여자만 죽고 그 후의 여자들은 목에 찰과상만 입었다. 숭정은 노끈 하나를 찾아 들고 허둥지둥 고궁 북쪽의 경산(景山)으로 도망치다가 “ㄱ”자형 소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 그때 숭정의 나이는 34세였고 재위 17년 만이었으며 명조의 마지막 황제인 16대 황제였다. 정사인 “明史”에는 명의 멸망원인으로 경제궁핍, 정치부패, 환관득세, 여진교란 등을 꼽고 있고 내륙지방의 농민기의군인 이자성의 민란을 들고 있다. 그리고 모우건(毛雨健)라는 이름도 잠간 언급했을 뿐 그의 처와 첩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없다. 오히려 이자성 농민기의의 원인에 대대 쓰고 있는 “추등록(秋灯录)”이란 야사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한 왕조의 몰락이 지극히 우연한 처첩(妻妾) 해프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반추(反芻)해도 여운을 떨칠 수 없다. 북한의 세습독재자 金正恩의 말일(末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북한의 기쁨조에 얽히고 설킨 해프닝들이 비화되어 우리나라 正史에 새겨질 한반도 통일 대사변(大事變)으로 자리매김할 공산이 커 보인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추호의 동요 없이 이명박 정부 때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대북정책을 실행하면 북한은 얼마 안가 필히 멸망하게 되어있다. (끝)
사법부는 판사 맘대로 재판하고 국회는 아무 법이나 찍어내고…법에 대한 존중심 모두 사라져
鄭奎載(한국경제)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오류와 과잉, 일탈과 아집에 사로잡혀 법을 종이쪽지로 만드는 데는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다. 시위 중에 깨진 유리조각을 경찰에 던진 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판사다. 김일성 묘소에 참배한 종북분자에게 동방예의지국을 운운하는 희롱조의 판결문을 쓴 자도 판사다. 좌편향 판사라는 비판도 아깝다. 전교조는 무죄요, 그들의 이름은 공개되면 안되는 보호 받아야 할 사적이익이다. 그래서 그 명단을 공개한 사람에게 사실상 평생의 소득을 차압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벌을 내린 자도 판사다. 그렇게 사상의 오염에 면죄부를 주었다.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상대방 코앞에서 멈춘다고 했던 좌익 브랜다이스 판사가 부끄러워할 지경이다. 높은 법대에 앉아 언어폭력도 인권무시도 가카빅엿을 날려대도 그만이다. 사법부의 독립이 법의 존엄이 아니라 제멋대로 재판을 의미하는 곳은 한국이다. 재판정마다 판결도 제멋대로다. 보편 법정을 요구했던 볼테르가 웃을지 모르겠다. 해병대가 아니라 한 번 판사야말로 영원한 판사다. 1988년 판사 재임용제가 도입된 이후 25년간 임기 10년인 판사 중 탈락자는 5명밖에 없었다는 정도다. 법보다 동업자 의식에 더 철저하다. 마침 법무부는 상법에 이어 상속제도를 변호사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도록 복잡하게 다듬고 있다. 유언장의 효력마저 제멋대로 정지시키는 민법개정안이다. 대체 어느 나라 민법이 사유재산을 이렇게 능멸하는지 모르겠다. 법조3륜이 한통속이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저승사자였다. 그 자체로 호위무사 따위의 무협지 놀이다. 이 정도라면 지력을 탓할 수도 없다. 저질 국가다. 무법천지의 원조는 국회다. 공화국 설계 충동은 미숙한 청년들의 특권이지만 한국서는 늙은 국회의원의 주특기다.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무자비한 입법권력의 폭주가 더 문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의 권력도 모자라 개헌을 도모하는 중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원 1명의 권한을 최대한 확장시킨 제멋대로 중(重)다수결 제도다. 그렇게 의원회관 복도는 종일 민원인들로 북적댄다. 민원인을 많이 만들어 낼수록 힘 있는 의원이라는 증좌다. 무엇보다 도처에 법, 법, 법이다. 그들은 법을 쏟아내고 있다. 19대 국회 1년 반에 의원입법 8184건을 포함해 8684건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17대 5년간의 7489건을 이미 넘어섰고 곧 18대를 넘어설 태세다. 정치과잉은 필시 입법과잉으로 치닫는다. 단언컨대 법률의 이름이나 알고 통과시키는 국회의원이 있겠는지. 쏟아지는 법률이란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특권을 보장하거나, 특혜를 부여하거나, 사유재산을 침해하거나, 기업 활동을 규제하거나, 기업인을 벌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세금을 올리거나, 그것조차 아니라면 무의미한 도덕적 주장을 선언하는 그런 것들이다. 19대 들어 이미 2293건의 법률이 그렇게 확정되었다. 예·결산법이나 결의안은 모두 제외한 수치다. 그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어댄다. 아니 읽었을 리가 없다. 법률이 많아질수록 자유는 필연적으로 제한된다. 그것을 우리는 경제민주화라고 부르고 있다. 연말 예산국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쪽지 예산은 언론에 그 실상을 보도하기조차 두렵다. 홍길동 의원이 터무니 없게도 쪽지를 끼워 넣었다는 보도는 지역구에서는 오히려 당선 보증수표로 둔갑한다. 욕을 먹으면서도 지역을 위해 미친 짓을 했다는 증거다. 그러니 다시 찍어주어야 그 짓을 또 해줄 것이다. 정상배가 들끓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행정규제는 더할 나위가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규제는 폭발이다. 이미 1000건이 넘었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의원입법이라는 꼼수를 부리면서까지 규제를 만들어 낸다. 규제는 퇴직 공무원들까지 먹고사는 밑천이다. 일하는 자가 천대받고 위선의 도덕을 떠드는 자가 우대받는 사농공상의 주자학적 국가는 그렇게 완성되고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국가권력 중 어느 곳도 경제적 자유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자유가 질식당하고 있다.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 2014-01-23, 11:29 ]
우리는 멋으로 통일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하여 통일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하여 통일해야 한다.
趙甲濟
한반도에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계급투쟁론'이라는 유령이. 한반도에 한 마리의 독수리가 배회하고 있다. '통일대박론'이란 독수리가. 정의의 독수리가 증오 분열 위선의 유령을 채어 갈 때 잃는 건 휴전선이요, 얻는 건 통일이다. 대한민국에 반대하지 않는 모든 국민들이여, 단결하라! 우리는 멋으로 통일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하여 통일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하여 통일해야 한다. 핵무장한 敵(적)과 핵무장하지 못한 우리가 대치하고 있다. 통일하지 않으면 핵무장한 군대가 핵무장하지 못한 나라를 먹어치우게 되어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빨리 통일해야 한다. 통일의 방법은 통일의지의 강화와 國力(국력)의 조직화이다. 우리가 가진 경제, 문화, 민주주의, 복지,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북한정권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북한주민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투입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 통일이냐 赤化(적화)냐, 자유냐 죽음이냐를 결단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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