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한국의 386세대와 중국의 68세대

鶴山 徐 仁 2013. 4. 28. 17:41
한국의 386세대와 중국의 68세대

 

 

1960년대생으로 1980년대 학번인 한국과 중국의 엘리트는 각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상으로 삼는다.

 

.최성재  

 

 

1980년대 한국에서 대학 다닌 청년은 5천년 역사상 최초로 배고픔을 전혀 겪어 보지 않은 세대, 축복의 세대다. 그들은 정보화시대 첫 세대이기도 하다. 풍요의 세대는 인텔의 CPU 80286, 80386이 탑재된 개인용 컴퓨터를 보듬으며, 286컴퓨터와 386컴퓨터를 부모나 애인보다 소중한 보물 1호로 애지중지하면서, 이전 세대나 대학 안 나온 사람들을 싸잡아 구닥다리, 아니 원시인 취급했다. 그중에서 인텔 80386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윈도 체제가 아니라 도스 체제였지만, 그것은 놀라운, 차원이 다른 신세계를 보여 주었다. 후에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90년대에 30대가 되면서 30대 연령,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에서 각각 첫 숫자를 따와 386세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50대에 접어들었다. 그럼 586세대인가. 언어의 사회성 때문에 용어는 그렇게 제멋대로 바꿔지는 게 아니다.

2012년 11월 18차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원 25명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이중에 차세대, 곧 5세대 서열 1위와 2위 습근평(习近平 1953년생)과 이극강(李克强 1955년생)에 이은 6세대 두 사람이 눈길을 끈다. 서열 14위의 손정재(孙政才)와 22위의 호춘화(胡春华), 이들은 둘 다 1963년생으로 나머지 23명 1950년대생과 1940년대생 뚜렷이 구별된다. 2023년부터 이들 둘 중에 한 명이 주석, 다른 한 명이 총리가 된다는 포석이다. 중국에선 1960년대생이 특별하다. 1966년에서 1976년까지 문화혁명 기간 동안 지식인은 사상개조의 대상이었다. 대학은 10년 동안 폐쇄되었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긴 했지만, 학력에 의한 게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과 모택동에 대한 충성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전공서적을 거의 읽을 수 없었다. 이렇게 대학에 들어간 이들은 부모 또는 본인이 노동자와 농민과 군인인 경우로 한정했기 때문에 공농병(工農兵) 청강생이라 한다. 현 국가 주석 습근평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1975년에 청화대에 들어갔다. 말이 대학이지 그는 거기서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했다. 법학박사 학위도 있지만, 2002년 복건성 성장 시절에 받은 거니까, 명예박사라고 보면 된다.

1976년 영원한 주석 모택동이 죽자, 중국에선 1977년 대학이 10년 만에 비로소 학문의 교문을 활짝 연다. 중국은 9월 학기니까, 한국으로 치면 77/78학번부터 전문지식을 갖춘 지도자가 전국적으로 길러지기 시작한 셈이다. 손정재와 호춘화가 바로 그 세대다. 호금도를 비롯한 중국의 4세대는 제대로 대학 교육을 받았지만, 현재 5세대는 그보다 10년 연하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6세대부터는 다르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일찌감치 호금도 세대에 선발 68세대, 양성 79세대라 하여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 다닌 사람과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대학 다닌 사람 중에서 지도자를 선발하고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에 대한 중국 지도자의 기대는 각별하다. 세계적 지도자와 어떤 부문에서도 뒤떨어질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위 30%에 속한 1980년대 학번은 386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선배들을 우습게 보았지만, 그것은 단지 기능적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1950년대 학번과 1960년대 학번 운동권의 정신적 노예로 전락했다. 그들의 비서로 발탁되거나 <백년전쟁>의 행동대원에 낙점됨을 무상의 영광으로 알았다. 자기 생각이 거의 없는 아이언 맨(iron man)이었다. 로봇이었다. 비판 의식도 없었다. 그들의 비판이란 것은 기껏 선배들이 불러 주는 대로 달달 외어서 고래고래 울부짖는 것이었다.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조정래의 <태백산맥>, 백낙청의 민족문학, 강만길의 민중사학에서 찬란한 여명을 보고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들의 정신적 주인이 일러 준 바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한강의 기적은 부정하고 매도했지만, 북한의 정통성과 자주성은 공공연히 찬양하고 맹종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배운 바로는 한국의 자유민주는 친일파와 군바리의 독재에 지나지 않았고, 한국의 시장경제는 신식민주의와 천민자본주의의 야합에 지나지 않았다. 단 그들 자신이 누리는 무한한 자유와 넘치는 풍요는 누가 정치했어도 달성했을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누구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북한의 세금 100%는 무상복지 100%로 알았지만, 한국의 세금 20%는 독재정권의 노동자농민 착취로 보았다. 한국은 상위 10%가 세금의 90%를 내지만, 정경유착과 매판자본주의 탓에 대기업이 탈세의 온상이라고 보았다. 악의 온상이라고 보았다.

운동권 선배가 집도하여 심고 붙인 청맹과니 눈과 사오정 귀는 386운동권만 가진 게 아니었다. 개인적 출세를 최고의 목표로 삼은 나머지 대부분의 386세대도 그들에게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갖고 은밀하게 모조 청맹과니 눈과 모조 사오정 귀를 구입해 두었다가, 어떤 분야에 진출하든 후에 자기 목소리를 낼 위치로 올라가면, 자랑스럽게 그걸 눈에 붙이고 귀에 달았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노조로 대표되는 경제, 대학에 이어 초중고도 아우른 교육, 문화와 언론, 시민단체, 사법, 행정에도 어느새 이들이 중추적 위치로 올라갔다. 이들이 가장 들떴던 때는 청와대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때였다. 그들의 코드(code 주파수)가 그대로 청와대의 코드가 되었고 언론의 코드가 되었고 국회의 코드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정통성의 출발점으로 삼는 5.18 성역은 6.15와 10.4로 영글었고, 5.18묘소에는 600만을 학살한 부자(父子) 독재자 하수인들이 대거 내려와 비장한 표정으로 묵념하며 200여 명을 학살한 원흉으로 그들이 공동으로 형형한 눈으로 지목하는 전두환을 잘근잘근 욕했다. 남북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중국의 68세대는 모택동이 인간개조의 완장을 하사한 홍위병을 앞세워 3천만을 학살하는 걸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문화혁명 기간 중에는 중고등학교도 사실상 폐쇄되었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고 기성세대를 모조리 타도대상으로 삼았던 햇병아리 홍위병으로 활약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 어렸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죄의식도 없고 부채의식도 없다. 여전히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모택동은 공산당의 태사조(太師祖)라 감히 비판하지 못하지만, 그저 덤덤하다. 하나의 역사로 볼 따름이다. 대신 그들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중국식 자본주의를 사상이자 생활로 여긴다. 등소평의 향전간(向前看 앞을 보라)을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향전간(向錢看 돈을 보라)으로 의역할 줄도 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보면서 섣부른 자유민주가 중국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인 주장인지, 까딱 잘못하면 제2의 문화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불쏘시개인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대신 이들은 자기 세대에는 잘하면 대만의 장경국 체제를, 비록 1949년 이래 계속된 계엄 체제(1987년 해제)였지만 상당한 언론 자유와 제한적 다당제를 도입한 1980년대 대만의 장경국 체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중국 공산당의 집단지도 체제에서 말석을 차지한 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개혁개방의 첫 수혜자인 중국의 68세대는 시장경제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문화혁명의 악몽을 떨치고 G2로 성장한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충성심도 그 못지않다. 등소평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내일의 소강(小康)사회와 모레의 대동(大同)사회를 향해 거인의 발걸음을 뗀 것에 대해 안도의 숨을 내쉬고, 그 첫 수혜자가 된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안다. 이 점에서 배은망덕한 한국의 386세대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이들은 능력과 지식도 한국의 386세대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모택동을 본받아 문화혁명하고 김일성을 본받아 문화소조(文化小組) 운동하느라, 컴퓨터 다루는 것 외에는 세계수준의 학문을 익히지 못한 한국의 386세대보다 사상적 측면이든 전문지식 측면이든 중국의 68세대가 더 낫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산국가가 천지개벽한 후에도 여전히 문화혁명하던 모택동을 존경하는 한국의 386세대는, 개혁개방은커녕 아직도 중국식 문화혁명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의 독재체제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 있는 한국의 386세대는 죽었다 깨어나도 북한의 실상을 모를 것이지만, 중국의 68세대는 천리 밖을 비추는 투명거울을 들여다보듯 북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중국의 68세대는 국가 이익 측면 외에는 북한에 대해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중국의 5세대도 일부 갖고 있는 북한과의 동지적 연대의식은 털끝만큼도 없다. 도리어 장경국 체제보다 월등히 자유로웠던 박정희 체제에 대해선 무릉도원을 바라보듯 황홀히 바라보고, 부잣집 아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해괴망측하게 모택동 체제보다 악랄했던 김일성 체제에 대해 편집증적인 환상을 갖고 있는 한국의 386년 세대를 보고 그들 세대가 오면 386세대가 주도할 한국에게는 가르칠 것이 있을 뿐 그로부터 배울 게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들에 비해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한국의 386세대가 어느새 한국의 주도세력으로 떠올라 이제 정치만 장악하면 모든 걸 장악하게 될까 봐, 중국의 68세대는 걱정 반 기대 반일지 모른다. 그전에 아마 한국에는 큰 사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리하여 한국의 친북좌파가 거짓말같이 자취를 감추고 정통우파가 남북 통틀어 주도세력이 됨으로써 중국의 68세대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5년 내지 10년이 바로 격변과 창조의 시대가 될지 모른다. 스스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자들이 언제까지나 원님이 오신다며, 고도를 기다린다며(Waiting for Gogot) 꽹과리 울리고 나팔 불며 대로를 휘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이윽고 물러가면, 신문과 방송과 포털에서 말과 글이 정화되면, 김일성 주석 대신 독재자 김일성, 김정일 위원장 대신 독재자 김정일, 김정은 제1위원장 대신 독재자 김정은이 등장하면, 이순신 장군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2013. 4. 28. 충무공 탄신일에)

[ 2013-04-28, 16: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