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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제자의 모습
예수님의 가르침을 머리로 배웠다고 해서 그분을 진정으로 따른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환경에서 그분을 따라야 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은사와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제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왕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 교회의 역할은 우리가 받은 사명을 세상 속에서 잘 감당하도록 훈련시키고 돕는 것이다. -마이클 스펜서의 [순전한 교회로 돌아가자] 중에서-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리에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주권을 인정하는 순종이 있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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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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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
삶이란, 살아온 날들을 등에 지고, 한계단, 한계단 오르는 것.
그 계단을 다 오르는, 그 마지막 날이오면, 빛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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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성무 경북대학교 화학과 졸업 2009 일양약품 중앙연구소 2009 경북대학교 대학원 화학과 졸업 2011 (주)두산 전자 B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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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는 - 욥 37:22-24 |
22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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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또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를 통해 자신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을 계시하기도 하십니다. 우주의 온갖 기묘한 일들과 신비한 현상들을 다스리시며 관장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면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너무도 작고 보잘 것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찬란한 영광으로 옷 입으시고 큰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시는 창조주이시므로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분의 존재를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분이 받아 마땅하신 영광으로 공경하고 영화롭게 해 드려야 옳을 뿐입니다.
두려운 위엄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22절). 하나님께는 모든 자들이 깊은 경외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위엄이 있으십니다. 온갖 대적자들이 두려워하기에 족한 초월적인 위엄이 있으십니다. 출애굽기 15장은 <하나님께는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시다>(11절)고 했습니다. 구약성서가 계시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아무래도 두려운 위엄으로 가득차신 조물주 상입니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하나님 이미지는 보다 부드럽고 관대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이전에 위엄에 찬 두려우신 하나님, 구약적인 하나님 이미지에 대한 경외심도 가져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정말 두려우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여 그의 위엄을 경외하며 산다면 세상이 이처럼 무질서하고 혼탁하겠습니까? 우리는 자녀들이나 후세들에게 필히 두려우신 하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위엄에 찬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가는 법을 먼저 교육해야 합니다. 얼마나 자명한 사실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엄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그 무엇을 두려워하겠으며 그런 사람의 양심과 도덕성을 과연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무한한 공의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신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23절). 우리는 우리의 유한하고 제한적인 이성으로 하나님의 그 초월적인 속성들을 다 헤아릴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달걀 껍질 속에 저 넓은 바다를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심판과 의, 지혜와 의에 있어서도 무한히 크십니다. 감히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위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한하시므로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결코 부당하거나 그 누구에 대해서도 억울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심판 역시도 그 행위에 상당한 공의로운 징계 이상은 결코 행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정의의 보루라는 이 세상 법정은 절대 정의롭거나 공의롭지 않습니다. 지은 죄만큼 벌을 받지도, 또 벌 만큼 죄를 지은 것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고 피해의식도 큰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이나 공의와 정의를 결단코 굽히지 아니하십니다.
지혜롭다 하는 자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24절). 하나님은 지혜의 원천이시고 본체이시므로 사람이 젠 체하며 스스로 자기의 지혜를 과시하고 교만하게 굴면 그를 경멸하십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또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고전 1:25)고도 했습니다. 스스로 지혜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못났으며 자신의 평가보다 훨씬 더 어리석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경외하십시오. 솔로몬처럼 겸허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런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이나 무시를 당하면 그 인생은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부디 한없이 겸손하셔서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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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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