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10월06일 QT - 시간의 관리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10. 6. 20:24



시간의 관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계셨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잊고 있는 다음의 사실들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즉, 영적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의 연약함을 보강할 결심을 굳히고 내적인 힘을 모으기 위해 시간을 따로 떼어 두는 적절한 예산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중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삶은 전적인 기도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를 세우기 위해 밤새 기도했으며, 많은 사역을 위해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나가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었던 120명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기도하는 삶은 능력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연결되어지고
나무의 결이 가로와 세로를 겹쳐 만나 한몸을 이루었다
부드럽던 그 나무들이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서로가 서로의 힘을 보완하며
강력한 그 무엇인가가 되었다.
한몸으로 연결되어질 것을 말씀하신 주의 음성을 다시 묵상한다.
글쓴이 : 정기환 필리핀 마닐라 거주, 선교사
한인 디아스포라 포럼(www.handifo.com) 상임총무
인터넷 라디오 방송 KCN 섬김이 되고 싶은 삶 - '다리놓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욥이여 - 욥 33:1-7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3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욥은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간절히 원했지만 하나님은 끝내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4의 인물인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이 계속 말씀해 오셨고, 너무나 크고도 분명한 어조로 지금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욥이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데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언제나 하나님이 꿈과 고난과 메신저들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며 욥을 훈계합니다.

내 말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 원하노라>(1절).
엘리후는 욥이 다시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욥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시야를 갖도록 훈계했습니다. 확실히 그는 엘리바스, 빌닷, 그리고 소발이 내지 못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욥으로 하여금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운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지막에 엘리바스와 빌닷, 소발은 책망하시지만 엘리후는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욥 역시 도 엘리후의 말에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네 번에 걸친 엘리후의 말은 하나님에 관한 욥의 잘못된 관점을 하나하나 수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으시며(33장), 불공정하지도 않으시고(34장), 무정하시지도(35장), 무능하시지도 않으시다(36-37장)고 합니다.

전능자의 기운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4절).
엘리후는 자신의 말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명철, 하나님의 영과 전능자로부터 받은 생명의 기운을 최대한 담겠다고 다짐합니다. 욥을 향한 엘리후의 담대함을 보십시오.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5절). 이는 다 <하나님의 영>과 <전능자의 기운>이 그를 지키시고 고무하심을 확신한 데서 온 용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일합니다. 엘리후의 고백처럼 다 <흙으로 지으심을 입은>(6절)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간증처럼 우리는 다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나는 흙으로 빚어진 질그릇에 불과하나 내 안에 하나님의 영과 전능자의 기운이라는 보배가 담겨 있기에 존귀하고 당당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엘리후의 용기와 담력에서 믿는 자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깊이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내 위엄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7절).
엘리후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눅이 들거나 망설이는 일 없이 단호한 어조와 정확한 판단으로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을 비판하고 충고도 하지만 그러나 결코 넘치거나 교만하지는 않습니다.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다>,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다>,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한다>,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한다>는 등의 표현에서 우리는 엘리후의 사람됨과 겸손함을 넉넉히 느낄 수 있습니다. 솔로몬도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구하여 지혜와 명철을 얻었고, 또 그것으로 백성들을 재판하고 나라를 치리하여 천하의 현군이 되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엘리후의 지혜, 용기, 겸손 같은 덕목이 그대로 당신의 것이 되길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