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17 23:27
-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
도덕적 하자가 큰 총장은 물러나야
KAIST는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총장이 학생과 교수를 고소하고, 학생·교수·동창회가 총장 퇴임을 요구하더니 드디어 해임을 논의하는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서남표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사장을 비난하면서 고위층 외압설을 흘리는 등 자신의 거취문제를 정치판으로 끌고 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무엇이 학생을 위하고 KAIST를 살리는 길인가라는 교육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정치적 개입도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해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서남표 총장은 사퇴해야 마땅하다.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해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혼란이 종식된다. 학생을 교육하는 대학의 총장 거취문제에서 사법적 판단보다 더 준엄한 것이 도덕적 평가다. 서남표 총장은 6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도덕적 하자를 너무 많이 보였다. 지난 40여년간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이공계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하던 KAIST는 서 총장 취임 이후 잔잔한 날이 없었다. '개혁'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온 그는 KAIST의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시작했다. KAIST의 세계 평판도가 60~70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은 교수들의 무능과 학생들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단정 짓고 시작했다.
지난 6년간 서 총장은 KAIST라는 버스의 난폭 운전기사였다. 버스에 실려가는 학생과 교수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정부 지원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6000명의 학생 정원을 1만명으로 급격히 늘려서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했고, 교수 임용과 승진에 총장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유로운 연구분위기가 실종됐으며, 학생들의 창의성을 강조하던 교육은 경쟁을 통한 등록금 전쟁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사고가 나기 시작했다. 학생과 교수가 자살하는 등 학교 분위기는 피폐해졌다. 사고 당시에도 서 총장의 퇴출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교수들이 많았지만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하며 비상혁신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서 총장과 협조하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3개월여에 걸쳐서 학생·교수·보직자가 비상대책을 준비했다. 대책이 나오면 집행하기로 약속했지만 서 총장은 집행을 거부했다. 본인이 서명한 합의를 부인했고, 이를 지적하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조차 비상혁신위원회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구성원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동안 개혁의 아이콘으로 보이려는 욕심에서 과장된 홍보는 공명심이 지나치다는 정도로 넘어갔지만 위기를 넘기기 위한 거짓말은 교수는 물론 학생들에게서도 신뢰를 잃었다.
서 총장 개인이 출원한 특허의 실용화를 위하여 정부의 연구비와 학교의 일반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사익을 위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던 차에 특허 명의문제가 불거졌다. KAIST 재임 중 얻은 서 총장의 특허가 60개에 이르는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다. 더구나 다른 교수의 특허를 서 총장 명의로 보유하고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자 사실 해명을 요구했고 서 총장은 그 교수들과 과제 참여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학교 행정의 책임자로서 특허 관리가 부실하고 특허 상납 의구심까지 드는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한 사과를 기대한 것이 무리였을까? 이러던 차에 언론 배포 자료를 통하여 또 한 번 거짓말을 한다. '총장의 결백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2년간 다른 교수의 특허를 보유하고 이를 또 자신의 명의로 국제 특허를 제출한 것이 결백이란 말인가?
KAIST 최고 의사 결정기관인 이사회와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보면서 서 총장의 교육 철학과 독선적 경영의 폐해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사회의 결단을 기대한다.
- 이병욱 건국대 기계공학과 교수
세계 1위 대학의 꿈은 물거품 되나
MIT를 능가하는 대학을 모국에 완성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서남표 KAIST 총장이 취임한 지 6년여가 지났다. 모든 학부 강의의 영어화, 새로운 교수 승진제도 등 서 총장이 시작했던 제도들은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상당 부분 수행이 되었고, 그동안 KAIST가 세계 정상의 대학에 가까워진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내 다른 대학과는 너무 다른 급진적 제도에 대한 거부감과 부작용은 많은 구성원의 불만을 초래했고, 작년 초 학생들의 자살 사태에 대한 비판에 이어서 작년 말부터 KAIST 교수들이 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KAIST 이사회도 이사들의 교체와 맞물려 서 총장을 사퇴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 총장이 보여준 모국에 대한 애정과 학교에 대한 열정, 외형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사퇴 요구에 몰린 것은 결국 겸손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의 부족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의 강연과 카이스트 동문들에게 보낸 편지, 소속 구성원에 대한 그간의 대응을 볼 때 서 총장은 동양에서 수장(首長)에게 기대되는 덕(德)이나 정(情), 인자함 등의 리더십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서 총장의 이러한 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중도 사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결자해지(結者解之)가 옳기 때문이다. 그가 대학 개혁을 위해 시작한 굵직굵직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최종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서 총장 본인이다. 둘째는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 최고책임자를 갑작스럽게 사퇴시키는 것은 조직의 마비 및 기존 제도의 혼란 등 비상사태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이 비상사태는 좋지 않은 결론으로 치닫는 일이 흔히 있어서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들여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탑을 한번에 무너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이는 KAIST에 투자해온 국가로서도 큰 손실이다. 셋째는 임기가 있는 기관장은 임기 후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뽑았으면 조급증을 버리고 임기를 지켜주는 것이 임기제 및 책임 행정의 취지에 맞으며 후임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KAIST 교수들이 지금 느끼는 치욕과 분노를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노력하여 다시는 미국 MIT 출신 교수가 이 땅에서 자기들 방식의 일방주의를 정당화하지 못하도록 KAIST의 수준을 최정상급으로 높이는 것이 본질적 해결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KAIST 동문이나 교수 중에서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고 KAIST의 세계 랭킹이 MIT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KAIST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러플린 총장이나 서남표 총장의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질적인 외국인 감독 히딩크를 기용하고 믿었던 모험이 없었다면 과연 월드컵 4강을 대한민국이 이룰 수 있었을까 반문하고 싶다.
KAIST 최고 의사 결정기구이면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사회가 그간 총장과 교수들 사이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을 완화하고 관련 쟁점들을 조사하도록 조치하고 서로 합의점을 찾는 데 역할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이제 2년치 연봉을 미리 주고 총장과의 계약을 해지하려는 것은 예산 낭비는 둘째로 치더라도 장차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개혁적 기관장들에게 가해질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무사안일의 지도자들이 유난히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칠순이 훌쩍 넘은 고령에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원로 과학자 서남표 총장이 이번 사태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통해서 임기 후반기에 유종(有終)의 미를 KAIST와 대한민국 국민에게 선사할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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