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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계획을 버리는 훈련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무엇이 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있다. 즉, 교수, 의사, 사업가 등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가가 우리 하나님의 관심사라는 것이다. -이용규의 [더 내려놓음] 중에서-
우리의 관심은 늘 무엇이 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되고 나서 그 다음의 삶의 비전과 목적이 무엇인지 물으십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나의 계획을 버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수정하기 위해 두 배의 고통을 겪어야 하기에 처음부터 나의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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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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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잠하리라 - 욥 6:24-30 |
24.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25.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26.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27.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28.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울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29.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30.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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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입니다. 주님이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시고, 군병들에게 채찍질 당하시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려 운명하신 수난일입니다. 주님에 대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소중한 날들이 있습니다. 처음 이 땅에 오신 성탄절, 무덤에서 살아나신 부활절,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금요일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그런데 욥도 지금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24절)고 합니다.
무엇을 책망하는가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25절). 욥이 친구들의 공격과 책망에 반격합니다. 자신이 완악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가설이 틀렸고 너희의 추측들은 근거가 없으며 논리가 약하고 적용은 너무 일방적이고 무자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무저항의 원칙을 관철하셨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벧전 2:23)하셨습니다.
친구를 팔아 넘기는가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넘기는구나>(27절) <고아를 제비 뽑는다>는 말은 아주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짓을 고발하는 표현입니다. 고아들은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터무니없는 불이익을 겪어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기 에 비열하고 더러운 양심을 가진 자들이 그 점을 악용해 대놓고 그들을 짓밟는데 너희가 지금 내게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으며 명색이 친구인 나를 헛된 신념과 터무니없는 논리의 희생제물로 팔아버렸다고 비난합니다. 주님도 제자의 배신으로 팔리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마 26:21, 24). 그렇습니다. 주님을 판 가룟 유다의 최후는 결코 복되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5).
행악자가 되려는가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29절). 욥은 거듭 친구들에게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판단을 바꾸라고 호소합니다. 다시 말해 무고한 자에 대한 정죄를 멈추라는 촉구입니다. 끝끝내 무자비한 행악자로 남지 말고 하루 속히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주님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비방하고 욕하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가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3-4). 주님은 순전히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셨습니다. 그분이 징계를 받으시므로 이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됐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 주님께 그렇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사 53:5-6). 오늘, 주님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우리의 가슴을 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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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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