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명예 있어도… 죽음 함께한 어느 노부부
워싱턴=임민혁 특파원
입력 : 2012.04.02 03:07 | 수정 : 2012.04.02 14:57
아내는 그를 55년 돌봤고… 그는 치매아내를 6년 보살폈다
워싱턴공항공단 스넬링 회장, 작년 연말 NYT에 투고한 후 지난달 아내와 함께 목숨 끊어
'사랑하는 사람을 돌볼 때 기쁨과 책임감을 느끼지 않은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아내는 55년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나를 돌봐줬던 사람이다. 그리고 지난 6년간은 내가 그녀를 돌볼 차례였다.'
지난해 말 당시 워싱턴공항공단(MWAA) 회장이던 찰스 스넬링(81)은 뉴욕타임스(NYT)에 이 같은 에세이를 보냈다. 6년 전 시작된 부인 아드리엔의 치매로 힘들어진 결혼생활 60년을 돌아보는 내용이었다.
- 61년을 해로한 찰스와 아드리엔 스넬링 부부가 건강했던 시절의 모습. 찰스는 지난 6년간 치매에 걸린 부인 아드리엔을 간호했지만 지난달 29일 함께 목숨을 끊었다.
스넬링의 NYT 기고에 따르면 그는 아드리엔을 대학 2학년 때 댄스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각자 다른 파트너와 함께 참석했지만 스넬링은 아드리엔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는 "아드리엔은 내가 원하던 여자,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여자 그리고 내가 결혼해야만 하는 여자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했다. 적극적인 구애 공세 끝에 둘은 대학 재학 중인 1951년 결혼했다. 10개월 후 첫 아이가 태어났고, 그들은 양쪽 대학의 중간지점인 펜실베이니아 알튼 파크에 집을 구하고 수업시간을 조정해 번갈아가며 애를 봤다. 이후 1년을 휴학한 아드리엔은 졸업식에 둘째를 임신한 채 참석했다. 그들은 이렇게 10년간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들은 버뮤다로 간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여행을 다니며 모든 대륙에 추억을 남겼다. 스넬링은 "우리가 같이 비행기를 탄 것만 백만 마일이 넘지만 1회용 밴드 한 번 필요하지 않았을 정도로 항상 탈 없이 즐겁기만 했다"고 했다. 여행 다닐 때가 아니면 아드리엔은 남편 내조와 자녀 교육에 집중했다. 다섯 아이는 변호사, 사업가, 은행가, 예술가, 의사로 성장했고 남편은 알렌타운 시의회 의장, 펜실베이니아주 공화당 재정위원장 등을 거쳐 워싱턴 일대 공항을 총괄 관리하는 워싱턴공항공단 회장까지 올랐다. 스넬링은 "지난 세월 아드리엔은 이 모든 것을 뒷받침했다. 치매에 걸린 아내 시중을 드는 것은 내게 일종의 빚을 갚는 일이었다"고 했다.
스넬링 자신도 두 차례 무릎 수술을 하고 맥박보조기에 의지하는 성치 않은 상태에서 아내를 돌봤다. 출장을 갈 때도 아내를 직접 돌보기 위해 늘 동행했다. 어떻게든 아내를 회복시키고 싶어 치매 치료와 관련한 실험적 연구를 하는 존스홉킨스대병원에 문의했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부인의 나이가 너무 많아 치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답을 듣고 마지막까지 아내의 손과 발로 살았다.
동갑내기인 노부부는 지난 29일 펜실베이니아 알렌타운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남편은 총을 사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부인의 사인(死因)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두 사람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이 날은 그들의 61번째 결혼기념일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가족들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2009년에 자녀와 11명의 손자·손녀들에게 '힘들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썼다. 부부는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둘 다 '행복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후까지 더 살고 싶지는 않다'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고 했다. 딸 마조리(56)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그때 말한 게 이런 것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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