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10 23:34
- 선우 정 산업부 차장
신의주에서 탈북한 북송(北送) 재일교포를 3년 전 만났을 때 신의주와 가까운 아버지의 고향에 대해 물은 일이 있다. 그는 "십여년 전 신의주로 가는 정주의 언덕에서 몇 미터에 한 구씩 굶어 죽은 시체를 봤다"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에게 아버지의 고향은 폭정(暴政)과 기근에 찌든 북한의 일부였을 뿐이며, 아버지가 일생 품었던 고향의 서정(抒情)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 후배였던 고향 어른이 북한을 다녀온 것은 9년 전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그분이 헐벗은 고향에 낙담하는 모습을 본 것은 북한에서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북한에서 본 성인(成人)의 키가 우리 중학생만도 못했다"며 그는 말했다. "북녘 동포를 생각하면 제한적인 폭격을 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통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100만 기독교 성도(聖徒)가 밀려들어가 그들을 종교 속에 끌어넣을 수 있다면 혼란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순간의 넋두리였는지 모른다. 그 후 그분이 정치관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도 없다. 하지만 그분이 간직하고 있던 고향의 이미지가 깨진 것은 분명했다. 그때 생각했다. '끝까지 고향에 대한 서정을 간직할 수 있었던 아버지가 오히려 행복했는지 모른다'고.
고향에 대한 간절함을 이어받은 실향민 2세는 얼마나 될까? 솔직히 아버지 고향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탈북동포가 묘사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고향에 남긴 아버지와 형제를 일생 그리워했지만, 나는 통일 후 불쑥 현관문을 두드릴지 모를 생면부지의 북한 친척이 부담스럽다. 아버지는 고향을 빼앗은 공산주의를 미워한 만큼 고향을 오염시킬 남한의 천민자본주의를 걱정했지만, 나는 낯선 북한 동포가 자본주의의 밑바닥을 채워나가는 내 고향 서울이 더 걱정이다. 아버지는 남한에서 모은 재산을 고향을 위해 모두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렇게 마음먹지 못한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것이다.
우리는 통일을 말하면서 비용을 따진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삼성 주가가 반 토막 난다고 아우성이다. 북한 2300만 동포를 먹여 살리려면 한국 경제가 더 커져야 한다고 말한다. 20대 청년이 하루아침에 수령님 똥별을 달든 말든, 100만 동포가 다시 굶어 죽든 말든 공존을 위해선 북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용은 달라도 다 같은 말이다. "통일은 아직 무리"라는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아니면 내 마음처럼 이기심과 비겁이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렸기 때문일까?
통일은 통일을 소원하던 아버지 시대에 이뤄졌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지금보다 못살았어도 자기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만금(千萬金)을 더 벌어도 통일보다 삼성전자 주가를 더 걱정하는 사회라면 통일 문턱을 넘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이기심은 더 커질 것이다. 사실 북한이 안 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안 변해서 통일을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남 얘기할 것 없다. 나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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