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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새로 지은 이순신기념관, 안보이게 숨긴 이유

鶴山 徐 仁 2011. 6. 16. 09:16

새로 지은 이순신기념관, 안보이게 숨긴 이유

# 기념관인데, 보이지가 않는다?

아산 현충사. 민족 최고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곳.
이곳에 새 기념관이 들어섰다. 이름 그대로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다. 박정희 시대 지은 건물이 낡고 좁아 충무공에 대한 각종 자료를 전시할 새 전시관을 지은 것.

현충사 입구에서 안쪽으로 슬슬 걸어가면 저 멀리 현충사의 한옥 문이 보인다.
기념관은 보이지 않고 조선시대 왕릉처럼 봉긋하게 솟은 구릉만 보일 뿐.
그런데 봉분 가운데가 갈라져 길이 뚫린 듯 벽이 보인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제 알게 된다. 저 무덤 같은 구릉이 바로 기념관이란 것을.
그리고 그 뒤쪽에 흙빛 건물들이 있다. 구릉과 저 흙빛 건물 모두가 합쳐 기념관이다.

구릉 사이로 난 길이 기념관의 입구가 된다. 가까이 가서 보면 예상 이상으로 넓다. 오로지 돌로만 이뤄진 최소한의 표현.





들어가 뒤돌아서 입구 쪽을 본다. 최소화된 디자인의 벽면, 바닥 모두 돌로 이뤄진 공간감이 친숙한 듯 낯설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이제 흙빛 건물이 등장한다. 앞서 본 봉분형 구릉은 내부가 사무실 겸 세미나실 등이 있는 공간.
충무공 관련 자료들은 저 네모난 건물 안 전시장에 있다.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붕 같은 상판이 인상적이다. 기하학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건물 내부. 저 흙빛 건물은 정확히 정사각형 모양으로 4개가 한 몸을 이룬다. 최대한 단순화한 외관처럼 내부도 화려하지 않고 절제된 분위기로 꾸몄다.

최근 문을 연 이 기념관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건축물이다. 미술관, 박물관, 기념관 등을 모두 포괄하는 ‘뮤지엄 건축’의 내부는 대부분 하얀 네모 상자지만 그 외관은 다른 어떤 공공건축보다 개성적인 장르다. 건물의 기능이 단순한 대신 외관에서 최대한 조형성을 추구하면서 멋을 내기도 하고, 건물 자체가 랜드마크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아 과감하고 극단적인 디자인을 추구한 미술관, 박물관, 기념관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저 이순신기념관은 정 반대다.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건 건축가의 생각, 그리고 건물이 들어서는 장소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이 교수는 한국 건축계의 중견으로, 특히 박물관 등 기념관 건축을 유독 많이 해온 건축가다.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 분원 백자관, 지금 진행중인 노근리 기념관 등을 설계했다.
왜 이번 기념관은 자기 존재를 숨기는 디자인으로 골랐을까. 전통 건축 디자인인 현충사 한식 건물로 가는 길 중간에 자리 잡은 새 기념관이 기존 건축물과 맞서거나 충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실제 기념관 자체는 무척 강하고 현대적이다. 흙건물 4채가 함께 서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를 조경적인 해법으로 중화시킨 것이 그 앞을 가리는 인조 구릉이다. 자연스러운 경관의 일부 같은 구릉 속으로 들어갔을 때 저 네 기둥 건물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흥미로운 시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

구릉에는 건축가의 여러가지 고민의 결과도 녹아있다. 저 반으로 갈라진 구릉은 자연스럽게 3개의 입구를 갖는다.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동선을 여럿으로 고려한 결과다.
처음 현충사 경내에 들어와 바로 이 기념관부터 들어오는 이들은 맨 처음 나오는 입구가 맞는다.

거꾸로 현충사를 돌아본 뒤 나오는 길에 기념관을 찾아오는 이들은 반대쪽 입구로 들어올 수 있다.

이런 설명으로는 구조를 알기가 쉽지 않다. 위에서 내려다본 전체 구성도를 보자.

보통 건물들은 들어갔다 나오는 동선이 하나다. 하지만, 저 기념관은 3개여서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단조로울 수 있는 네모꼴 건축에 다양한 측면을 더한 것이다.

이제 다시 바깥으로 나가 건물 주변을 돌아보자. 뒤쪽에서 바라보는 흙빛 건물은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저 흙벽은 나름 한국 기록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높고 큰 흙벽이다. 높이는 9미터. 두께는 50센티미터에 이른다.
건축가는 저 흙벽이 늘 말끔하게 있기보다 오히려 흐르는 세월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중간 중간 금도 가고, 약간씩 떨어져 내리는 모습도 건축의 일부가 될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최대한 탄탄하게 시공했지만 가능하다면 20년이나 30년마다 저 흙벽을 다시 쌓아올리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 이 시대 충무공은 어떤 존재로 볼 수 있을까

충무공 이순신은 한국에서 너무나 어마어마한 존재다. 그를 기리는 공간은 국가적 공간일 수밖에 없고, 가장 중요한 기념관이 된다. 그런데도 그는 최대한 과시하기보다는 묵묵히 숨어있는 그런 기념관을 시도했다.
그 이유는 이순신이란 존재는 ‘민족의 구국성웅’이란 성스러운 수식어만으로 굳어진 존재가 아니라 늘 우리가 새로운 면모를 재발견해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처음 경쟁 공모에 나설 때 그가 생각한 이순신은 박제화된 영웅이 아니라 늘 자기 자신에게 치열했던, 정말 지독할 정도의 전문가형 이순신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완전무결한, 그래서 범접할 수 없는 신적인 장군보다는 자신의 직분에 모든 것을 던지는 집념의 장군, 후대에 이상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이순신이 진정 이순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이 교수가 생각한 이런 이순신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으며 떠올렸던 이순신이기도 했다. 정형화된 역사책 속 이순신보다는 문학작품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해석된 이순신, 그 이순신을 닮은 건축을 설계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새 이순신기념관은 소박하고 깔끔해 보이면서도 파격적이기도 한 건축물이다.
이순신처럼 너무나 유명한 이를 담는 건축, 당신이라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한번 건축가가 된 것처럼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글 / 구본준 기자, 사진 / 김재경 건축전문사진가

출처 : 과학관큐레이터
글쓴이 : 학암(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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