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은 가운데가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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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십니까 박재희 입니다. 사실 우리가 늘 중용을 강조하지만 ‘그 중용적 삶이란 정확한 무엇이냐?’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중용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가 시중(時中) 사상입니다. 일명 상황(時)의 중(中)입니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時中)입니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라!’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을 찾아 처해야 한다!’ 여기서 수시(隨時)는 상황의 변화입니다. 처중(處中)은 그 상황분석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실행입니다. 공자는 군자야말로 중용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며 소인은 중용에 반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君子는 中庸이요 小人은 反中庸이라) 군자와 소인은 지위나 학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중용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에 달렸다는 것이지요. 중용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얼마나 중용의 룰을 실천하셨습니까? 아침에 식사는 적당히 하셨습니까? 가족이나 직원과의 관계에서 정확한 중(中)은 찾아 내셨습니까? 오늘 저녁 혹시 중용에 반하는 스케쥴은 없으십니까? 공자는 중용적 삶의 어려움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천하국가도 고르게 다스릴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하얀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만큼은 만만치 않다(天下國家도 可均也요, 爵祿도 可辭也요, 白刃도 可蹈也나 中庸은 不可能也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천하의 높은 자리도 사양할 수 있는 의리도,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 있는 용기도 중용하기 보다는 쉽다는 이 말 속에 중용의 실천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살던 그 삶의 기준은 중용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며, 변화하는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역동적인 변화에 정확한 판단과 지속적인 실행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중용을 실천하는 리더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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