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아는 사이 땐 F학점도 장학금 지급
교사들 해외관광비도 지급, 펀드투자로 반토막 나기도… 자치단체장 치적쌓기 악용
대학생 A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의정부시민장학회로부터 장학금 14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A씨의 성적은 '처참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바닥이었다.A씨는 지난 2006년 학교에서 평균평점 1.5로 첫 학사경고를 받았다. 2007년 1학기에도 전 과목 F학점 학사경고를 받았고 같은 해 2학기는 휴학했다. A씨는 복학한 2008년 1학기에 다시 전 과목 F학점을 기록하면서 결국 학사경고 3회로 학교에서 제적처리됐다. 그러다 2009년 2학기에 재입학했고 이때까지도 계속 장학금을 받았다.
- ▲ 용인시시민장학회는 이사회 의결, 용인교육지원청의 승인 없이 지난 2005년 장학기금 20억여원을 펀드에 투자했다가 9억여원의 손실을 봤다. 사진은 2009년 용인시시민장학회 장학금 수여식 모습. /용인시시민장학회 홈페이지
지난 6일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정부·과천·이천·용인·의왕·하남 등에 있는 장학재단이 장학기금을 멋대로 운영하고 외유성 교사 해외연수를 보내는 등 각종 문제점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상당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거를 의식, '치적 쌓기'를 위해 장학재단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운영·관리·감독을 허술하게 한 것이다. 전국에는 지자체 산하 장학재단이 총 145개가 있는데 경기도에는 19개가 있다. 15개 광역 시·도 지자체에서 경상북도(2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비공개로 장학생 뽑기도
감사원에 따르면 의정부시는 지난 1995년 시장과 시의회의장이 '의정부시회룡장학회'(2005년 의정부시민장학회로 명칭 변경)를 설립하면서 지도·감독 등 근거 조례를 마련하지 않고 2006년까지 20억원을 출연했다. 이후 당시 시의회의장은 현재까지 이사장 신분을 유지하면서 장학회를 민간 장학재단이라고 주장, 의정부시의 지도·감독을 거부해온 것이 이번 감사에서 적발됐다.
이 장학회는 공정한 심사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사 등의 추천으로 장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해온 것으로도 나타났다. 장학회 임원 9명은 본인 또는 다른 임원이 운영 중인 업체의 직원 자녀 24명을 자의적으로 추천해 장학금 5450여만원을 지급(대학생 학기당 350만원·고등학생 등록금 전액)했다. 이 중 고등학생 6명, 대학생 6명(A씨 포함)은 성적 미달 등으로 장학금 지급대상이 아닌데도 2600만원을 지급했다.
'과천시애향장학회'는 과천시장 및 재단이사가 선정하는 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특별장학생 제도를 마련한 뒤 2001~2010년 과천시장과 이사들이 비공개로 추천한 82명(시장 71명·이사 11명)을 자격요건 충족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장학생으로 선발해 1억6543만원을 지급했다. 과천시애향장학회는 이사장이 교육지원청으로부터 승인받은 상근 임직원 정원수에 포함되지 않아 급여를 받을 수 없는 규정 또한 어겼다. 1997년부터 이사장에게 매월 활동비 20만원씩을 지급했고, 2007년부터는 매월 210만원, 2008년부터는 공무원 일반직 4급 9호봉에 해당하는 228만원을 매월 내줬다. 이 과정을 통해 1억1306만원이 부당하게 지급됐다.
◆'주먹구구'식 운영
이천교육지원청에서 지도·감독하는 '이천시민장학회'는 지난 2007~ 2009년 교사 연구활동비 명목으로 승인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관내 고교 3학년 담임교사들에게 격려금을 1인당 200만원씩 지급해 4억6400만원을 사용했다. 교사들 해외연수에도 장학금이 쓰였다. 지난 2007년 호주, 2008년 터키·태국 등으로 연수 일정이 모두 관광으로 구성된 '교사 해외연수사업'에 7352만원이 들어갔다.
주무 관청의 허가 없이 기본재산을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펀드에 투자했다가 반 토막 난 사례도 있다. '용인시시민장학회'는 지난 2005년 11월 장학회 기본재산인 정기예금 20억2074만원을 중도 해약하고 펀드를 매입했다가 2008년 9월 10억8892만원만 되찾았다. 9억3182만원의 손해를 본 것이다. 주무 관청인 용인교육지원청은 2007년 3월과 11일 두 차례 장학회를 방문해 지도·점검을 했지만, 펀드 매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등 감독을 부실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왕시는 지난 2005년 민간 공익법인인 의왕시민장학회에 13억원을 출연하려다 규정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듬해 위탁 운영 협약을 통해 민간위탁금 형태로 21억여원을 우회적으로 지급하고, 별도의 계좌로 관리가 필요함에도 이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했다. 하남도시개발공사는 지방 공기업의 사업 목적 범위를 넘어 하남시민장학회에 24억6000만원을 출연했다.
◆문화·복지재단으로 감사 확대
감사원은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해당 지자체에 관련자 징계, 시정·주의 처분 등을 요구하거나 통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장학재단처럼 지자체에서 예산을 출연해 설립·운영되는 문화재단, 복지재단 등 이른바 '준공공부문'에 대해서도 올해 상반기 중 점검에 들어갈 예정이다. 감사원은 준공공부문이 지방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