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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을 지켜낸 용사들의 이야기 [ 끝 ]*|

鶴山 徐 仁 2010. 12. 17. 13:40

august 의 軍史世界

 

NLL을 지켜낸 용사들의 이야기 [ 끝 ]

 

 

 

그들은 동해의 수호신이었다

 

지난 1999년에 들어 북괴가 서해에 새로운 군사분계선을 전격 선언하고 난 이후 연쇄적으로 벌인 일련의 군사도발로 인하여 NLL(북방한계선)을 서해 5도에 연한 군사분계선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동해바다에서의 군사분계선 또한 NLL입니다.  다만 동해안의 NLL은 DMZ을 직선으로 바다 쪽으로 확장한 모양새이고 더불어 인근에 도서가 없기 때문에 서해 쪽과 지리적 여건이 다를 뿐입니다.

 

[ 보통 많이 간과하지만 NLL은 동해안의 군사분계선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동해에서 북괴의 해상 도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극렬하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1967년 작전 도중 북괴 해안포의 포격에 의해 침몰하여 39명이 전사한 당포함 격침사건이나 이듬해 벌어진 미군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USS PUEBLO) 피납사건 그리고 1969년에 31명 탑승원 전원이 사망한 미군 정찰기 EC-121 격추사건이 모두 동해의 NLL 또는 부근에서 발생하였습니다.

 

[ 천안함 사건 이전 최악의 격침 사고였던 당포함 사건 ]

 

다만 적극적으로 분쟁지역으로 각인시키고자하는 서해에 비해서 동해의 NLL은 북괴가 트집을 잡을 만한 이슈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서해 5도 같이 북괴가 껄끄러워 할 만한 전략요충지가 동해 NLL 인근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서해안의 석도나 초도보다 더 위협적인 위치에 있던 동해안의 여러 섬들을 휴전 직전까지 아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 북괴의 포격으로 파괴된 연평도 (사진-연합뉴스) ]

 

사실 해병대의 전략도서 확보작전은 서해보다 동해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신편 된 해병대 독립 제42중대는 1951년 2월 14일 초대 중대장 심희택(沈熙澤) 중위의 지휘 하에 원산 앞바다의 여도(麗島)를 거점으로 하여 주변의 신도(新島), 대도(大島), 모도(茅島), 사도(砂島), 황토도(黃土島) 등 총 6개 섬을 기습 점령하였습니다.  때문에 북괴 측 동해안의 최대 요충지인 원산항은 전략적으로 봉쇄당한 입장이었습니다.

 

[ 해병대는 여도를 비롯한 주요 도서를 점령하여 원산항을 봉쇄시켰습니다 ]

 

하지만 북괴 입장에서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사건은 해병대의 독립 제43중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함경남도 명천이 고향인 최청송(崔靑松) 중위가 지휘한 제43중대는 그해 8월 28일, 명천군 상가면 앞바다의 양도(洋島)를 기습 점령하였습니다.  양도는 3개 섬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제도였지만 이곳의 점령은 북괴입장에서 함경도 해안의 연해 길목을 완전히 차단당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 여도에 상륙하는 제42중대의 모습 ]

 

막강한 제해권을 발판으로 요충지 섬들을 해병대가 점령하자 북괴는 이곳 섬들의 대안에 5배 이상의 병력을 증강시켜 배치하여야만 했고 그 만큼 최전선에 가해진 압박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섬을 점거한 소수의 해병대가 육지로 진격할 수는 없었지만 북괴 측의 공세에 수시로 격렬한 교전이 벌이지고는 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부와 연결이 단절된 해병대원들이 섬 안에 갇혀 산화한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섬을 지켜 내었습니다.

 

[ 동해 도서작전에서도 해병대는 불굴의 투혼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진-영화 스틸컷) ]

 

이처럼 동해안의 여도와 양도를 근거지로 하여 적의 배후를 위협하고 적 보급차단 및 연안봉쇄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제42중대와 제43중대는 1952년 10월 여도부대양도부대로 개칭되었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휴전 때까지 현 진지를 사수하였습니다.  비록 이들 부대의 도서작전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중대규모가 펼친 작은 규모의 후방작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눈엣 가시처럼 적에게 끼친 전략적인 효과는 엄청나게 컸습니다.

 

[ 만일 원산만과 양도 일대에 걸쳐서 NLL이 설정 되었다면

적들이 느낄 곤혹감은 대단하였을 것입니다.

동해안 최대 항구인 원산 앞 영흥만의 경우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양도는 현재 북괴의 미사일 기지인 무수단리 및 핵 실험 장소 부근입니다 ]

 

그런데 아쉽게도 이러한 전과가 그동안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휴전과 동시에 이들 요충지 섬들을 포기하고 철수하여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이 섬들을 아직까지 우리가 장악하고 있고 이곳까지 NLL이 선포되었다면 과연 어떠하였을까요?  서해 5도가 현재 대한민국 안보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쉽게 답이 나올만한 이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