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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우리는 뒤로 돌아 공격한다

鶴山 徐 仁 2010. 12. 14. 20:18

august 의 軍史世界

 

우리는 뒤로 돌아 공격한다

 

 

 

요란했던 G-20회담 때문에 자세히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11월 10일 한국전쟁과 관련한 중요한 하나의 행사가 전쟁기념관에서 벌어졌습니다.  전쟁 당시에 벌어진 가장 극적이었던 전투 중 하나였던 장진호(長津湖)전투 제60주년 기념행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는 기억에서 많이 퇴색하였지만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함흥에 이르는 첩첩산중의 가도에서 벌어진 이 기념비적 전투는 위대한 전설 바로 그 자체입니다.

 

[ 최근 개최 된 장진호전투 60주년 기념식 ]

 

전투는 1950년 10월 말부터 장진호일대로 진격하던 미 해병 제1사단이 험준한 산악 사이에 매복해 있던 약 10배 가까이 많은 중공군 제9병단에게 포위당하면서 벌어졌습니다.  더구나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의 날씨가 연일 계속되었는데, 이런 악천후에서 전투를 치러본 경험이 처음이었던 미군 당국은 이후 동계전투연구에 대대적으로 나서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 치열했던 장진호전투의 모습 ]

 

백과사전처럼 단지 결과 만을 나열한 단편적인 내용에는 장진호전투를 중공군의 승리, 미군의 패배라고 단순히 기록하지만 이것은 단지 지리적 점령만을 승패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군이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승자로 기록된 중공군의 피해는 참혹할 정도였습니다.  미군은 전사 393명, 부상 2,152명, 실종 76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반면 중공군은 5만 여명이 전사상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포위당한 이들에게 찾아와 항복한 중공군 포로들 ]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진 제9병단은 흔히 1.4후퇴로 잘 알려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동원될 수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미군이 북한에서 철수하여 후퇴하였으므로 전략적으로 중공군이 승리한 것은 맞는데, 그 대가로 전투력을 상실할 만큼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전술적으로는 미군의 대승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전투의 주역이었던 미 해병 제1사단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 장진호전투 당시의 미 해병 제1사단 ]

 

미 해병 제1사단의 자랑이 된 이 전투에서 사단장이던 스미스(Oliver P. Smith)소장(훗날 대장으로 예편)의 리더십은 상당히 유명한데, 오늘날도 그가 보여준 지휘능력은 두고두고 본받아야 할 반면교사입니다. ( 관련글 참조 )

 

[ 장진호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미스 미 제1해병사단장 ]

 

우선 공세 당시에 스미스는 무리한 진격을 삼가했습니다.  그는 1950년 10월 북진당시에 UN군부대 중 거의 유일하게 배후의 안전을 확보하고 난 후 사단을 이동시키는 신중함을 보였습니다.  상관인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불만하였을 만큼 비록 진출은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철저한 준비는 중공군의 출몰이후 대책 없이 무너져 내린 여타부대들과 달리 후퇴시기에도 미 해병 제1사단이 놀라운 전투력을 유지시켜주었습니다.

 

[ 대오를 갖추어 질서정연하게 철수하는 미 제1해병사단 병사들 ]

 

다음으로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부를 구해내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안전한 철수가 불가능해 보이자 상부로부터 병력만이라도 항공편으로 철수시키라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스미스는 본대철수를 위한 비행장을 확보하려면 일부 병력이 적지에 낙오될 수 있고 또한 장비가 중공군에 넘어가면 나중에 더 큰 위험이 되므로 4,300명의 부상자만 항공편으로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고 적과 교전하며 육로로 탈출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여 포위망을 탈출하는 모습 ]

 

해병대는 하나이며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전 예하장병에게 전하여 사기를 북돋은 후 전 병력과 장비는 물론 전사자의 시신까지 수거하여 적진을 돌파하여 탈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부대원들에게 "우리는 철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격멸하고 후방을 향하여 새롭게 공격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훈시를 내렸고 이것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 미국에서 Chosin Few는 전설과 동의어입니다 

(기념식에 참석한 참전 용사들 *사진-세계일보)]

 

이처럼 신념 있는 지휘관의 용기와 이를 믿는 부대원들이 함께 이루어낸 장진호전투는 비록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전투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년에 접어든 많은 참전 용사들이 노구를 이끌고 행사에 참여하였을 만큼 장진호전투에 대해 그들이 갖는 자부심은 그야말로 대단합니다. ( 관련글 참조 ) 가장 무섭고 어려웠던 시기에 보여주었던 그들의 진정한 용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