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동서남북] 위키리크스가 보여준 한국 외교의 민얼굴

鶴山 徐 仁 2010. 12. 2. 09:22
사설·칼럼
동서남북

[동서남북] 위키리크스가 보여준 한국 외교의 민얼굴

입력 : 2010.11.30 23:37 / 수정 : 2010.11.30 23:50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

워싱턴 사람들은 워싱턴에 파견된 외교관이나 기자, 공공단체나 기업의 직원들이 하는 일은 다 비슷하다고 했다. 낮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얻은 후 저녁땐 그걸 기록해 본국으로 보낸다. 차이가 있다면 외교관이 쓴 전문(cable)은 정부 내부에서만 볼 수 있고 그중 상당수는 기밀로 분류되고, 기자가 쓴 '기사'는 만인이 읽을 수 있도록 공개된다는 점이다.

암호로 전송된다는 그 전문에 외교관들이 도대체 어떤 '국가기밀'을 써보내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최근 정부 비밀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의 미국 외교전문 공개 덕분에 그 실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위키리크스가 확보한 전문은 총 25만1287건으로, 1966년부터 지난 2월까지 전 세계 274개 공관에서 미 국무부로 보낸 보고가 담겨 있다.

위키리크스가 11월 28일부터 30일 오후까지 약 278건을 공개했을 뿐인데 이미 전 세계 외교가가 발칵 뒤집혔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운 건 여기서 드러나는 외교의 민얼굴, 즉 외교관들의 속마음과 실력이다.

전문에 따르면,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외교부 차관 시절인 지난 2월 캐슬린 스티븐스 미 대사에게 "중국은 한국이 통치하고 미국과 우호적인 동맹으로 연결된 통일 한국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라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도저히 사실일 것 같지가 않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에게 김정일이 "2015년 이후까지 살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다. 현직 외교 사령탑들이 이런 식으로 중국과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희망 섞인 예측을 미국측에 전한 것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25만 건의 전문 중 1만5652건이 기밀에 해당하고, 현재까지 그중 극히 일부만 공개된 것이므로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더 터져 나올지 모른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 외교부가 약속이나 한 듯 펄펄 뛰는 것은 앞으로 공개될 정보의 파괴력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기밀에 해당하는 외교전문을 공개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전문들을 읽어보면, 국가의 핵심사안을 다루는 정책결정자들의 생각이나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외교를 망치고 안보를 해치는 재앙 같은 일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든 외교안보 분야의 정보는 정부 내에서도 소수에게만 제공된다. 핵심적인 국익이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라면, 아는 사람의 숫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래서 제아무리 민주적인 국가에서라도 국가안보 관련 기밀 앞에선 국민의 알 권리가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신들이 몰라야 국가가 더 안전하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위키리크스 사건을 보면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만이 공익을 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위키리크스 사건에 대한 우리 외교부의 공식입장은 "우리나라 문건이 아니므로 이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타국 문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도 한다. 그러나 속사정까지 그렇게 평온하고 담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외교의 민얼굴이 계속 드러나면 언제까지나 "남의 일"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서양 속담에 '법과 소시지는 만드는 과정을 보지 않는 쪽이 낫다'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는 외교도 '커튼 뒤는 들여다보지 말라'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국가기밀'로 분류돼 수십 년간 공개되지 않을 것이란 보호막 속에 외교관들끼리 하고 싶은 얘기를 했던 기밀 시대의 외교는 이제 막을 내렸는지 모른다.

일문으로 이 기사 읽기일문으로 이 기사 읽기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