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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잔이 되어
꿈이 없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세월을 낭비하며 한탄하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미래를 계획하고 마음의 간절함을 따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어주신 꿈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류태영의 ‘기도인생’ 중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즉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합니다. 나의 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꿈을 쫓아 열정 없이 바쁘기만 한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주인이며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의 꿈이 나의 꿈이 되는 놀라운 비전을 쫓아가게 됩니다. 잠시 바쁜 일상을 벗어나 하나님과 둘만의 자리에 앉으십시오. 주께서 원하시는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묻고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삶의 가치들을 밀어내십시오. 모든 욕심을 비우고 빈 잔이 되어 주께 나아갈 때 우리 안의 참된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담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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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
휴가철마다 금수강산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웃에게는 바르게 살라고 하면서 '나'와 내 가족은 올바로 행동하고 있는지요? 그리스도인은 행동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시편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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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장일암 크리스천 포토아카데미 원장 [생각하는 사진하기] 강사 3회 개인전 'In His grace' (2009년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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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 - 시편 43:1~5 |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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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편과 43편은 서로 이어지는 한 편의 연작시입니다. 시인은 축복보다도 하나님을 바랍니다. 물질을 구하지도, 건강과 장수를 구하지도, 자녀들의 성공이나 사업의 형통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하나님뿐입니다.
어찌하여 히브리어로 <어찌하여>란 <라마>, 영어로는 <Why?> 입니다. 시편에는 이 <어찌하여>라는 탄식이 참 많이 나옵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2절).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운명이 꼬여 몹시 힘겨울 때, 어려운 일이 엎치고 덮칠 때 흔히 <어찌하여>하고 부르짖습니다. 모든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기에 우리의 탄식은 그만큼 더 처절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어찌하여> 내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하여>란 결코 불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뢰하고 믿기 때문에 탄식하며 더 간절히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숱한 믿음의 선진들도 다 이렇게 <어찌하여>하며 탄식하다 주를 만났습니다. 너무 빠른 답을 구하지 마십시오. 더욱 간절히 부르짖으십시오. 우리의 탄식이 깊을수록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도 깊어집니다.
보내시어 시인이 원하는 것은 주의 빛과 진리입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3절). 그 옛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듯이 주님은 지금도 주의 빛과 진리, 즉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런데 시인은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해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거룩한 산>이란 <시온 산>, <주께서 계시는 곳>이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는 언제나 우리를 성산과 성전으로 인도합니다. 예배가 있고,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는 성소, 그곳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4절). 시인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예배하고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이 시인처럼 예배를 간절히 사모하십니까? 이 시인처럼 예배 가운데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리십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가장 시급한 것이 바로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감격이 사라지면서 예배도 형식적이며 지루한 종교의식이 되고 맙니다. 온갖 기교와 장치와 현란한 기악연주는 있어도 정작 은혜와 감격은 실종되고만 예배, 이렇게 예배가 죽으면서 오늘 우리의 인생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 4:2). 그렇다면 <신령>과 <진정>이란 무엇일까요? 신령(Spirit)은 성령을 가리키고, 진정(Truth)은 진리를 말씀합니다. 즉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이고, 아무리 달콤한 소리로 재미있는 설교를 하고 사람들이 은혜 받았다며 찬사를 보내도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충실한 설교가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사십시오. 그것만이 우리 인생이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임을 깊이 깨닫는 당신이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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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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