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치부·정우상 기자
최근 만난 한 외교관은 우리나라가 '원조받다 원조 주는' 처지로 바뀐 얘기를 하다가 내달로 7주기를 맞게 되는 동티모르 순직 장병 얘기를 꺼냈다.
그는 "2003년 동티모르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중 순직한 상록수부대 장병들의 영결식 장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2003년 3월 고(故) 민병조 중령 등 장병 6명은 작전 수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영결식 날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는 건물마다 조기가 게양됐고, 성당에선 추모 예배가 열렸다. 이 외교관은 "오열하던 동티모르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냥 외국 군인이 아니라 마치 가족이 죽은 것처럼 슬픔에 찬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1999년 파병된 상록수부대원들의 임무는 치안유지였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홍수 때는 유실된 도로와 다리를 복구하고 고립된 인원을 구출했다. 이재민들에겐 피난처와 구호물자를 제공했다.
'블루 엔젤'로 불린 민사작전을 통해 험준한 산악지역까지 모두 180회에 걸쳐 찾아가 이발, 영화 상영, 의료 지원, 농기구 수리 등을 했다. 작전 외의 시간에도 학교를 짓거나 보수해줬고, 새마을운동을 통해 자립의지를 심어줬다. 장병들이 돈을 모아 모범학생에겐 장학금도 줬다. 만 4년의 활동을 마치고 철수하던 2003년 10월, 현지인들은 우리 군에게 '말라이 무띤'(다국적군의 왕)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현지 수녀는 "성직자도 하기 어려운 선행을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외교관은 "한국이 작년 말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원조 선진국이 됐지만, 원조 규모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조에도 나라별로 비교우위가 있는데 이를 적극 살려야 한다"고 했다. 남에게 도움을 베풀면서도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는 '우리식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9일 국회는 아이티 평화유지군 파병동의안을 처리했고, 다음 주면 선발대가 아이티로 떠난다. 이들이 선진국이 돈으로 할 수 없는 '한국식 원조'의 귀감을 다시 한번 보여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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