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는 이름난 도박중독자였다. 1863년 카지노에서 거액을 따며 도박에 빠진 그는 선불 원고료까지 카지노에서 잃었다. 그러고 나서 출판계약을 지키느라 속기사까지 채용해 서둘러 써낸 소설이 '도박꾼'이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7년 뒤 여행 경비와 가족 생활비마저 날리면서였다. 결국 그를 정상인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돌아올 차비를 날려도 밥 먹을 돈까지 부쳐주고 잔소리 한번 안 한 아내였다고 한다.
▶ 도박 끊기가 마약 끊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본다. 한 대기업 직원은 할부고객에게서 수금한 돈까지 도박에 쓸어넣다 5년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도박을 끊겠다는 결심은 매번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원양어선을 타면서 단(斷)도박에 성공한 뒤론 결혼도 하고 직장도 얻었다. 그러나 도박병은 5년 만에 다시 도졌다. 건설현장 크레인에서 뛰어내려 자살까지 기도 하고도 도박을 끊지 못했다. 중독예방치유센터 상담 사례다.
▶ 중독예방치유센터는 작년에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개설돼 지금까지 전문 상담가 5명이 도박중독자 2500명을 상담했다. '단(斷)도박모임'과 강원랜드 부설 한국도박예방센터도 있다. 단도박모임은 미국인 화이트 신부가 노름으로 재산을 날린 농부의 음독자살에 충격을 받아 1984년 부천 심곡성당에서 만들었다.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해 회원들이 자기 고백을 하며 서로 도박 끊기를 격려한다.
▶ 세계 1위 도박공화국으로 호주가 꼽힌다. 해마다 도박판에서 오가는 돈이 국가 예산의 40%에 달한다. 우리도 호주 못지않은 '도박중독국'이라 할 만하다. 카지노, 경륜, 각종 복권을 포함한 도박·사행산업 규모가 정부 집계로 작년에 16조400억원에 이른다. 불법 도박까지 합치면 한 해 70조원이나 된다. 가정파탄을 비롯해 도박으로 인한 문제를 경험한 사람도 19세 이상 성인의 9.5%, 35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선진국 평균치 4%의 2배가 훨씬 넘는다.
▶ 호주는 '책임자 원칙'을 들어 도박사업자가 수익의 2%를 중독자 치료비용으로 대도록 한다. 24시간 상담전화도 운영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중독자 치유 비용으로 한 해 366억원을 쓴다. 우리는 도박 중독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이 예방치유센터 한 곳뿐이고 예산도 고작 40억원이다. 지난 17일은 정부가 지정한 첫 '도박중독 추방의 날'이었다. 도박이 더이상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좀먹어 가지 않도록 경각심을 높일 때다.
- 김동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