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다애 기자]1950년 6월 25일.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며 가슴 속 깊이 새겨야 할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진 날이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대한민국은 '분단'의 아픔마저도 - 잠시 잠깐 감정적인 불편함을 느낄 뿐 - 일상생활의 익숙함으로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
그때 그곳의 기억을 발판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부산 도시 끝 언저리에 자리한 보수동 책방 골목과 신창동 국제시장 깡통 골목이 생활터전인 그들. 과거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 그 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책과 책 사이... 보수동 책방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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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분을 걸어 도착한 보수동 책방 골목. 사진기의 스위치를 켜고 골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8·15광복 직후 일부 주민들이 일본인이 남긴 책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6·25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미군 병사들이 읽다 만 헌 잡지와 책, 그리고 학생들이 보던 참고서 등을 팔았다. 그 이후 대학교수들과 학생들의 필요에 의해 책방이 늘어나자 본격적인 가건물이 들어서면서 '헌책방 골목'이 탄생하게 됐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으며, 힘겹게 찾아야만 했던 삶의 이유. 부끄럽게도 오늘 우리는 삶의 여유를 느끼고자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저 멀리 흘러간 우리의 시간, 옛 기억을 찾는 통로가 되고 있었다.
"미세스 박! 미세스 박! 이것 좀 먹어요~" 요구르트 아줌마가 책방 앞 의자에 앉아 깜빡 졸고 있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응?! 언제 왔노? 아이고 덥네~" 집에서도 듣는 익숙한 사투리지만 그 속에서 오고가는 사람 간의 정은 항상 풋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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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을 사고판다는 전통은 아직 유효했으며, 할아버지 서재에서나 볼 법한 책들이 높은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책'이 주는 멋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귀에 닿는 말보다 눈으로 보는 글의 운치가 잔잔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현재 부산 중구청은 이곳 보수동 책방골목을 전통문화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날 거리 바닥에 깔리고 있던 화강석에는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향후에는 방송시설을 설치해 음악이 흐르는 거리로도 변화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책을 사고팔았던, 생계만을 위했던 공간이 이제는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하는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다양한 삶의 공존... 국제시장 깡통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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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복잡하게 이어진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깡통식품을 주로 팔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바로 '깡통골목'이다. 가판대 위에 넓게 펼쳐진 물건들 사이로 곧게 뻗어있는 골목과 골목. 이곳에서 가장 많이 주워 담게 되는 즐거운 거리들은 40~60대로 유추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추억들이다. 저마다의 삶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입을 맞추며 과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거 옛날에 많이 먹던 거네~", "그러네~ 5원에 10개씩 사가지고 몰래 까먹고 했는데~", "호호호~" 이렇게 웃고 떠들며 말만 하는 손님들이 지겨웠는지 주인아주머니가 몇 마디 크게 던졌다. "먹는 거 앞에 두고 왜 구경만 하는 거여! 먹을 거면 한 봉지 사서 가~!", "그럴까요? 호호호~" 뭐가 그리 재미있었던 걸까? 어찌됐든, 주인아주머니가 바라던 대로 거래가 성사됐다.
스키니 진과 스트랩 힐. 레깅스와 검은색 에나멜 백. 8개 숫자(학번)가 크게 적힌 책 한권과 A4크기의 파일. '시장'과 적절하게 어울리지 못할 복장으로 생각되지만 이곳에서는 괜찮다. 길목 끝자락 저편에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지나가는 여심을 붙잡는 서너 곳의 상점들 때문이다. 실질적인 필요성의 여부와는 별개로, 물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미적 가치를 자신의 그것과 동일시하려는 젊은 사람들의 성향에 아주 적절하게 부응하고 있었다. 그만큼 충분히 예쁘기도 했다.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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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변화된 우리의 가슴 속에서 '역사'는 제자리를 지키고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기억하는 자의 몫이었음을. 때문에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다루는 방법과 노력의 정도가 변화한 것일 뿐. 어떤 위로의 말로 우리를 뉘우쳐야할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나 그럴 테지만, 요즘 들어 부쩍, 옛날과 그때 그 시절 그리고 예전이라는 시간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그 때보다 못한 생활 속에서 힘겨움을 이겨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자꾸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로 지나가버린 것들과 지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추억하는 것은 그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인간의 작은 욕심일 것이다. 다행히도 그 욕심은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작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높은 건물에 가려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골목과 골목 사이. 그리고 그곳을 누비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정.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와 버렸지만, 그때 그 사람들과 오늘 이 사람들이 이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골목과 골목들이 어울려 커다란 한 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저런 너와 이런 나도 인연과 같은 만남을 통해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므로.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살맛나는 세상을 향한 작은 몸부림, 그저 즐거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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