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구체화하고 선행연구를 꼼꼼히 추적하라
「논문 잘쓰는 방법」2: 주제와 연구방법의 선정
<논문 잘 쓰는 방법> 글 순서 2. 주제와 연구방법의 선정 |
정병기
『대학원신문』(고려대학교) 제151호(2008.10.01)
주제 선정에서부터 논문 작성은 이미 시작된다. 주제는 논문의 성격에 맞도록 구체화되어야 하며, 구체화된 주제는 선행연구의 검토를 통해 그 가치를 재논의해야 한다. 선행연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주제의 가치 검토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가치의 재검토는 연구방법 모색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연구방법 모색도 선행연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달리지기 때문이다.
주제의 선정과 구체화
지도교수와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방식, 전문가나 지도교수에게 자문을 구하는 방식, 최근의 논문과 개론서를 읽고 이론과 방법론을 익혀 새로운 문제에 적용하는 방식, 선행 연구의 치명적인 결점을 보완하는 방식, 선행 연구의 논의나 결론에 제기된 한계점이나 새로운 연구 과제를 채택하는 방식, 학계나 사회에서 논쟁이 일고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방식, 전공 분야의 문헌 색인집에 기록된 주제어들 중에서 선택하는 방식 등이 주제 선정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1차 자료의 확보나 분석이 불가능한 주제는 피해야 한다. 이것은 연구자의 시간적ㆍ분석적ㆍ경제적 능력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다. 정해진 기간 안에 구할 수 없는 자료나, 언어 또는 조사방법 면에서 분석이 불가능한 자료, 혹은 경제적으로 감당해낼 수 없는 값비싼 자료들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선정된 주제를 다시 구체화하는 것이다. 목표로 하는 논문의 성격과 분량에 맞게 주제의 범위를 좁히라는 이야기다.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주제라면 시간적ㆍ공간적 범위를 줄여나가고, 이론이나 사상 혹은 개념을 연구하는 주제라면 의미 영역을 좁힐 수 있다.
원고지 120매 내지 150매 분량의 연구논문이라면, 참고문헌 20개 내지 30개 정도에서 연구가 수행될 수 있는 수준이 적당하다. 선행연구도 20여개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주제를 좁혀나가는 것이 좋다. 선행연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주제를 구체화하지 않은 것이며, 참고문헌이 너무 많다는 것은 대부분 지식자랑을 늘어놓았거나 쓸데없는 문헌들이 언급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주제 재검토와 연구방법 모색
구체화된 주제는 과연 연구할 가치가 있는 독창성 있는 주제인지를 다시 한 번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검토는 연구방법의 모색과 병행하여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능력과 기타 조건에 비추어 적절한 연구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주제 역시 미리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주제의 재검토와 연구방법 모색은 선행연구가 많고 논의가 잘 정리된 경우, 선행연구가 드물고 논의가 전혀 혹은 잘 정리되지 않은 경우, 선행연구가 전혀 없는 경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선행연구가 많고 논의가 잘 정리된 경우
선행연구가 많고 기존의 논의가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훌륭한 입문서나 개론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에는 훌륭한 입문서나 개론서를 선택하여 우선적으로 숙지하고 그 내용을 좇아 관련 논의들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 기존의 논의들이 미비하거나 놓치고 있다는 점을 이 검토를 통해 발견하거나 전혀 다른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때 이 주제는 가치가 있다.
연구방법과 관련해서는 대개 특정한 한 가지 연구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보완하여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구가 충분히 축적되었고 연구방법도 많이 개발되어 있으므로, 여러 연구방법들을 종합하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새로운 연구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공부할 분량이 가장 많은 예이다. 주제를 좁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주제를 변경할 수 없거나 굳이 이 주제를 연구하고자 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선행연구들을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만 편법 아닌 편법은 존재한다. 개론서나 입문서에서 자신의 주제와 관련된 것은 대개 하나의 장(chapter) 정도이다. 이 부분만 읽고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선행연구들만을 추려나가면 선행연구의 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선택한 문헌들만을 상세히 검토하고 다소 관련성이 적은 문헌들은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 개론서나 입문서의 연구가 끝난 시점 이후의 선행연구들은 일일이 찾아서 고찰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행연구가 드물고 논의가 잘 정리되지 않은 경우
선행연구가 일정하게 존재하지만 드물고 그 연구들의 논의가 전혀 혹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 개별적인 여러 논의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비교ㆍ정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비교와 정리를 통해 미비하다거나 간과된 경우를 밝혀 보완하거나 전혀 다른 주장을 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 이 주제는 가치를 갖는다.
연구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역시 여러 개별적 논의들의 방법론을 숙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경우는 첫 번째와 달리 연구방법 모색이 대단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 선행연구들이 취한 특정한 연구방법을 보완하여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연구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여러 연구방법들을 종합하거나 전혀 새로운 연구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선행연구의 고찰이 가장 어려운 예에 해당한다. 이 주제를 선택한 연구자는 개론서나 입문서를 쓴다는 심정으로 선행연구 고찰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선행연구들은 대부분의 학교들이 갖추고 있는 전자도서관의 한국학술정보(KISS)와 JOSTOR(Journal Storage)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전자는 국내 학술지 논문들을 수집한 사이트이고 후자는 영어권 학술지들을 수집한 사이트로서 학교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다양한 논문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선행연구가 전혀 없는 경우
관련 선행연구가 없는 주제를 선택한 경우에는 길잡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는 주제 자체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주제나 대상을 조금만 넓혀 관련 선행연구들을 찾아 간략히 소개한 다음, 해당 주제에 관한 연구가 없음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는 적어도 연구자가 해당 주제뿐 아니라 관련 주제에 관한 선행연구들도 천착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때 주제를 너무 넓히면 고찰해야 할 선행연구들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관련성이 매우 약한 문헌들까지 고찰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주제의 확장은 대여섯 개의 선행연구들만 수집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구방법의 모색을 위해서는 간접적인 적용 가능성이 있는 연구방법들을 고찰하여 가능한 대안과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종합적인 방법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연구방법을 구축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가 읽어야 할 문헌이 가장 많은 예라면, 이 경우는 연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예이다. 연구방법론이나 이론적 배경이 다소 탄탄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전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주제이므로, 논리와 체계만 갖춘다면 일단 시론(試論)으로서의 가치는 인정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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