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아시아 중동圈

우즈베키스탄

鶴山 徐 仁 2008. 12. 8. 11:01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우르겐치 가는 길
ⓒ 김준희
몇 년 전 여름 몽골을 여행할 당시, 특이한 여학생을 한 명 만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온 여대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를 만난 장소는 몽골 남쪽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앞에 위치한 캠프장이었다. 말이 캠프장이지 그곳에는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몇 채가 서 있을 뿐,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그곳에 하루 이틀 머물면서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에 다녀오는 것이 일과다.

그 여학생은 3개월 비자를 받아와서 캠프장에 머물고 있었다. 그 기간동안 일종의 자원봉사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는 게르 안에서 잠을 자는데, 여행자들이 많이 몰리면 침낭 하나만 들고 모래밭으로 쫓겨나야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났던 날도 그랬다. 이른 아침, 게르 밖으로 나왔을 때 캠프장 한쪽의 침낭에 들어가 있는 그녀를 보았다. 밤에 바람이 불면 그대로 맞아야 하고, 어떤 절지동물이 침낭으로 들어올지도 알 수 없다.

제대로 씻기는커녕 식수조차도 풍부하지 못한 곳이다. 모래먼지를 뒤집어쓴 침낭 속에서 얼굴만 밖으로 내민 채 그녀는 활짝 웃으며 '여기가 참 좋다'라고 말했다. 이름도 얼굴도 정확히 생각 안 나지만 그 웃음만큼은 지금도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난 그녀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대단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남들이 하지 않는 일, 남들이 꺼리는 일을 자청해서 한다는 것이 그런 감정을 갖게 한 것 같다.

난 그 여학생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라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지 궁금하다. 몽골이 좋고, 사막이 좋아서, 바쁘고 복잡한 도시를 떠나서 한가롭고 심심한 대자연에 푹 파묻혀있는 시간들이 좋아서 그런다고 대답했을까.

도보여행을 시작한 지 오늘로 4일째,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버스도 많은데 왜 걸어가느냐?"라고 묻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거 끝내고 한국 가면 누가 돈 줘?"라고 묻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러시아 단어를 총동원해도 이들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니 말이 통하더라도 딱히 내놓을 답은 없다. '그냥 이렇게 걷고 싶어서' 정도가 될 것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이 있어서 간다'라고 말하던가. 나도 마찬가지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막이 있으니까, 길이 있으니까, 그 길이 고대의 실크로드니까, 나도 그 길을 따라서 걷고 싶은 것 뿐이다. 오래 전 이 길을 걸었던 상인들이 길 위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지, 당나라 군대를 이끌던 고선지 장군은 어떤 야망을 품었을지, 걷다보면 나도 조금씩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혼자 가는 길 위에서는 모든 상상이 자유로운 법이다.

호텔에 가서 씻고 싶은 욕심


▲ 우르겐치 가는 길 거리의 경찰과 함께
ⓒ 김준희
부지런히 걸으면 오늘 중으로 우르겐치에 도착한다. 아니 무조건 오늘 중으로 도착해야 한다. 씻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이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다. 걷기 시작하고 나서 4일동안 머리를 못 감았고 발도 씻지 못했다. 나는 한가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지방의 작은 집에 들어가더라도 당연히 수돗물이 펑펑 나오는 화장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화장실은 모두 집 바깥에 설치된 재래식이고, 상수도 시설은 없다. 작은 마을에서 수도가 설치된 집은 정말 잘사는 집이다. 머리도 감고 싶고 샤워도 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발이 걱정된다. 오늘 아침 출발 전에 보았는데 발의 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았다.

오른발 뒤쪽의 굳은 살이 메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면서 피가 배어나온다. 왼발 엄지와 검지 사이에 커다란 물집이 잡혀있다. 오랫동안 걸었더니 양말이 헤지면서 뒤꿈치에도 상처가 생겼다. 병원에 갈 필요는 없겠지만 깨끗하게 씻고 약을 발라둘 필요는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르겐치의 호텔에 가면 가능하다. 그리고 내일 하루는 푹 쉬자. 그러면 발의 상처도 좋아지고 다리의 근육통도 완화될 것이다.

나는 씻고 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거리에서 사과와 토마토를 파는 여인들이 보인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사과 얼마에요?"
"천숨요"
숨은 우즈베키스탄의 화폐단위로 1숨은 우리돈 1원과 비슷하다. 나는 사과 하나를 집어들고 한개에 천숨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커다란 양동이를 내 앞으로 밀면서 한 양동이에 천숨이란다. 싸서 좋기는 한데 이걸 다 사가지고 갈 수는 없다. 내가 사과 두개, 토마토 두개를 집어들자 300숨이란다. 토마토는 그 자리에서 먹고 사과는 만일을 대비해서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는 한낮의 열기를 피해서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늘이 드리워진 넓은 평상에 앉아서 커다란 만두 2개와 함께 차를 마셨다. 가긴 가야하는데 왜 이렇게 일어서기가 싫을까. 나는 그냥 평상에 드러누워서 잠을 잤다. 설마 자는 사람 깨워서 내쫓지는 않겠지.

낮잠으로 기력을 회복하다


▲ 우르겐치 가는 길 거리에서 사과와 토마토를 파는 여인들
ⓒ 김준희
자고 일어나니 시간은 30분 가량 지나있다. 원기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먹고나서 자는 것이다(순서를 바꿔도 상관없다). 한 택시가 식당으로 들어오더니 엄청나게 배가 나온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간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다보면 거대한 배를 가진 남자들을 종종 본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배가 나왔지?'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건 아마 이들의 식습관과 연관있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평상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먹을 때는 평상에서 베개를 팔밑에 받친 자세로 옆으로 반쯤 누워서 식사한다. 옛날 로마의 귀족들이 그런 자세로 식사했다고 하던가. 이들이 먹는 음식은 대부분 기름기가 많다. 그러다보면 배가 나오고 살이 찌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나는 출발 전에 지도를 확인했다. 구르렌에서 우르겐치는 40km다. 이미 절반을 넘게 왔고 자면서 쉬었으니 몸에는 힘이 넘친다. 다시 일어서서 음식값을 지불하고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여전히 맑고 잔잔한 바람이 불어온다. 뜨거운 태양만 아니라면 걷기에 적당한 날이다. 양옆으로는 비슷한 경치가 펼쳐진다. 목화밭, 목화밭….

오늘 우르겐치에 도착하면 나는 나흘동안 150km가 넘는 거리를 걸은 셈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예정했던 것은 아니다. 걷기 시작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그리고 1차 목적지인 인구 15만의 도시 우르겐치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걸으면서 점점 느껴지는 다리의 통증과 갈증. 배낭에 담겨있는 따뜻해진 물은 마셔도 마신 것 같지가 않다. 우르겐치에 도착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선 호텔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씻자.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발의 상태도 점검해보자.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노천카페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싶다. 꼬치구이와 함께 차가운 맥주를. 나흘동안 15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왔다면 나한테 그 정도 보상을 해줘도 과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들뜬 기분으로 마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거리에 앉아서 먹은 수박 한통


▲ 우르겐치 가는 길 거리에 앉아서 수박 한통을 다먹었다.
ⓒ 김준희
"수박 한통 먹고 가!"
옆에서 누가 부른다. 돌아보니 아저씨 두 명이 거리에 카펫을 펼쳐놓고 수박을 팔고 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갈등이 일어난다. 쉬고 싶은 본능과 가고 싶은 욕심. 쉬었다 갈까, 가서 쉴까. 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이후로 2시간 넘게 쉬지 않았다. 그래 그럼 조금 쉬고 가자. 나는 카펫 한쪽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앉을 때마다 허리에 몰려오는 통증도 기분좋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 통에 얼마에요?"
"돈 필요없어, 그냥 먹고 가!"
한 명은 나이가 많고 다른 한 명은 젊다. 마치 부자 사이처럼 보인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작은 수박을 꺼내고 칼을 들더니 능숙한 솜씨로 칼질을 한다. 나는 그 수박을 받아서 열심히 먹는다. 차갑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시원한 수박의 맛을 음미하면서. 이들은 나에게 여러가지를 묻는다. 어디에서 왔느냐, 왜 걸어가느냐, 나이가 몇이냐 등.

나는 먹으면서 이들과 대화했다. 역시 이들은 부자 사이다. 집은 우르겐치인데 매일 이곳에 와서 수박을 판단다. 여기는 우르겐치에서 7km 정도 떨어진 곳이란다. 시간은 5시 30분. 장사가 다 끝났는지 승용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팔고 남은 수박을 싣기 시작한다. 매일 이런 식으로 승용차에 수박을 싣고서 왔다갔다 하면서 장사하는 것 같다.

어느새 나도 수박 한통을 다 먹었다. 수박 한통 더 가지고 가라는 것을 웃으면서 거절했다. 안 그래도 짐이 많은데 저 무거운 수박까지 챙길 엄두가 안난다. 이제 우르겐치가 저 앞에 있다. 아저씨들 덕분에 배도 부르고 몸에 적당한 수분과 당분도 공급한 상태다. 그렇다면 기운차게 걷는 것만 남았다. 가자! 가자!



▲ 우르겐치 도착 맥주와 꼬치구이를 먹었다.
ⓒ 김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