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총통의 소방수 [ 3 ]
참모에서 지휘관으로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전으로 제2차 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모델은 제4군단 참모장으로 참전을 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폴란드 남부지역에서 작전을 펼칠 제4군단의 세부 작전계획 수립에 탁월한 업적을 보이게 되었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곧바로 서부전선의 주력 야전군인 제16군 참모장으로 영전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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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은 제4군단 참모장으로 제2차 대전을 시작하여
쉬지 않고 종전 시까지 야전에서 활동한 몇 안되는 독일 장성이었습니다 ]
독일 제16군은 1940년 대 프랑스전선이 발발하자 독일 침공군의 주역인 폰 룬드슈테트 ( Karl Rudolf Gerd von Rundstedt 1875~1953 ) 가 지휘하던 A 집단군 예하부대로 편제되었는데, A 집단군의 선봉인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 Panzer Group Kleist ) 이 전선을 돌파하면 후속하여 즉시 전선을 인계받은 후 돌파구를 계속 확대하는 주요임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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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군은 돌파구를 확대하는 중요 임무를 훌륭히 달성하였습니다 ]
제16군은 1940년 5월 룩셈부르크와 남부 벨기에를 거쳐 세당을 돌파하고 마지노선 북부를 차단함으로써 프랑스군을 양단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게 되었고 이러한 전과를 세밀하게 수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모델은 1940년 9월 제3전차단장으로 영전함으로써 당대 독일 최고의 사단 급 부대를 지휘하는 경험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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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전선 돌파의 분수령이 되었던 독일군의 뫼즈강 도하 ]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이 개시되자 모델의 제3전차사단은 맹장 구데리안의 제2기갑군 예하부대에 소속하여 모스크바진격의 선봉으로 맹활약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전과로 1941년 말 모델은 중장으로 승진하여 제41장갑군단장으로 승진하여 부임하는데 지지부진한 모스크바에 대한 공략을 하루빨리 마무리 지으라는 중책이 신임 군단장에게 부여됩니다.

[ 방어진지 구축에 동원된 모스크바 시민들 ]
그러나 그가 제41장갑군단장으로 부임한 1941년 말은 최악의 혹한이 러시아 평원을 감싸기 시작하여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추위와 더불어 모스크바를 사수하려는 소련의 강력한 저항은 독일의 공세를 둔화시켰는데 모델은 이러한 상황 하에서 모스크바 서쪽 20 Km 까지 진격하는 괴력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도 영하 40도가 계속되는 12월이 되자 더 이상의 진격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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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되자 더 이상 독일의 진격은 어려웠습니다 ]
하지만 지휘관으로써 모델의 능력은 다음해가 되자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 참모나 단위부대장으로 참전하여 공세작전을 펼칠 때는 모델뿐만 아니라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독일 지휘관들이 앞을 다투어 놀라운 전공을 세워왔지만 역설적으로 소련이 공세로 전환을 하자 모델의 독특한 능력이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 동장군의 엄호를 받고 소련군의 반격이 개시됩니다 ]
그의 방어전은 압도적인 적의 공세를 지형지물 등을 이용하여 단지 지연시키거나 수성하는 것 같은 전통적인 개념의 방어 작전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하여 들어오는 적의 틈새를 노려 밀어붙여 괴멸시키는 공세적 방어의 형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델의 독특한 지휘 능력은 이후 독일의 여러 지휘관 중 그를 총통의 소방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하였을 만큼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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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이 진격이 둔화 되자 모델의 능력은 서서히 드러납니다 ]
이것은 호트, 만토이펠, 롬멜같은 저돌적인 지휘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이들이 공세시기에 알맞은 공격형 지휘관이라면 모델은 독일이 적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방어형 지휘관이었습니다. 그것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지 현지고수나 지연이 아닌 공세적 방어라는 파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41년 12월, 모델의 명성을 드높이게 되는 기념비적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