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다목적댐 보조댐의 야경.
예와 전통을 중시하는 선비의 고장 안동에도 [팔경]이 있다
그러면 안동팔경은
[仙漁暮帆], [歸來朝雲], [西岳晩鐘], [臨淸古塔], [鶴駕歸雲], [燕尾細雨], [陶山明月], [河回淸風]
등 여덟 군데 명승지를 일컬음이다.
안동 고산서원[高山書院 : 안동시 南後面 소재. 1789년(정조 13)에 이상정(李象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지방 사림(士林)에서 건립.]에 소장된 [와혈(窩穴)](이완규 지음)이라는 책에 安東八景歌라는 한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누가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설에 의하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0-1781) 선생이 지었다고도 한다.
仙漁臺下銀魚肥 선어대 아래에 은어들은 살쪘고
歸來亭上白雲遊 귀래정 위에는 흰구름 노니는데 西岳寺樓前日樂 서악사 누 위에서 즐거웠던 지난날 臨淸閣軒古時愁 임청각 마루에서 옛시름 겨워하네 鶴駕山影照三郡 학가산 그늘은 세 고을에 드리우고 燕尾園名傳萬秋 연미원 이름은 만세에 이어지니 西厓祠前松竹綠 하회마을 앞에는 송죽이 푸르고 退溪門下洛江流 도산서원 아래는 낙동강이 흐르누나 <1경> 선어모범(仙魚暮帆) / 선어대 저문 날의 돛단배
(좌 : 1960년대, 우 : 1990년대 사진)
선어대는 안동시 용상동에 소재한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이 깎아지른 듯한 단애를 휘돌아 흐르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는 소(沼)를 이루는 청정 경관은 도시 개발과 하천 정비라는 근대화 바람으로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2경> 귀래조운(歸來朝雲) / 귀래정의 아침 구름
(좌 : 1960년대, 우 : 1990년대 사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귀래정은 고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 선생의 둘째 아들인 낙포 이굉 선생이 지은 정자이다. 이굉 선생은 사헌부 지평, 상주목사, 개성유수 등의 직을 지내던 중,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삭탈관직되었다가 중종반정 때 다시 기용되었으나, 연로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건너편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처지가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너무나 흡사해서 정자 이름을 [귀래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안동의 수많은 정자 가운데 귀래정을 비롯하여 임청각, 군자정, 하회의 옥연정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정면 4칸 배면 2칸 규모의 T자형으로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은 마루 주위에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고 그외는 모두 사각기둥을 썼다. 창문에 중간설주가 남아잇는 것이 특징이다. <3경> 서악만종(西岳晩鐘) / 서악사의 저녁 종소리 (서악사)
안동시 태화동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서악사는 원통전, 요사채의 2건물로 된 사찰로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옛 안동부에는 사악(四嶽)이 있었는데 그 중 서악에 지은 절이 바로 서악사이다. 사악은 동의 동악사, 서의 서악사, 남의 남산 순천사, 북의 금학산 수정사 등이다.
법당 안의 동종은 근년인 1933년 3월에 조성되어 오래 되지는 않았으나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충실히 재현한 유물이라는 가치가 있다고 한다.
<4경> 임청고탑(臨淸古塔) / 임청각과 오래된 전탑
(우 : 임청각 주건물. 좌 : 7층 전탑)
임청각은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 이씨의 대종택 이다.
세칭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었다. 일제시대 철도 부설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철거당하고도 이런 규모를 보여주는 99칸 집이었다.
조선 세종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 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 ‘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물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고, 임청각 앞의 7층전탑은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5경> 학가귀운(鶴駕歸雲) / 학가산으로 몰려드는 구름
(학가산)
학가산은 경북 안동시 북후면과 서후면, 예천군 보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870m이다.
각 지방에서 보이는 모양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하는데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게 보인다고 '문둥이봉', 영주에서는 평평하게 보여 '선비봉', 예천에서는 모습이 수려하다 해서 '인물봉'이라 한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국사봉인데 정상에 서면 예천, 안동, 영주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산의 남쪽면에는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蒙塵,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으로,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김을 의미함) 때 쌓은 것이라는 학가산성이 남아 있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면 낙동강 줄기가 보인다.
학가산은 숲이 울창하고 등산로가 조용할 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오지 마을과 경승지를 품고 있어 당일 산행코스로 알맞은 산이다.
<6경>연미세우(燕尾細雨) / 제비원에 내리는 이슬비
(제비원 석불)
안동시 이천동 제비원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로, 정식 명칭은 [안동이천동마애불입상]이며, 보물 제 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옛 연미사(燕尾寺, 속칭 제비원) 터로 전하는 곳의 서향한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몸체는 넓은 천연암벽에 새기고,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11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머리의 뒤쪽은 파손되었으나 앞쪽은 완전하며, 육계(肉 실사 변에 介 = 부처의 32상 중 하나로 정수리 부분에 혹 모양으로 솟아 있는 것)가 높고 소발(素髮)이며, 얼굴형은 갸름하다.
이목구비는 크고 조각수법이 예리하며, 특히 옆으로 길게 뻗어 깊게 팬 눈과 높은 콧날은 얼굴의 단순한 윤곽과 어울려 위압감을 준다. 또한 입술의 굴곡진 형태가 사실적으로 완벽하게 묘사되어 얼굴에 생동감을 준다.턱 밑에는 목걸이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양쪽 어깨에까지 직선으로 내려오는 법의 주름과 가슴을 가로지르는 내의의 띠를 간략하게 선각으로 표현했으며, 양쪽 손은 얕게 부조하여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했다.
오른손은 배에 대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장지와 엄지를 맞대고 있는데, 아미타구품인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인 듯하다. 발 밑에는 커다란 단판(單瓣) 연꽃무늬가 음각되어 대좌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머리를 별석으로 조각하여 올린 거대한 마애불로는 경기도 '파주용미리마애불입상(보물 제93호)'과 공주 계룡산의 마애불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거석불(巨石佛)이 괴체화(塊體化)되는 현상의 한 줄기를 이룬다.
<7경> 도산명월(陶山明月) / 도산서원의 밝은 달
(좌 : 도산서원 경내. 우 : 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력하였다.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년),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이듬해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하사받은 사액(賜額) 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9년에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다.
<8경> 하회청풍(河回淸風) / 하회마을의 맑은 바람
(하회마을 전경)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이다.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 동족 부락으로, 국보를 비롯해 보물, 중요민속자료, 중요무형문화재 등 값진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1984년 1월 민속보존마을로 지정되었다.
동쪽은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서·남·북 경계를 따라 마을 전체를 태극형으로 감싸 흐른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을 이루는 길지(吉地)로 임진왜란 때는 전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북쪽으로는 울창한 노송림대가 있으며, 마을 중앙에는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삼신당나무로 삼고 있다. 강 건너의 부용대는 천연의 병풍과 같은 형태를 자아내며, 이 일대는 백사청송이 어울려 경승을 이룬다.
과거 신분제 사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300~500년 된 130여 호의 유서깊은 대·소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유운룡의 종택인 안동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유성룡을 모신 종가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을 비롯해 하회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하회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제85호)·하회빈영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하회유시주가옥(중요민속자료 제87호)·하회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하회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하회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하회주일재(중요민속자료 제91호) 등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이곳의 오랜 민간전승놀이로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와 강상유화(江上流花) 놀이인 줄불놀이가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쓰이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소재 병산서원은 사적260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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