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전주 한옥마을(hanok.jeonju.go.kr)은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지난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 후. 규제에 묶여 슬럼화되었다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한옥마을은 관광용 '테마파크'가 아닌 실제 주민들이 살아가는 한옥들이 700여채 모여 있는 곳이다. 지난 가을 찾았을 때와는 달리 볼썽사나운 전선은 땅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물레방아와 '미니 개울'이 지나는 길은 한결 정리가 말끔히 된 느낌이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마주 선. 비잔틴·로마네스크 양식 전동성당은 100년이 지난 이제는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겠지만 서로 어울리며 함께 '고전미'를 내뿜는다.
허름한 이발소와 약국의 옛 간판이 붙어 있는 나지막한 단층 건물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향수를 자극하고 있고. 새로 들어선 공예품 공방과 멋스런 카페는 한옥마을의 고고한 전통에 세련미를 더하는 요소가 된다. 한마디로 전주 한옥마을은 서울 삼청동이나 도쿄 간다(神田). 뉴욕의 소호거리를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니 그보다 낫다. 역사와 전통이 주는 고상한 매력은 어디에서도 사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년고택에서의 하룻밤.
한옥마을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전통 고택에서 숙박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 사람의 몸과 가장 어울리는 집인 한옥에서 자고 일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근래 다녀본 여행 중 최고의 경험이 되리라 생각된다. 늦은 밤 쪽마루에 걸터 앉아 풀벌레가 거들어 대는 담소를 두런두런 나누고. 아침에 일어나 미닫이를 열고 하품을 한 다음 정원의 흙을 밟고 산책을 한다는 것은 한옥에서 일어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에 가깝다.
700여 채의 한옥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학인당(學忍堂). 올해로 꼭 100년된 상류층 가옥인 학인당의 당호는 전주 효자로 소문난 백낙중의 호 인제(忍齊)에서 따왔다. 이름난 부자였기도 한 인제는 1908년 고종 황제의 허락으로 궁궐을 짓는 대목(궁궐짓는 목수)을 하사받아 호박모양 주춧돌. 위로 솟은 곡선형 서까래 등 조선후기 궁궐양식이 나타나 있는 집을 지었다. 건축 당시 연인원 4280명과 백미 4000석을 투입한 대공사였다. 지금은 사랑채. 안채. 별당채. 뒷채. 헛간. 쌀광 등 7개의 건축물만이 남아있는 학인당은 평범한 한옥이 아니다. 덧문을 대 왜식 가옥의 복도가 있는가 하면. 천정이 높고 화장실과 욕탕이 실내에 위치하는 등 근대 양식 건축기법이 골고루 나타나 있는 건축사적 사료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대저택이다. 광복 직후 백범의 숙소로 쓰였다는 등 역사적 의미도 깊지만. 정작 마음에 드는 것은 아름다운 정원을 그저 보고 있으면 마음 마저 편안하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가 일품이다. 학인당에서 머물고 아침 일찍 일어나 택내에 있는 선다원에서 전남 강진 만덕산 야생차로 다도를 체험해보는 것도 놓치면 곤란하다. 솟을 대문으로 우뚝 솟은 효자문이 버티고 있어 가정의 달. 효(孝)를 곱씹어볼 좋은 가족 여행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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