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스크랩] 경북 경주 남산 석불 군상 - 천년미소 신라불상의 ‘노천박물관’

鶴山 徐 仁 2008. 5. 16. 14:19
<박상문의 Photo & Essay>
천년미소 신라불상의 ‘노천박물관’
경주 남산 석불 군상
박상문기자 moonpark@munhwa.com

환상의 불가세계 만다라적인 기법으로 조성된 탑골의 마애조상군은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불가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붉은 입술 삼릉계곡의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되어 있는 마애관음보살상은 풍만한 얼굴에 입술에는 붉은색이 남아 있다.

남산 최대 불상 약수계곡의 마애입불상은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 윗면에 머리를 따로 만들어 올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탄생의 순간 상선암 마애여래대좌불은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나오는 순간을 표현한 것으로 남산에서 두번째로 큰 불상이다.

생생한 매듭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된 냉골의 석조여래좌상은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엄세계 구현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칠불암 마애석불은 커다란 바위를 쪼아 대불들을 조성해 화엄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천상에 앉은 듯 칠불암 위의 가파른 절벽에 새겨져 있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다.

감실여래상 부처골의 감실여래좌상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가 돌로 만든 집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모습으로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남산 소나무 옆
두루뭉술한 바위가 갑자기 부처가 되고
흐르던 시간이 소리 없이 멎어서
신라로 돌아간다.
천년! 부처는 그렇게 앉아 계시고
천년! 부처는 그렇게 서 계실 것이다.

부처는 바위, 바위는 부처
우러러보는 사람도 부처
모두 피가 통하는 한마음 한 몸이다.

푸른 하늘, 흰 구름
구름 그대로, 바위 그대로 그저 그대로다.
천년이 왔다 가는 그저 그대로다.

― 김원룡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경주에는 남산이 있다. 남산은 옛 서라벌의 진산이다. 신라왕이 살던 궁궐의 남쪽에 있다고 해 남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다. 남산에는 수많은 불상과 탑이 산과 계곡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널려 있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에는 봉우리가 둘 있다. 북쪽에 있는 금오봉(468m)과 남쪽의 고위봉(494m)이다. 해발 500m도 되지 않으니 낮은 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동서로 4㎞, 남북 길이는 10㎞나 된다. 남산에는 40개가 넘는 계곡이 있는데, 원시림처럼 골은 깊고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많아 작은 것 같으면서도 큰 산이라 할 수 있다.

남산에 산재해 있는 유물과 유적은 발견된 것만 672점이다. 절터만 147개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라인들이 요즈음처럼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사찰마다 연등에 불을 밝혔다면 남산의 밤 모습은 어떠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남산 골짜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을 만날 수 있는 냉골을 찾았다.

본격적인 답사를 하기 전 삼불사 인근의 배리 석불 입상과 처음으로 조우했다.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꼭 다문 입, 깊게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이 분명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간직한 석불이다.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인 신비감이 물씬 배어난다.

삼릉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약 300m쯤 위로 올라가자 머리가 없어진 석조여래좌상이 나타났다. 기백이 넘치는 위풍당당한 불상의 왼쪽 가슴에는 예쁜 매듭이 지어져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산등성이에는 입가에 방글방글 미소를 머금은 채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마애관음보살입상이 탐방객을 반갑게 맞고 있었다.

조금 더 계곡을 오르자 뛰어난 신라불교의 회화를 보는 듯한 모습의 선각육존불이 현생과 내생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마애불과 선각여래좌상이 번갈아 순례자들의 시선을 빼앗는가 싶더니 마침내 상선암의 마애여래대좌불에서는 남산 전체가 불보살의 세계를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동남산의 탑골 마애조상군은 환상적인 불가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높이 약 10m, 둘레가 30여m 되는 거대한 바위에는 비천상,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 등 총 34점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칠불암의 마애조상군 역시 커다란 바위에 대불들을 조성해 놓음으로써 화엄세계를 엿보게 한 것은 신라인들의 불심을 느끼게 해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바위산을 하층기단으로 삼고 우뚝 선 용장사 삼층석탑 또한 부처님 나라를 그리는 신라인들의 간절한 신앙이 담겨져 있다.

조선 초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용장계곡 용장사지의 석조삼륜대좌불은 당시 대현스님이 염불하면서 돌면 이 미륵상 역시 스님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신라인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남산 바위 속에는 하늘나라의 신과 땅의 신이 머물고 있다고 믿어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겼다. 그리고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산과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백성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나타나 보살펴 준다는 신앙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삼국통일이 된 뒤 남산에는 더욱 더 많은 불상과 탑이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산은 불교의 유물·유적과 함께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신라의 보물창고임에 틀림없다. 산 전체가 세계적 문화유산인 남산을 보지 않고 어찌 경주를 얘기할 것이며, 남산을 한두번 오르고 어찌 남산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바위에 새겨진 부처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하산하는 동안 자비와 광명으로 가득한 신라 천년의 환한 미소가 남산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다.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8-05-10
출처 : 산내들바다
글쓴이 : 엄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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