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패전국의 슈퍼에이스 [ 上 ]
하늘의 검투사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자 흉악한 인간들은 이 신기한 놈을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이는데 효과적으로 이용할까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초 군용기의 등장목적은 정찰이었으나 하늘에서 지상을 공격하는 것이 적을 제압하는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비행기가 탄생하고 무기가 되는 데는 1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예를 보면 인간이란 동물은 나쁜 짓을 하는데 천부적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적의 공격을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효과적으로 하늘로부터의 적 공격을 방어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지상에서 적의 비행기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하늘에서 아군기로 맞상대하여 격추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확실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투기간의 공대공전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전투기 사이의 진검승부가 개시되었습니다 ]
공대공전투에서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는 당연히 승자의 기쁨과 상부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공중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유능한 조종사들이 등장하였는데 통상적으로 5기이상의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는 최고의 용사라는 의미를 지닌 에이스 Ace 라는 영광 된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 제트 전투기 시대의 최초 에이스로 기록된 자바라 (中) ]
5기가 적은 것 같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독파이팅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던 초기 공대공전투에서 상대를 격추 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특히 많은 에이스들이 탄생하였던 전쟁이 제2차 대전이었는데 5기 격추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둔 수많은 조종사들이 있었습니다.
[ 당연히 초기 에이스들은 독파이팅의 달인들이었습니다 ]
사상 최대의 전쟁인 제2차 대전에서 연합군 최고 격추기록은 소련의 코체더브 ( Ivan Nikitovich Kozhedub 1920~1991 ) 가 거두었던 62기였습니다. 서부전선에서는 영국공군의 존슨 ( James Edgar Johnnie Johnson 1915~2001 ) 이 기록한 38기였고 함재기 조종사로는 태평양 전선에서 활약한 미 해군 맥캠벨 ( David S. McCampbell 1910~1996 ) 의 34기였습니다.
[ 태평양 상공의 저승사자 맥캠벨 ]
한마디로 놀라운 전과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기록들도 루프트바페 에이스들에 비하다면 감히 비교조차 안 되는 미미한 기록이었을 뿐입니다. 연합군 최고라 할 수 있는 30~40 기의 격추기록을 가진 조종사들의 이름은 독일의 에이스들 명단에서 찾을 때는 뒤에서부터 거꾸로 보아야 찾기가 쉬울 정도입니다.
[ 연합군 최고의 에이스 코체더브 ]
사실 독일의 에이스들은 제2차 대전뿐만 아니라 최초의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졌던 제1차 대전 당시에도 빛나는 성과를 기록하였습니다. 제1차 대전 당시 최고의 격추기록을 기록하였던 에이스중의 에이스가 흔히 붉은 남작으로 널리 알려진 리히토펜 ( Manfred Albrecht Freiherr von Richthofen 1892~1918 ) 입니다.
[ 전설의 에이스 리히토펜 ]
그는 전쟁 중에도 대중으로부터 인기가 높았고 전사 후에는 신화로 남게 되었을 만큼 아군은 물론이거니와 적군에게도 존경의 대상이었던 인물로 격추기록은 무려 80기입니다. 비공식적인 기록에는 100기 이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80기만해도 앞서 언급한 코체더브의 62기를 간단하게 뛰어넘는 대기록 이었습니다.
[ 루프트바페의 수 많은 후배들이 리히토펜의 전설을 뛰어넘었습니다 ]
그렇지만 전설로 내려오는 붉은 남작의 전과는 그의 수많은 직계 후배들이 제2차 대전 때 거두었던 성적에 비하면 등수 안에 들지 못하는 초라한 ( ? ) 성적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붉은 남자의 후배들이 도대체 어떠한 전과를 기록하였기에 리히토펜의 무시무시한 전과가 그저 그런 기록으로 보이게 만들었을까요 ?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