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누구나 멋진 여행을 꿈꾼다. 섬과 암자를 떠돌아 다니다 보니 연말에는 조금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다.
강원도 오지가 어떨까, 아니면 동해안 국도를 달리는 것은, 남도의 깊숙한 섬도 좋을 듯하였다.
한참을 궁리하는데 일기예보를 한다.
연말에 폭설이 온다고. 순간 눈 내리는 변산이 떠올랐다. 변산을 간 것은 수십 차레, 언제 가도 지겹지 않은 새로운 곳,
눈 오는 변산은 이번이 두번째가 되리라. 정갈한 내소사에 눈이 쌓이면 아마 정신을 잃으리라.
격포에서 일어나니 밤새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다. 백합죽 한 그릇을 얼른 해치우고 내소사로 향했다.
해가 구름 뒤에 숨고 나타나기를 몇 차레 반복하더니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 친다. 운전하기가 힘이 든다.
몇 번이고 포기할까를 생각하다 눈 속의 내소사를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평소에는 이십 여분 남짓한 거리가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 600여미터에 달하는 이 숲길은 해방 직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다. 바람이 드세어지자 가지 위의 눈들이 눈사태처럼 몰려 온다.
얼굴과 옷이 온통 눈투성이다. 옷을 털어 내고 관리사무소에서 우산을 하나 빌렸다. 눈오는 날에 사진을 찍기 위한 필수품이다.
바람이 심하여 우산도 소용없어 보이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위력을 발휘하리라.
긴 전나무 숲길이 끝나자 벗나무와 단풍나무가 눈옷을 입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봄에는 벗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가을에는 미치도록 붉은 단풍길이 예쁘다.
천왕문은 낮은 담장을 옆에 끼고 있어 단절이 아닌 소통의 문인 셈이다.
내소사 전경 경사면을 따라 낮은 축대와 층계가 있는 아름다운 가람이다.
근래에 손을 많이 보았다고 하나 번잡하거나 요란하지가 않아 여행자가 최고로 꼽는 절 중의 하나이다.
소통의 천왕문에 들어서니 강풍이 몰아 친다. 잠시 바람을 피하고 눈 쌓인 경내를 바라 보았다.
낮은 돌축대에 소담하게 내려 앉은 내소사 경내의 정갈함과 아름다움은 비길데가 없다.
영주 부석사의 장쾌함이 남성적이라면 내소사의 단정함은 여성적이다.
조선의 명기 매창은 '내소사에는 살고 싶고 개암사에는 소풍가고 싶은 곳'이라고 극찬을 하지 않았던가!
보종각 종각 안에는 원래 청림사 종이었다가 철종 때에 옮겨 온 고려 동종(보물 제277호)이 보관되어 있다. 발견당시 종에서 소리가 나지 않아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가져 가기로 했는데,
내소사 스님이 종을 치자 비로소 아름다운 울림이 이어져 내소사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봉래루 아래를 고개 숙인채 걸어가면 어느 새 소나무 뒤로
시원스레 나래를 편 대웅전이 조금씩 그 자태를 드러낸다.
대웅전 오르는 길은 부석사 대웅전 오르는 길과 흡사한 긴장이 있다.
누각 밑을 고개 숙여 묵묵히 걸어 가노라면 눈 앞에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눈 쌓인 돌층계와 소나무 한 그루 사이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대웅전은 내소사의 얼굴이다.
능가산의 연봉들이 감싸고 있는 대웅전의 위치 선정은 탁월하다.
이 건물은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토막들을 깍아 끼워 맞추어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청민선사가 절을 중건할 당시에 대웅전을 지을 목수는
건물은 짓지 않고 3년 동안 목침덩이만한 나무만 다듬었다고 한다.
장난기 많은 사미승이 그 중 한 개를 감추자, 나무토막 수를 헤아려 본 목수는
법당을 지을 수 없다고 하였다. 사미승이 뒤늦게 나무토막을 내놓았지만 부정한 재목은 쓸 수 없다 하고
목수는 끝내 그 토막을 빼고 법당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전 오른쪽 앞 천장만 왼쪽에 비해 나무 한 개가 부족하다고 한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 친다. 사람들이 대웅전 처마 밑으로 바람을 피해 들어 온다.
설선당 처마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어 추위를 실감케 한다.
월명암 건너편 산자락에 앉은 내소사는 내변산의 관문이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진 고찰. 원래 이름은 소래사라고 한다.
소정방이 이 절에 머물며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내려오지만
미당 서정주가 쓴 내소(來蘇)란 이름에 얽힌 얘기가 더 그럴싸하다.
대웅전 단청작업을 할 때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문을 열지 말라고 했으나 방정맞은 중이 창구멍으로 들여다 보았다.
붓을 잡고 단청을 하던 새가 쓰러지며 단청작업은 내생(來生)이나 소생(蘇生)에 하라고 해서 내소란 이름이 나왔단다.
수령 950년 된 입암마을의 할아버지 당산나무 할머니 나무는 일주문 앞에 있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내소사 스님들이 할머니 당산나무 앞에서 불경을 외며 입암마을 주민들과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설선당 스님들의 요사채로 땅의 높이에 따라 자연스레 터를 잡았다.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2층 건물이 특이하다.
지장암 전나무 숲길을 얼마쯤 걷다 보면 오른쪽에 지장암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이 길을 따라 100여 미터 정도 가면 지장암이 나온다.
내소사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전나무 숲길이야 절로 가는 길이니 놓칠리 없겠지만
대웅전 꽃창살과 대웅전 내 불상 뒤의 백의관음보살상이다.
또한 천왕문 좌우의 낮은 담장을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다. 봉래루의 천연덕스러운 주춧돌과 기둥들,
땅 높이가 다른데도 지형을 그대로 살린 설선당의 2층 건물도 교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과 여력이 있다면 청련암, 직소폭포, 월명암에 이르는 산길을 가야 내소사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끝으로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시점 천왕문 가기 전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연못 옆의 작은 실개천을 건너면 부도전이 있는데,
그 중 탄허스님이 흘림체로 호쾌하게 쓴 해안스님의 부도비"해안범부지비(海眼凡夫之碑)" 가 단연 눈에 들어 온다.
生死於是 是無生死(생사가 여기에 있는데 여기에는 생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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