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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프린스' 백서가 알려주는 것

鶴山 徐 仁 2007. 12. 2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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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프린스' 백서가 알려주는 것    

     


  • 허베이 스피리트호(號) 기름 유출 후 씨프린스 사고 백서(白書)를 구해 읽어봤다. 읽고 나니 그때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됐다. 운이 조금만 삐끗했다면 한반도 바다엔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닥쳤을 것이다.

    씨프린스는 갑판에 축구장 세 개가 들어갈 수 있는 유조선이다. 기름탱크가 중앙에 6개, 좌우에 5개씩 16개가 있다. 씨프린스가 중동에서 원유 26만6852t을 싣고 여수 앞바다로 온 게 1995년 7월 18일 밤이다. 선원은 20명, 선장은 41세 임모씨였다.

    바다에서 사흘을 대기한 씨프린스는 21일 오후 여수 삼일항 원유 부두에 들어가 기름 하역작업을 벌였다. 태풍 페이가 올라온다는 소식에 22일 오후 하역을 중단하고 30㎞ 떨어진 먼 바다로 나왔다. 기름은 7개 탱크에 8만6886t 남아 있었다. 선장 임씨는 태풍이 올라오다가 세력이 약해지면서 부산 쪽으로 진로를 꺾지 않겠느냐고 봤다. 반대로 페이는 B급에서 A급으로 힘이 더 세졌다. 방향도 여수로 곧장 향했다. 23일 오전 10시 태풍주의보가 경보로 바뀌었다.

    선장은 배를 제주 쪽으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15? 닻을 끌어올리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23일 오전 11시50분. 파도는 8~10m, 바람은 초속 45m였다. 왼쪽 옆구리로 태풍을 받은 씨프린스는 바람에 자꾸 떠밀렸다. 배는 오후 2시5분 여수 남쪽 32㎞ 작도에서 수중 암초에 걸렸다. 배 밑 철판이 밀려들어오면서 기관실에 화재가 발생했다. 통신이 끊기고 동력을 상실한 배는 오후 2시30분 암초에서 떨어져 나와 8㎞를 표류하다가 오후 5시 소리도 암초에 다시 걸렸다. 15.7m, 5.6m짜리 두 개 암초가 배 밑바닥을 뚫고 들어왔다.

    저녁 8시26분 기관실에서 세 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기관장은 갑판을 덮친 파도에 쓸려갔다. 선장과 나머지 선원 19명은 23일 새벽 5시30분 배를 탈출했다. 소방함들이 물을 뿌리기 시작한 것은 24일 오후 4시나 돼서였다. 불길은 25일 오전 10시 완전히 잡혔다.

    배에서 기름을 빼내는 데 한달 보름이 걸렸다. 배 밑바닥으로 뚫고 들어온 암초가 배를 못박아 고정시켰던 것이 행운이었다. 배가 풍랑에 이리저리 떠밀렸으면 선체가 동강 날 수 있었다. 불이 기름탱크로 번지지 않은 것도 천운이었다. 구난 과정도 조마조마했다. 선체 중앙에서 선미까지 모든 탱크가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무리한 힘이 가해지면 선체는 언제라도 깨질 수 있었다. 실제 8월 27일 7호 태풍 재니스가 덮쳤을 때 선체 손상은 가중됐다. 씨프린스는 선박 해체업자에 1달러에 팔려 필리핀으로 예인되다가 12월 24일 수비크만 근처에서 돌풍을 만나 침몰해버렸다.

    백서는 씨프린스 사고가 태풍을 가볍게 보고 대피를 늦게 한 선장의 판단 착오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씨프린스 유출 기름 5035t은 울산·포항까지 흘러갔다. 만일 싣고 있던 8만6000t이 모두 새나왔다면 어떤 결과가 왔을까. 씨프린스가 애당초 적재했던 26만t과 함께 침몰됐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번에 태안을 오염시킨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유출 기름은 8000t이다.

    우리나라엔 울산·여수·대산·인천에 정유시설이 있다. 기름 10만~30만t을 실은 유조선이 한해 600척 서·남해를 오간다. 유조선이 한반도 근해에 들어왔다가 떠날 때까지 5일 걸린다고 치면 한반도 바다엔 늘 8~9척의 유조선이 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오가는 유조선도 남해를 지난다. 서·남해는 연간 2~3개 태풍도 지나간다. 씨프린스 때처럼 언제나 운이 좋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삼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