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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입국(信仰立國) ⑥

鶴山 徐 仁 2007. 9. 26. 09:36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신앙입국(信仰立國) ⑥

- 김교신의 최후 -

함흥질소비료공장의 노동자 기숙사에서 사감으로 일하고 있던 때에 김교신 선생은 노동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노동자들이 허구한 날 벌리는 도박판을 찾아다니며 만류하고 술 취하여 싸움질 하는 일꾼들을 회유하기를 밤낮없이 열중하였다. 그런 중에도 노동자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기독교 신앙에로 입신(立信)하기를 간곡히 권하곤 하였다. 그러든 터에 기숙사의 노동자들 사이에 당시로는 치명적이 돌림병이었던 장질부사가 돌게 되었다. 감염된 노동자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게 되었다.

무서운 돌림병에 회사측에서도 속수무책이어서 감염될까 봐 환지들을 피하려 들기만 하고 그들을 돌보려는 이가 없었다. 이에 김교신 선생은 환자들을 돌보기를 마치 부모나 형제인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 수발하였다. 선생을 아끼는 이들이 그렇게 무리하지를 말고 선생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를 권면하였으나 선생께서는 고개를 흔들며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병들어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나를 위하여 죽으셨는데 내가 노동자들을 돌보다가 죽게 된들 무슨 아쉬움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돌보기를 밤잠을 자지않고 돌보기를 계속하고 죽은 환자들은 마지막 매장까지 정성을 쏟아 뒷바라지 하였다. 그렇게 과로에 과로를 거듭한 결과 선생 자신이 장질부사에 감염되고 말았다. 평소에 대단히 건강한 체력이었으나 너무나 과로가 겹쳐 무리한 탓이었다. 병들어 눕게 된 얼마 후 선생은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나 그리던 조국해방이 불과 3개월 앞둔 1945년 5월 달이었다.

선생의 나이 겨우 44세 되던 때였다. 선생이 살아계섰더라면 해방 후의 조국의 정신세계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 되었을 것이었는데 너무나 아쉽게도 하늘나라로 적을 옮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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