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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古堂) 조만식(曺萬植)과 오산학교

鶴山 徐 仁 2007. 9. 13. 13:56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고당(古堂) 조만식(曺萬植)과 오산학교

남강(南岡) 선생이 105인 사건으로 감옥에 있는 기간에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초빙되어 온 분이 고당(古堂) 조만식(曺萬植) 선생이다. 그가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직후 민족운동과 교육운동에 헌신할 마음을 품고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그가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은 도산 안창호 선생으로부터 큰 감화를 받고 나서부터였다.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이끌던 남강 선생이 감옥에 가게 되자 처음에는 춘원 이광수 선생을 교장으로 모셨으나 춘원이 학교와의 사이에 갈등이 생겨 시베리아로 가버린지라 교장 자리가 비어 있었다.

고당 선생이 32세 때에 처음엔 3개월만 오산학교에 머물며 학교를 수습하기로 약속을 하고 왔으나 9년간이나 교장으로 있게 되었다. 그는 20대 시절 한 때 방탕한 때도 있었으나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삶의 방향을 바꾸고는 진실함을 추구하는 삶으로 전환하였다. 그는 검소한 차림새를 신조로 삼아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박박 깍은 머리에 검소한 생활을 즐겼다. 그가 오산학교에 부임해 오자 기숙사 방에 기거하면서 사감 일까지 겸직하였다. 그의 생활신조가 학생들과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설립자 남강 때부터 지켜져 온 오산학교의 전통이었다.

그는 이와 같이 학생들에게 스스로 모범을 보이며 학생들을 검소한 생활과 규율 있는 생활로 이끌었다. 그가 기숙사 생활규칙을 엄하게 하였지만 자신이 스스로 본을 보여 철저히 지켰기에 학생들에게 감명을 주어 학생들이 그가 세운 규율을 지켰다.
그가 이끈 오산학교의 교육은 요즘 같은 지식전달의 교육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몸소 실천하여 삶으로써 보여주고 길러 주는 교육이었다. 고당은 자신이 실천하면서도 자신의 생활방식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일이 없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따라오게 하였다. 고당의 이런 교육방식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바람직한 교육일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스승들이 고당처럼 행하면 학생들은 스스로 따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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