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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物情報 參考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鶴山 徐 仁 2007. 9. 8. 21:09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의 묘비문

“일생을 남을 위하여 살았고 자기를 위하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이승훈”

위의 글은 남강 이승훈 선생의 비석에 새겨진 글이다. 남강의 일생은 비석에 적힌 그대로 섬김과 바침의 일생이다. 어려서는 남의 집 심부름꾼으로 섬겼고 나이 들어 깨닫고 난 후 겨레와 백성들의 심부름꾼이 되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오산학교에서 그의 동상을 만들어 제막식을 하는 자리에서다. 그가 답사를 하는 차례가 왔을 때다. 구름같이 둘러써서 긴장한 채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뜻밖에도 너무나 간단한 말을 하고는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저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시키셨을 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닷새 후에 그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가 그의 나이 67세였던, 1930년 5월 9일이었다. 협심증으로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그는 다음의 유언을 남겼을 따름이다.

“내가 죽거든 시체를 묻어 썩히지 말고 뼈를 생리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연구하는 데 쓰게 하라.”

그래서 그의 삶을 섬김과 바침의 삶이라 일컫는 것이다. ‘바치고 바치다’가 숨이 다하여 바칠 것이 없어진즉 자기 시신까지 바치려 한 것이다.

요즘같이 자기 것만 챙기려 드는 시절에 남강 같으신 선배의 삶과 정신이 새삼 그리워 몇 자 적어 본다.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정주 오산고보교(定州 五山高普校)의 포부(抱負)

1927년 6월 19일자 동아일보에는 오산학교의 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께서 오산학교 운영의 감회와 포부’란 제목으로 다음의 기사가 실려 있다. 앞서 간 선배들의 민족에 대한 사랑과 기개를 엿볼 수 있는 글이기에 소개한다.

“내가 이 학교를 경영하는 것은 오직 우리 민족에 대한 나의 책임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중입니다. 오늘 오산의 형성은 내 리상의 일단을 실현함에 불과함으로 과거를 회고하여 그 감회를 말하기에는 주저합니다. 그러나 내가 학교를 경영하거나 그외 사회의 모든 일을 할 때에나 신조(信條)를 삼고 나가는 것은 첫째는 ‘민족을 본위로 하라’는 것과 둘째는 ‘죽기까지의 심력을 경주(傾注)하라’는 것입니다.나는 이것으로 어떠한 고난과 핍박과 또는 위험이 앞에 있더라도 싸우고 이기고 또는 위안을 얻습니다. 앞으로도 이것을 가지고 내 리상 일부식(一部式)을 실현케 합니다. 나는 특히 우리 학교에는 장차 녀자고등보통부를 설치할 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의 글에 담겨진 내용의 요점은 오산학교를 운영함에 최고의 이상을 삼은 것이 “민족을 본위로 삼아 죽음을 각오하고 전심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요즘 이 땅의 교육을 맡은 분들의 소시민적 근성에 비추어 생각할 때에 우리들에게 그나마 이런 선배들이 있었다는 것이 크나 큰 위로가 된다. 지금에나마 선배들의 이런 포부와 기백을 이어 받아 이 땅의 교육을 업그레이드시킴에 전심을 기울여야 할 때임을 실감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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