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 城 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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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
송악산 줄기가 뻗어내려 온 만수산의 나지막한 등성이 위에 자리잡고 있다.
943년에 창건된 것을 1994년에 개건하였다
선죽교 - 개성시 선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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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죽교는 고려시대 후기의, 길이 8.35m, 너비 3.36m인 석조 다리.
『고려사』에 의하면 이 다리는 1216년 이전에 건설되었고 건설 당시의
이름은 선지교였다. 그 후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 다리에서 피살된 때부터
선죽교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현재 이 곳에는 난간이 있는 다리와 없는 다리가
있는데 난간이 있는 다리가 선죽교이다.이 난간은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사람이 다니지 못 하도록 설치한 것이고 난간이 없는 다리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그 곁에 새로 놓은 것이다. 선죽교 옆에는 "선죽교"라고 쓴 비석이 있다.
비문은 석봉 한호의 글씨로 전한다
숭양서원 - 개성시 선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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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양서원은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1573년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고려의 유학자였던 포은 정몽주가 살던 집자리에 고려시대 말에 처음 세우고,
조선시대 1573년에 고쳐지어 문충당이라 부르다가 1575년에 사액을 받아
숭양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숭양서원에서는 정몽주 외 16세기의 철학자인
화담 서경덕과 17세기의 학자이자 문학가인 잠곡 김육을 비롯한
유학자들을 추모하여 제사하였다
범사정 - 개성시 박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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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은 개성시 박연리에 있는, 1700년에 세운 조선시기 건물로 우리나라 3대 명폭의
하나인 박연폭포를 옆에 끼고 대흥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언덕길 중턱에 있는 정자이다.
'중경지'에는 1700년에 이 건물을 세우고 옛 이름대로 현판을 달았다고 쓰여있다
박연폭포 - 개성시 박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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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 중심으로부터 26km 산성리의 천마산과 성거산에 끼어 계곡에 있고 높이는
35m이다. 폭포위에 박연이라고 불리는 직경 8m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고모담이라고 불리우는 직경 40m의 용추의 물가에, 큰 '용암'이 수상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용추의 동쪽언덕에 범사정이라는 절이 있다 옛날 어느 만월밤
박진사라는 청년이 불고 있는 피리소리에 홀려서,이 호수의 용녀가 그에게 반해
호수속으로 유인해가 버렸다. .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슬픈나머지 폭포밑에 몸을
던졌다. 그 이후에 호수를 박연이라하고, 폭포밑 담을 고모담이라고 부른다고한다.
옛날부터 조선 3대폭포 중 하나이다. 폭포는 명유 서경덕(徐敬德)과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이른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만월대 - 개성시 송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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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대는, 919년 이후 고려 전기간에 걸쳐 왕궁이 자리잡았던 유적이다. 원래 이 궁궐
안에 "망월대"라 불리던 궁전이 있어 어느 때부터인가 궁궐 전체를 만월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과거엔 외침으로 파괴되고 방치되었으나 현재는 보수돼 잘 보존되고 있다.
송악산을 배경으로 그 남쪽 기슭 한 가운데 자리잡은 고려 왕궁은
궁성과 화성을 합해서 125만㎡, 궁성만은 약 39만㎡의 면적이다
공민왕릉 - 개성시 해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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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1365년~1374년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왕릉이다. 2기의 무덤을 동서로 나란히 세운 쌍릉형식으로, 고려 31대 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서쪽)과 왕비(노국 공주)의 무덤 정릉(동쪽)으로 이루어졌다.공민왕은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방대한 무덤공사를 직접 지휘하였다
고려성균관 - 개성시 방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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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성균관은 개성시 방직동에 위치한 고려시대(992년)에 세운 국가 최고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1602~1610년)에 재건한 건물이다. 고려는 건국 초기 개경(오늘의 개성)에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를 세웠고, 992년에는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을 설립하고 여기에
국자학, 대학, 4문학과 율학, 서학, 산학 등 6개 학과를 두고 국가 관리 양성 및 유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 국자감은 1298년에 성균감으로,1308년에 성균관으로 고쳐졌다.
개성성 내성 - 개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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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성 내성은 고려 수도성인 개성나성 안의 일부 구간을 막아 쌓은 성이다.
축성 공사는 고려시대 말(1391)부터 조선시대 초(1394)까지 진행되었다.
후릉 - 개성시 판문군 영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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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릉은 조선 2대 정종과 안정왕후의 쌍릉이다. 정종은 태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물러나 개성 백룡산 기슭의 인덕궁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왕후가 1412년에 먼저
죽고 1420년에 정종이 죽어 이 능에 묻혔다.
*황해도*
해주 석빙고 - 황해남도 해주시 옥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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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석빙고는 황해남도 해주시 옥계동에 위치한 고려 초기의
내부길이 28.3m, 내부 높이 4.5m인 석조 건축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를 만들어 이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