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5.10 01:20
“책장 가져오셨다고예? 어서 오이소!”
쪽문을 연 황칠선(72) 할머니가 활짝 웃었다. 8일 밤 대구 대신동. 신축 아파트 아래 철거 예정 건물이 다닥다닥 엎드려 있다. 슬레이트 지붕을 인 방 두 칸짜리 사글세(12만원) 집에서 황 할머니와 배진영(12)군은 3년째 오순도순 살고 있다.
둘은 피 한방울 안 섞인 남이다. 황 할머니는 네댓 살에 남의 집 수양딸이 됐고, 그 집 집안일을 거들며 쉰을 넘겼다. 양모가 숨진 뒤엔 식당에서 일해 연명했다.
진영이는 부모 얼굴을 잊었다. 일곱 살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자 부모가 각자 가출했다. 아홉 살 때까지 외갓집에 살았다. 어느 날 외할머니 친구가 생판 남인 황 할머니에게 진영이를 데려왔다.
- ▲‘거실을 서재로’캠페인을 위한 보급형 책장과 책을 받은 배진영군이 함께 사는 황칠선 할머니 품에 안겨 책을 읽고 있다. /대구=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외갓집에서 더는 못 키운다 한다꼬, 내보고 한번 키워보라 카데요. 그러마고 했어요.”
모르는 아이를 왜 선뜻 맡았을까. 할머니 대답은 간명했다. “지나 나나 외로우니까예.”
그렇게 두 외톨이는 가족이 됐다. 매달 두 사람 앞으로 나오는 각종 지원금은 모두 합쳐 70만원. 할머니가 이 돈으로 둘이 먹을 식량과 죽순처럼 쑥쑥 크는 진영이의 새 옷을 산다.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가정의 달을 맞아 진영이처럼 부모가 아닌 어른과 함께 사는 청소년들에게 보급형 책장과 책을 선물한다. 셋방에 책장이 들어선 날 책장에 책과 학용품을 채우며 진영이는 씩 웃었다. 진영이처럼 부모 대신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과 함께 사는 18세 미만 청소년은 전국에 1000여명이다. 조부모·친척과 사는 아이는 1만1500여명, 어른 없이 자기네끼리 사는 아이는 3000여명이다(복지부 통계). 이 중 600명이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 혜택을 받게 됐다. 김흥수 화백이 5000만원을, ㈜인터파크 도서가 책 6000권을 기부한 덕분이다.
진영이는 매일 아침 1시간 동안 유도를 하고 방과 후엔 복지관에서 과학책을 읽는다. 꿈은 하버드대학 교수.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많이 배워야 아버지를 찾는다”고 해서 꿈을 바꿨다. 아버지는 진영이가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유일한 혈육이다.
간혹 진영이가 말썽을 부리면 할머니가 꽥 하고 소리 지른다. “내 죽으면 니는 우짤래?” 진영이는 그 소리면 질색한다. “겁나는 소리 좀 하지 마이소. 군대는 어떻게 가는지, 대학은 어떻게 가는지 하나또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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