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산주의자였다. 그의 개혁은 레닌 체제의 부활이었다.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언 땅에 오줌 누기’였다. 언 땅에는 봄바람이 불어야 한다. 오줌 누기가 아니라 봄바람 불기, 그게 바로 개혁이다. 그는 오줌 누기 미봉책을 봄바람 페레스트로이카(transformation)라 거창하게 포장했던 것이다.
개혁의 핵심은 공산당 소유 체제(공산주의)를 개인 소유 체제(자본주의)로 바꾸는 것이다. 공익이니 국익이니 하면서 공산혁명의 전리품으로 공산권력이 국부 전체를 독차지하여 저들끼리 권력의 순위에 따라 나눠서 전횡하고 독점하던 위선을 버리고, 존재 자체가 목적인 개인의 이기심을 위선적 공익과 자의적 국익에 앞세워 노동자, 농민, 상인, 기업가에게 골고루 공산당의 소유물을 갈라주고 그들이 힘써 민주적 법률과 자유경쟁적 시장질서 안에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신명나게 재산을 늘리도록 장려하는 것이 바로 개혁이다. 공산주의는 왕과 봉건영주들이 차지했던 재산에 중소지주와 자본가의 재산까지 몽땅 가로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리를 쫓아내고 호랑이가 들어서는 것이다. 봉건주의보다 훨씬 못한 사회가 도래한 것을 그들은 지상낙원이라고 일컫는다. 새로운 지배층에게는 분명 그것이 지상낙원이지만, 90%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지상연옥이다.
고르바초프는 개방은 했지만 개혁은 못했다. 개혁이 뭔지 몰랐다. 공익과 국익이란 것이 공산당의 집단이익에 지나지 않음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마르크스나 레닌처럼 개인의 이기심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바보였음에 틀림없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없는 개방은 금방 망국으로,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다. 개혁은 그 후에 이뤄졌다. 반면에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추구한 동구는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자 꽃샘바람에 잠시 시달리긴 했지만, 수년 내에 EU와 OECD가 다투어 모셔갈 정도로 급속히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등소평이 공산국가에서는 가장 먼저 개혁과 개방을 거의 동시에 추진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공산당 소유를 농민과 노동자와 상인과 기업가에게 뭉텅뭉텅 넘겨 주었다. 동시에 하늘과 바다를 열었다. 죽의 장막을 스스로 불태우고 수출과 수입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친 것이다. 적화통일 10여 년 후에 베트남도 제정신을 차리고 등소평의 뒤를 따랐다.
일신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밖에 모르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제일 문제였다. 그들은 대를 이어 공산당과 왕궁의 소유를 더욱 늘렸다. 외부의 원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공산당과 왕궁의 소유는 더욱 늘어났고 그를 지키기 위한 대량살상무기도 그만큼 늘어났다. 농민과 노동자의 위는 콩알처럼 줄어들었고, 군인과 비밀경찰의 간은 산처럼 커졌다. 교활한 김정일은 이따금 기꺼이 속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한국의 바보들을 위해 화려하게 개혁개방 쇼를 펼쳤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에 혁혁한 공을 세운 남북정상회담 이후 7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북한의 농민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땅 한 마지기 없고, 북한의 노동자는 열흘에 계란 한 개 못 먹는다. 북한의 여성은 한국의 생리대 한 번 차 보는 것이 평생소원이고, 북한의 남성은 한국의 사각 팬티 한 번 입어 보는 것이 이승의 사치스러운 소원이고, 북한의 어린이는 계란을 탁 풀어 한국의 라면 한 봉지 끓여서 혼자서 다 먹어 보는 것이 꿈에도 소원이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 또는 자주’라는 노래는 배부른 바보들의 자아도취적 히브리 노예 합창일 따름이다. 공익과 국익의 이름으로 국가의 모든 재산을 공산당과 김씨왕조가 갈취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은 권력에 끈을 대지 못한 자, 휴전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새보다 못하다. 10대 원칙과 당의 명령을 어기고 훔치거나 번 것 외에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게 없다. 인간의 목숨이 옥수수 한 자루보다 못하다.
--알곡을 훔치면 총살시킨다!--북한의 옥쌀(강냉이와 밀가루로 만드는 가짜 쌀)공장 공고문
김정일과 그 운명공동체가 공익과 국익의 이름으로 갈취한 재산을 10분의 1이라도 내놓는 것이 개혁의 첫술이고,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느 나라의 누구든지 들어와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고 환영하는 것이 개방의 첫걸음이다.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공산당과 김씨왕조의 재산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한국의 웰빙 바보들에게 선보이는 개혁과 개방의 쇼윈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FTA에 노무현 대통령 비판세력이 일제히 환호하고 있지만, 그 개방은 국내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혁의 로드맵이 작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행된 것이어서 상당히 위험하다. 김영삼 정부가 개혁 없이 금융을 전격적으로 개방했다가 외환위기를 자초한 것과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의 핵심인 사유재산의 법적 보호를 지속적으로 훼손했다. 노무현 정부식 개혁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이고 반시장적이다. 사학법의 개악과 종부세의 도입, 양도세의 중과,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 국내 대기업의 역차별 등이 대표적인 반개혁적 권력 휘두름이다.
유통업의 개방도 처음에는 개혁이 뒤따르지 못해 국내 기업이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외국의 거대 유통업이 본격 진출하여 국내 시장을 급격히 잠식해 들어가자 뒤늦게 정부는 역차별 정책을 철회했다. 그러자 한국인이 누군가, 불과 수년 만에 국내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차기 또는 차차기 정부에서도 이와 유사한 개혁 조치가 잇따르길 바란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을 존중하고 시장의 자유경쟁을 확대하는 개혁적 조치를 전혀 기대할 것이 없다. 회전문 학교의 동문 또는 낙하산부대의 입대 동기인 그들은 공익과 국익과 민족이익을 종교처럼 신봉하기 때문이다. 공기업과 노조와 공무원, 표밭과 위원회와 시민단체, 그리고 김정일 집단의 이익을 신성시하기 때문이다.
(2007.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