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삼성전자의 수출은 500억 달러, 수입은 155억 달러였다. 한국의 한 회사가 달성한 무역수지 흑자가 345억 달러로 대한민국 전체 무역수지 흑자 161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의 수출은 세계 11위로 3천255억 달러, 수입은 세계 13위로 3천94억 달러였다. 상품수지는 292억 달러 흑자였지만, 서비스 무역에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코를 꼿꼿이 세운 채 고스란히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김정일이 목을 메는 2천4백만 달러의 약 천 배나 되는 피 같은 달러를 헌납했다. 서비스 수출은 518억 달러였고 서비스 수입은 706억 달러였던 것이다.
이 중 눈에 두드러지는 것이 여행수지 적자인데, 129억 달러였다. 여행수지는 크게 해외여행과 유학연수로 나눠진다. 유학연수 지출은 지난 몇 년 사이에 해마다 약 10억 달러씩 늘어나는데, 2006년에는 44억 6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외국의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 오는 것도 없지 않다. OECD의 외국인 학생 비율은 평균 7.3%인데 반하여 한국의 경우 그 비율이 0.6%이다. 하여간, 그들이 2006년 한국에 낸 돈은 3천만 달러! 고작 3천만 달러 벌고 44억 6천만 달러를 손해본 셈이다. 수출과 수입의 비율로 따지면, 1대 149다. 대한민국의 전 영역을 통틀어 이보다 더 외국에 뒤떨어진 데가 없다. 그 중추가 바로 박사 학위자 5만 여명을 포함하여 천만 명을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고 산더미 공문(公文)과 으스스 감사(監査)와 깜짝 기자회견과 쩌렁쩌렁 엄포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교육부이다.
1960년 초만 해도 한국은 아프리카의 가나보다 못 살았다. 그런 한국이 불과 30여년 만에 중국과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것보다 큰 아프리카의 전체 생산과 맞먹는 생산을 자랑하게 이르렀다.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세계의 기적이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었을까.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있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아마도 교육의 차이 때문이라는 진단이 아닐까 한다. 한국은 전쟁의 와중에도 학교를 열었고 끼니를 굶으면서도 자식 교육은 시켰다. 해방 이후 90년 초까지 한국의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세계 경쟁력이 있는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한국 교육은 그 때까지 세계최고 수준이었다는 말이다. 미국 교육 제도를 그대로 가져오고 일본 교육제도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절대 그런 성취를 이룰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서 90년대 초까지의 한국 교육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게 아니라 그 빛나는 성취에 자긍심을 느끼고 그 장점은 최대한 살려야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여기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다.
90년대 초까지 한국의 역대 정부는 자본도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교육을 통해서 자본과 자원보다 훨씬 귀한 인재를 길렀던 것이다. 그 과실은 탐스럽기만 했다. 봉건주의에 찌들고 식민주의에 허덕이고 공산주의에 짓밟힌 한국이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꽃을 동시에 피웠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꿈같은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신라 사람들이 당나라로 유학 가는 것보다 힘들던 유학도 웬만한 중산층이면 갈 수 있었다.
한국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개도국 대우를 받기 곤란해졌다. 농업의 비중이 10% 이하 비중(2006년 현재는 약 3%)으로 뚝 떨어졌다. 제조업도 더 이상 기술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서구 선진국으로서는 한국이 제2의 일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한국이 출원하는 세계특허의 절반을 개발해 내는 삼성전자처럼 이젠 대부분의 기술을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아니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에 먹히는 건 시간 문제다. 무엇보다 서비스 비중을 GDP의 70%로 끌어올려야 한다. 제조업 세계 최강인 일본과 독일도 1980년에 이미 서비스의 GDP 비율이 각각 57.4%와 56.6%였지만, 한국은 2006년 현재 서비스 부문의 고용은 65%나 차지하지만 생산은 56.3%밖에 안 된다. 생산성이 형편없다는 말이다.
외환위기의 핵심은 서비스 생산성의 문제였다. 금융, 교육, 의료, 관광, 방송, 통신, 유통, 물류 등 한국이 도약할 수 있는 노다지 서비스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잠재적인 국내 시장만 해도 전세계가 침을 흘릴 만큼 크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 정부 못지않게 헛발질만 해대고 헛소리나 질러댔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급한 불을 끄고는 국내에 기기묘묘한 규제를 더욱 많이 만들었다. 곳곳에 청와대와 위원회와 시민단체와 중앙정부의 입김이 스며들게 만들었다. 금융이 GDP의 30%를 차지해야 선진국으로 올라서는데, 외환위기 때와 그 후 10년이 지난 2007년을 비교하면 20%에서 21%로 1%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100만 개의 고소득 일자리와 매년 약 1,000억 달러의 부가 푹푹 썩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역차별 정책으로 알짜는 외국자본이 해마다 300억 달러 내지 400억 달러를 가져간다.
외환위기를 겪고도 문제의 핵심을 전혀 모른 채 그 전의 정권들을 매도하는데 신바람을 내고, 이어서 서비스 시장에 진입과 퇴출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곧 애국이라 확신하는 한국의 정치 선무당들은 엉뚱하게 가장 앞선 집단인 ‘재벌’ 때려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방송개방, 교육개방, 의료개방, 법무개방 등 서비스 개방은 말만 들어도 안색이 노래진다. 당장이라도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양 국회 앞에 거적때기를 깔고 생쇼를 벌인다. 개방 공포증 중환자 이하응과 김일성과 김정일을 보는 듯하다.
대학교재는 엿 바꿔 먹고 막걸리와 깍두기를 앞에 두고 해리 포터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괜히’ 비방강개하던 무리들이 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권력의 노른자위를 몽땅 차지한 후, 19세기의 곰팡내 나는 책에서 영감 아닌 퇴영적 사명감을 거듭 확인하는 사이에, 서비스 시장의 기초이자 근본이자 핵심인 교육 시장이 시대의 사명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해방 후 구(舊)학문이 아니라 신학문을 ‘왜놈’ 이상으로 배워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2천만이 너도나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 교육을 시키고 가슴에 가득 찬란한 미래의 태양을 안고 살던 때와 비슷했다. 그 당시는 35년의 쓰라린 식민지배를 통해 2차 산업에 걸맞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개인이나 위정자나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공감했고 공감한 만큼 다 같이 노력했다. 특히 사학의 기여는 눈물겨웠다. 사립학교 없는 중등교육, 고등교육은 상상할 수 없었다. 과외교사와 보습학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정부는 대신에 그 어려운 나라 살림에 근대 국민국가의 초석인 초등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호주, 싱가포르, 홍콩 등을 보면 한국의 대학도 90년대 초에 이미 정부의 노파심에서 해방되기만 했으면 충분히 서구나 일본의 대학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거꾸로 대학은 우리에 갇힌 독수리였다. 중고등은 개집에 갇힌 호랑이였다. 우리에 갇힌 독수리는 날 수 없고 개집에 갇힌 호랑이는 달릴 수 없다. 마침내 이들이 우리를 박차고 날아가고 개집을 부수고 달아났다. 그것이 바로 유학과 연수 붐이었다.
교육부가 ‘사교육부’로 전락하면서 공교육이 더욱 황폐해지고 사교육 시장이 더욱 번창하자 아예 중산층마저 눈치코치 안 보는 해외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두더지와 고슴도치의 혼혈종을 수호신으로 떠받드는 듯한 김정일처럼 국경을 원천봉쇄하면 모를까, 한국의 교육부가 교육독재권력을 휘두르는 한, 국내에서 배울 게 없거나 너무 시원찮은 한 독수리와 기러기와 팽귄과 참새의 자식들은 전세계로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날아갈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인재를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보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질시와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한국으로 잘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머잖아 한국에는 지식정보문화시대를 담당할 인재가 고갈될 것이다. 기술개발을 못하는 제조업도 자연히 쇠퇴하고 폐쇄적 농업은 더욱더 보조금에 의존할 것이다.
교육부의 정식 명칭은 교육인적자원부이고 교육부의 수장은 부통령이다. 정부도 교육의 중요성 자체는 잘 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과 행동은 정반대다. 그것은 한말(韓末) 상황에 빗대면 신학문을 오랑캐 학문이라 도외시하고 농업국가의 지배층에 딱 알맞은 ‘정통’학문만 배우라며 마을마다 고을마다 찾아가 육모방망이로 위협하는 짓과 마찬가지다. 실지로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니지만, 일본이 1854년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에 충격을 받은 후 서양의 신학문을 게걸스럽게 체계적으로 배우던 것과 달리 조선에서는 궁정암투에만 몰두하거나 신학문은 아예 있다는 것도 몰랐고 용케 알더라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뒤늦게 서구가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 마지못해 양반들이 갓과 도포를 쓰고 배우러 가더라도 종을 대리출석 시키고 낮잠이나 잤다.
지난 15년 동안 교육부의 작태는 세계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한국인에게 슬슬 놀면서 저급 기술이나 배워서 낮은 임금이나 받으며 오순도순 라면과 감자와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살라는 위협밖에 한 것이 없다. ‘더불어 사는 인간’ 교육이 최우선이라며 ‘너 죽고 나 살자는 경쟁을 북돋우는’ 학교란 학교는 모조리 폐쇄하고 10년간 ‘광란의 교육혁명’을 단행하다가, 산업공단에도 야간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배우기에 여념 없었던 한국보다 30년이나 뒤떨어졌던 중국에 바야흐로 21세기에 저임 노동자로 취직하러 밀항선을 타고 가라는 저주밖에 한 것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의 교육인적자원부는 인적자원고갈부다.
(2007.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