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가택연금 상태의 자유민주

鶴山 徐 仁 2007. 3. 12. 09:01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스스로의 성취를 자랑할 줄 모르고 뱀의 혀처럼 달콤한 대중주의에 혹하여 마음 한 구석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지만, 머잖아 제2의 동란에 휩싸이면 그 때쯤 다시 머리가 다 자란 자유민주는 삼손처럼 크게 떨치고 일어날 것이다.
 
최성재   
   자유민주에서 자유는 개인의 자유를 뜻하고, 민주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법률 앞의 만인 평등을 뜻한다. 개인의 반대는 전체고, 법치의 반대는 인치(人治)다. 전체를 위하여 개인은 마땅히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전체주의(totalitarianism)요, 권력이 도덕을 하녀 삼고 법률을 하인 삼아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체제가 전제주의(autocracy)다. 


 자유민주에서 자유를 쏙 뺀 민주주의가 19세기 중반부터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크게 셋으로 갈라졌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대중주의(populism)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폭력으로 국가권력을 탈취한 제2세계의 공산주의는 스스로를 인민민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자유민주는 자체 모순으로 거꾸러질 자본주의로서 부르주아 독재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에 자신들은 자랑스러운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이들의 공통점은 거짓과 폭력이다. 이들은 정치권력뿐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권력과 문화권력과 사회권력도 몽땅 장악했다.


 폭력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고 자체 정화능력이 있는 제1세계의 마교도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 또는 진보라 부르고 자유민주를 보수주의라며 노예가 주인을 미워하듯이 미워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선과 외눈박이다. 이들은 정권에 관계없이 학계와 예술계로 대표되는 문화권력과 노조와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사회권력을 거의 장악했다. 


 제3세계의 마교도들은 선거 또는 쿠데타로 집권한 후 사탕발림 대책과 대문걸기 정책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어 호언장담과는 정반대로 양극화를 심화시켜 국가를 갈등의 수렁에 빠뜨렸다. 이를 대중주의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자신은 대중주의라 불리는 것을 조병갑이 탐관오리라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싫어한다. 좌파라 불리는 것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 민주 또는 진보라 일컫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독선과 무능이다. 이들은 정치권력은 잡았다가 뺏겼다가 했지만, 문화와 사회 분야에서는 철옹성을 구축했다.  


 한국에서 YS와 DJ는 자유민주의 상징이었다. 이들은 잠꼬대도 ‘민주주의 만세!’다. 1987년 6월 29일 이후 이들은 집권 유무에 관계없이 한국의 두 실세다. 양김(兩金)의 앞뒤에 양노(兩盧)가 있지만, 이들은 YS와 DJ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간에 국민은 양김에 폭 속았고 지금도 속은 줄도 모르고 속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YS는 제1세계의 마교도와 비슷하고 DJ는 제3세계의 마교도와 비슷하다. 서울대에 꼴찌로 들어가서 꼴찌로 졸업한 듯한 YS는 아직도 스스로의 정체를 모른다. 목포상고에 수석으로 들어가서 수석으로 졸업한 듯한 DJ는 스스로도 속일 수 있을 만큼 위장술이 뛰어나다. YS는 DJ파와 김일성파에게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했지만(노큰바보도 어느 정도 그러했다), DJ와 김일성 부자는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반면에 DJ와 그의 후계자 노작은바보는 자유민주에서 ‘자유’를 뺀 민주와 열린 민족에서 ‘열린’을 뺀 민족과 자유민주적 평화에서 ‘자유민주적’이란 말을 뺀 평화로 전체주의와 전제주의가 완벽하게 구현된 공산봉건독재자 김정일에게 급격히 가까워졌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고, 사람은 그 친구로 알 수 있는 법이다. 


 김정일의 거짓과 폭력이 양김과 그 그림자들의 위선과 사시(斜視), 무능과 독선이 불륜관계에서 공공연한 동거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이들의 가장 큰 후원자는 중국의 호금도이다. 중국은 개인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면서 전체주의가 상당히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이다.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진압하고 누계 백여 만의 탈북자를 말 그대로 개돼지 취급한 자가 호금도다. 중국인은 아무리 그를 떠받들더라도 한국인은 그럴 수가 없다. 


 2004년 3월 국회 난장판을 19시간 생중계한 이후 한국에서는 자유민주가 가택연금 상태에 들어갔다. 전체주의와 전제주의가 겹겹이 자유민주를 포위했다. 이들이 자유민주를 포위하고 있는 사이에, 대중주의가 신나게 방송의 나팔을 불면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헌법을 뒷방 늙은이로 만들고 개인의 자유를 민족의 전체 이익에 헌납하는 법률을 마구 제정하여 광란의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이랄까 한국의 잔 다르크가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기사회생의 교두보를 마련한 후 이어 40:0의 신화를 낳았지만, 절망의 100년 전쟁을 단숨에 승리로 이끈 잔 다르크가 도리어 화형에 처해졌듯이, 한국의 잔 다르크는 민주의 이름으로 살해될 뻔했다. 각종 여론조사가 정확하다면, 그녀는 현재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2.13 승리’로 김정일이 너무도 기뻐, 스스로 황제라 일컫더니 아관에 파천하던 고종을 흉내내는지 중국의 대사관에 찾아가 파안대소하자, 여든 야든 한국은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자유민주 대신 4대 악법으로 그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중주의가 여야 막론하고 대세로 굳어가고 음흉한 미소를 띠고 전체주의와 전제주의가 포위망을 급격히 좁혀 오고 있다.     


 남북으로 가로놓인 동아시아의 외나무다리에서 전세계 공산주의 대표선수와 전세계 자유민주 대표선수가 진검 승부를 겨룬 적이 있다. 그 시련 속에서 한국의 겨자씨만했던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는 불과 반세기 만에 [이상한 엘리스의 나라]의 거목처럼 커졌다. 스스로의 성취를 자랑할 줄 모르고 뱀의 혀처럼 달콤한 대중주의에 혹하여 마음 한 구석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지만, 머잖아 제2의 동란에 휩싸이면 그 때쯤 다시 머리가 다 자란 자유민주는 정신이 번쩍 들어 삼손처럼 크게 떨치고 일어날 것이다. 그 날에는, 중국의 협박에 겁먹고 한국의 배은망덕에 치를 떨며 돌아서던 미국도 F-22를 보내 한국의 삼손이 깨뜨리는 대중주의와 전체주의와 전제주의에 최후의 일격을 가해 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2007. 3. 11.)

[ 2007-03-12, 07: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