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콘서트홀, 인정전
1404년 10월. 창덕궁 건축을 담당하는 한경이궁조성제조(漢京離宮造成提調)에 임명된 이직(李稷)과 신극례(辛克禮)는 큰 고민에 빠졌다. 경복궁의 이궁인 창덕궁의 위치를 한양 향교동 일대로 정한 뒤라 본격적으로 창덕궁 건축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중 인정전은 왕이 집무를 보는 곳이기 때문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했다.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조선 최고의 목장(木匠)들을 불러 모았다. “이곳에 세워질 인정전은 궁의 핵심이다. 신하들이 전하께 하례를 드리고 타국에서 온 사신이 알현하는 중요한 장소다. 인정전 건축을 담당할 너희들에게 막중한 3가지 임무를 내리겠다. 첫째, 전하의 어명이 널리 퍼지도록 소리를 다스려라. 둘째, 전하의 위엄이 더욱 빛나도록 빛을 다스려라. 셋째,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넘치지 않도록 물을 다스려라. 이를 성사시키면 큰 상을 내리겠노라.”
소리를 다스리는 임무를 맡은 이석손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정전은 전하가 계시는 월대를 중심으로 가로 230척(69m), 세로 150척(45m)으로 그 넓이가 1000평(3105㎡)이오. 이 넓은 곳에 소리를 어떻게 잘 전한단 말이오. 묘안이 없소?” 옆에 있던 황석원도 뒤질세라 말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정1품부터 정9품 문무대관들이 설 품계석이 세워 질 것이오. 월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정9품까지 전하의 어명이 잘 퍼져야 하오. 설상가상으로 전하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도 않소.”
600년전 소리를 다스리는 임무를 맡은 이석손과 황석원은 과연 임무를 달성했을까? 이석손과 황석원의 대화에 그 답이 숨어 있다.
“인정전에서 전하가 계실 곳은 월대요. 전하의 말씀은 이곳에서 시작되고 그 소리는 사방으로 퍼질 것이오. 월대 근처에 있는 인정전 지붕을 이용하면 뭔가 나오지 않겠소?” 이석손의 말을 들은 황석원은 뭔가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치며 말을 받아쳤다. “좋은 생각이구려. 또한 전하의 어명은 신하가 있는 마당으로 잘 전달돼야 하오. 그러니 마당을 이용해도 뭔가 될 것 같소.”
이들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한양대 건축공학과 전진용 교수는 ‘창덕궁 인정전 앞 공간의 음향 특성’ 보고서에서 인정전의 처마 덕분에 확산반사(Diffusion Reflection)가 효과적으로 이뤄져 소리가 잘 퍼진다고 밝혔다. 인정전의 지붕은 옆에서 봤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처마가 지붕 밖으로 뻗어 끝이 살짝 들려 있다. 이런 지붕의 구조는 월대에서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월대로 반사시켜줄 뿐만 아니라 월대가 향한 마당으로 소리를 반사시켜주는 반사체 역할도 한다. 즉 인정전의 지붕은 실내공연장에서 무대 연주자의 소리를 연주자와 객석에게 잘 전달해주는 오케스트라 쉘의 역할과 비슷하다.
황석원이 제안한 마당을 이용하는 방법도 소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정전 마당에는 화강암을 얇게 깎은 박석이 깔려있다. 박석은 매우 단단해서 소리를 잘 반사한다. 또 울퉁불퉁한 박석의 표면은 소리가 잘 확산반사 되도록 한다. 전 교수는 지붕과 마당 이외에 인정전 주변을 둘러싼 회랑에도 관심을 가졌다. 인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을 보면 바깥쪽은 벽으로, 안쪽은 기둥으로 구성됐다. 월대에서 퍼진 소리가 회랑으로 전달되면 소리는 기둥에 반사돼 마당으로 전달된다. 기둥과 기둥 사이 공간으로 진행한 소리는 바깥쪽의 벽면에서 반사돼 다시 안쪽으로 전달된다. 회랑이 2중 반사벽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한 회랑 지붕의 처마구조는 공연장 실내음향설계에서 사용되는 소핏(Soffit) 역할을 해 반사되는 소리를 증폭해 안쪽으로 모아준다. 또 회랑을 구성하는 벽과 처마가 인정전 밖에서 나는 소음이 인정전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주는 역할도 한다. 인정전은 거대한 콘서트홀의 구조를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인정전 바닥은 영화 스크린 두 사람이 소리를 다스리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빛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은 이들의 걱정이 한창이었다. “하루 종일 햇빛이 비치도록 인정전을 경복궁처럼 남향으로 세우면 되지 않겠소.” “아니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듯하오. 햇빛이 부족한 겨울에도 전하의 용안이 환해 보여야 하오. 어찌 그 생각을 못하시오.” 빛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은 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찌 하면 환해보일까…. 전하께서 계실 월대 근처에서 빛을 쏘아주는 무엇이 있으면 전하의 용안이 환해 보일 텐데…. 가만, 월대 근처의 마당에 뭔가 장치를 꾸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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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신고 걷기에 불편할 정도로 울퉁불퉁한 박석에 왕의 얼굴을 환하게 보이게 하는 비밀이 숨어있다. | 빛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해 냈을까? 실제로 인정전에 들어서면 주위가 갑자기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비밀은 바로 돌에 있다.
인정전은 월대라고 부르는 하얀 돌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인정전의 마당에는 화강암을 깎아 만든 박석이 깔려있다. 화강암을 이루고 있는 광물 가운데 유리의 주성분인 석영은 화강암을 투명하게 보이도록 하고 백운모는 광택이 난다. 인정전에 들어서면 환해 보이는 이유다. 게다가 화강암이 띠고 있는 흰색이 모든 파장의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더욱 눈부셔 보인다. 하지만 인정전이 환해 보이는 이유가 화강암의 흰색 때문만은 아니다. 대구대 물리교육과 임성민 교수는 “구두를 신고 걷기에 약간은 불편할 정도로 울퉁불퉁한 박석에 인정전을 환하게 보이게 하는 난반사의 원리가 숨어있다”고 밝혔다. 난반사란 한 방향에서 입사한 빛이 울퉁불퉁한 각을 2차 광원으로 삼아 여러 방향으로 반사해 흩어지는 현상이다. 인정전 마당 표면이 울퉁불퉁하면 빛은 울퉁불퉁한 각각의 방향으로 반사하므로 모든 방향에서 골고루 빛이 퍼져나가 어떤 방향에서도 잘 보인다. 극장에 가면 모든 좌석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 스크린도 난반사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스크린을 만져보면 엠보싱 화장지처럼 올록볼록한 돌기가 만져진다. 바닥 면이 거울이나 금속 표면처럼 매끄럽다면 바닥에 닿은 빛이 한 방향으로 반사돼 해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눈이 부실 것이다. 하지만 인정전 바닥은 난반사를 하기 때문에 눈이 부시지도 않으면서 환하게 보인다.
물을 다스리는 배수체계 “차라리 소리와 빛을 다스리는 게 낫겠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어렵지 않소. 하늘에 비를 내리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오.” 물을 다스리게 된 박서창은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며 울분을 토했다. 옆에 있던 이곡도 맞장구를 쳤다. “맞소. 이 넓은 궁에 덮개를 씌울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오. 바닥에 구멍이라도 숭숭 뚫려있으면 모를까.” 박서창은 뭔가 생각이 난 듯 말을 덧붙였다. “가만! 바닥에 구멍을 낸다? 뭔가 생각날 듯하오.”
이들의 생각이 맞았다. 인정전 바닥은 마사토를 깔고 그 위에 얇은 박석을 덮은 구조다. 상명대 환경원예조경학과 이재근 교수는 “마사토는 놋그릇을 닦는데 쓰는 점성이 없는 백토로 알갱이의 크기가 커서 물을 흡수하고 내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현재 건축물의 배수시설에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사토가 빗물이 빠지는 구멍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마사토는 건조한 날씨에는 표면이 쉽게 말라 심한 흙먼지를 일으키고 물에 쉽게 씻겨 내려간다. 이런 단점은 화강암 박석으로 해결했다. 마사토 위에 박석을 올려 배수도 잘 되고 마사토층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대신 박석 사이를 띄워 배수될 공간을 충분히 남겨뒀다. 비가 내리면 인정전의 지붕을 타고 마당으로 물이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물은 지하로 빨리 배수돼 집수구를 통해 석실 구조로 이뤄진 배수로를 따라 궁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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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의 비밀 : 01_울퉁불퉁한 바닥은 빛을 난반사시켜 왕의 용안을 환하게 보이게 하는 조명기기의 역할을 한다. 02_지붕, 회랑, 바닥은 소리를 잘 퍼지게 한다. 03_마사토의 굵은 알갱이 덕분에 빗물이 빨리 빠진다.
|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이선 교수는 “창덕궁의 원활한 배수는 자연을 잘 살핀 수문체계 덕분이다”고 설명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주 능선을 기준으로 연못이 왼쪽에 5개 오른쪽에 4개가 있다. 연못이 있는 지점은 능선을 타고 내려온 물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곳이다.
600년을 지속한 창덕궁, 천년 뒤에도….
공사를 시작한지 1년 뒤. 한경이궁조성제조 이직과 신극례는 인정전 건축을 담당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대들의 수고 덕분에 무사히 소리, 빛, 물을 다스릴 수 있었소. 여러분의 땀방울, 손길 하나하나 덕분에 100년 아니, 천년 뒤에도 지속될 수 있는 창덕궁이 될 수 있을 것 같소.
이와 비슷한 말이 요즘 모회사의 CF에 등장한다. “이 사람아!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결정하는겨~”라고 외치는 고건축 중요무형문화재 최기영 대목장(大木匠)의 말이다. 건물에 있는 작은 못 하나까지도 그 쓰임새를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여야 건물이 천년의 삶을 누린다는 뜻이다. 600년 동안 숨어 있었던 창덕궁의 과학적 비밀은 창덕궁을 천년만년의 후손들까지 볼 수 있게 한 선조들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김맑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