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창덕궁

鶴山 徐 仁 2007. 2. 18. 22:59
창덕궁
서울 종로구 臥龍洞
2005.7.13


01. 돈화문.....※ 네이버백과사전에서 옮김
    보물 제383호. 돈화문으로 통칭된다. 조선 선조(宣祖) 때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重層) 우진각지붕집이다. 중앙의 3칸은 가운데 주열(柱列)에 각각 2짝씩 문짝을 달았으나 좌우 맨 끝의 칸과 측면 앞의 절반은 모두 벽을 쳐서 막았다. 위층은 누마루를 깔고, 4면에 작은 판문(板門)을 돌려 달았으며, 고주(高柱)는 좌우 2개만 있고 가운데는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다른 문루건축(門樓建築)은 고주를 가운데에 한 줄로 배치하는 일이 보통이지만, 이 돈화문은 그 일부를 생략하여 넓은 공간을 활용하도록 새로운 의도를 나타내었다.

    공포(?包)는 상하층이 모두 내삼출목(內三出目) ·외이출목(外二出目)의 다포집 계통의 것으로 쇠서[牛舌]들의 형태는 아직도 건실한 기풍을 지녔다. 그러나 내부의 살미첨차들은 이미 적지 않게 장식적 요소가 나타나 변형되었다.

    한때 돈화문은 창경궁(昌慶宮)의 명정전(明政殿) 등과 함께 임진왜란의 병화(兵火)를 면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이라 생각되어 왔으나, 명정전은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건물임이 밝혀졌고 돈화문도 그 세부적인 수법을 서로 비교해 보면 임진왜란 이후의 건축임이 분명하다.

    매표소는 왼쪽에 있다.







    02. 창덕궁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太宗)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漢城)의 향교동(鄕校洞)에 이궁(離宮)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소덕전(昭德殿)·빈경당(賓慶堂)·여일전(麗日殿)·정월전(淨月殿)·옥화당(玉華堂)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특히 1917년 대조전(大造殿)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소실되어 그 복구를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交泰殿)을 비롯하여 강녕전 동·서 행각 등의 많은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1912년부터는 후원인 금원(禁苑)과 아울러 인정전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8·15광복 후에도 창덕궁과 금원을 공개하고 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고궁의 하나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03. 인정전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 다포(多包)집으로 1804년(순조 4) 건립되었다. 남향이고 인정문과 함께 회랑으로 둘러싸여 일곽을 형성한다. 기단(基壇)은 2중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과 좌우 측면에 석계(石階)를 설치하고 바닥면에는 전석(塼石)을 깔았다. 상층기단 위에는 장대석(長臺石)을 한 단 높여 돌리고 높은 주좌(柱座)의 초석(礎石)을 배열해서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배흘림이 없는 원주(圓柱)이고, 내부에는 10개의 높은 기둥과 4개의 우고주(隅高柱)를 세워 중층가구법(重層架構法)을 따랐다. 두공(枓? )은 밖이 3출목(三出目)이고 안이 4출목인 다출목으로 전개되었으며, 기둥머리의 안초공(按草工)으로부터 살미와 첨차(? 遮)의 세부수법이 조선 말기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가구(架構)는 외중층(外重層) 내통층(內通層) 수법이고, 고주(高柱) 몸에 퇴량(退樑)을 끼워서 2층평주(二層平柱)를 받게 하였으며 우고주(隅高柱)가 2층 우주가 되게 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인데 각 마루에는 양성(兩城)하여 취두(鷲頭) ·용두(龍頭) ·잡상(雜像)을 올려 놓았고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끼웠다. 이 건물은 가구의 짜임새와 외관이 견실하면서 운치와 미려를 겸하여 흥선대원군이 근정전(勤政殿)을 재건할 때 이 건물을 규범으로 하였다.









    04. 品石
      景福宮의 勤政殿, 昌德宮의 仁政殿 등 대궐 안 正殿 앞뜰에 정1품을 선두로 해서 東班:文官은 동쪽, 西班:武官은 서쪽 자리에 두 줄로 종9품까지 차례로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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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용마루...종마루·옥척(屋脊)이라고도 한다...에 있는 세송이의 문양은 자두꽃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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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입장시간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