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다 메이어
1967년 이스라엘 총리로서 연립 내각을 이끌었던 여자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골다 메이어입니다.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태어난 그의 가족은 당시 동유럽이나 제정러시아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포그럼(Pogrom) 즉 유대인 학살을 피해 1906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으로 이주했으며 평범하지만 안정된 미국 시민으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가 ‘유대인들의 나라’를 세우는 꿈이었습니다
1921년 골다 부부는 척박한 황무지,
아랍인들과의 유혈 충돌이 끊이지 않는 갈등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함은 자신의 안일함을 떠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염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정보다 먼저 나라와 민족을 찾은 정치가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으로서 그의 고통도 컸지만 능히 그녀는 그것을 이기고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중동 평화를 위해서 무진 애를 썼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가서 벤 구리온이 기대했던 것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 돈을 모금했습니다
그 돈으로 이스라엘은 유럽 각 국에서 잉여 병기들을 구입해 무장시켰고
아랍 제국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1948년 5월15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골다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고 그는 초대 내각의 노동부 장관을 맡아 세계 각 국에서 이주해 오는 유대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어 그는 세계 최초의 여성 외무부 장관으로 활약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우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69년 이미 60대 후반에 접어든 골다는 은퇴를 선언했지만, 국가는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에쉬콜 수상이 급서 하자 이스라엘은 그를 수상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수상으로 재임하면서 그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을 이끌었다.
골다는 1978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했지만
아직까지도 이스라엘 국민들 사이에서 국민들의 희망과 이상을 구현한
건국의 어머니로 추앙 받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후에
그녀가 12년 동안이나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골다 메이어 총리는 자기의 약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제 얼굴이 못생긴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일반적인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았을 때 너무나 못났기에 열심히 기도했고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연약함은 나에게 뿐 아니라 이 나라에도 무한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약점과 실망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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