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할 때마다 간단한 그 나라 말을 배운다. 인사말과 숫자는 의사 소통을 위해 생존 차원에서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늘 그 나라 말이 궁금했던 단어가 있었다. 바로 행복이란 말이다. 나는 인도나 네팔 티베트에 가서도, 중국 태국에 가서도 그 나라 말로 ‘행복’이란 단어를 익혀 혀에 머금어 보곤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행복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 가운데 티베트 간덴사원에서 노스님과 나눈 대화가 가끔 생각난다. 간덴사원은 과거 티베트 불교의 핵심 수행지였으나 1950년대 중국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된 흉터를 안고 있어 상처투성이 티베트 현대사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조그만 법당에서 만난 노스님에게 차 한 잔을 얻어 마시며 물었다.
“스님, 행복하세요?”
1초의 주저함도 없이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마도 그 대답의 근원을 따라가면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운데 현생(現生)에서 지혜로운 가르침을 만나 배우고 닦는 행복, 욕망을 내려놓고 단순한 생활에서 건지는 소박한 기쁨 같은 불교적 세계관이 담겨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행복에 대한 답 자체가 아니라 대답을 하기까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처럼 확고부동한 행복이라니. 중국에 나라를 빼앗겼고, 그들의 지도자는 이웃나라 인도로 망명해 있는데.
노스님은 물끄러미 나를 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스님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한국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내 질문에 스님은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티베트에서 동쪽으로 쭉 가면 나와요.”
나는 사원 바닥에 손가락으로 티베트와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을 그려 설명했다. 스님은 처음에는 흥미를 보이다가 티베트에서 멀어질수록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베트를 벗어나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아시아의 동쪽 끝은 너무나 먼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스님이 던진 한마디. “아, 그래. 거기도 분명 좋은 곳이겠지. 안 그래?”
나는 그 순간 행복에 대한 주저 없는 대답을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랐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긍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스님은 그 깊고 험한 계곡까지 찾아온 여행자에게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내면의 행복을 깨우쳐주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해발 4300m에 자리 잡은 티베트의 어둡고 고요한 법당에서 행복의 의미를 되묻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북핵, 바다이야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경기 침체, 부동산값 폭등…. 올 한 해도 마음을 무겁게 만든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누구에게라도 선뜻 지금 행복하냐고 묻기 힘들다. 오늘날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자면 히말라야의 수행자 못지않은 인내심을 가져야 함을 알기에 이런 질문은 던지는 이도, 답하는 이도 피차간에 무렴하다.
어린 시절 봐서는 안 될 야만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어른들은 크고 따뜻한 손으로 우리의 두 눈을 가려주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지구상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들의 눈을 잠깐이라도 가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눈을 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는데 왜 그렇지 못한지 한 번쯤 자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집을 사기 전에는 값이 내리기를, 그리고 산 뒤에는 오르기를 바라는 것처럼 혹시 우리는 행복의 기준을 늘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과 인연에 대한 감사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의 행복지수가 티베트의 노스님만큼 오르기를 바라본다.
정희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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