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은 때로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정책이 오히려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을 불러오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분배정책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여 실업자를 양산하기도 한다. 해고를 어렵게 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면 아예 고용을 늘리지 않는 사태도 발생한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가진 정책이라도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바로 경제현상이다. 경제에 이런 역설이 없었다면 함께 생산하여 균등하게 나눠 갖겠다는 사회주의의 이상이 어떻게 붕괴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 경제도 지금 심각한 코드 정책의 함정에 빠져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분배 정책의 역설적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왜곡된 성장보다는 분배와 균형발전을 추구하며, 중산층을 끌어 올려 선진복지 사회로 가겠다는 정책이 얼마나 숭고하고 이상적인가. 그러나 과연 그 정책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분배와 형평의 이념이 독주했던 지난 수년간 양극화는 오히려 더욱 확대되었고, 나라 경제는 지금 침체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실제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정체되어 한동안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한 참여 정부의 의지가 역설적으로 실현된 셈이다.)
그렇다면 분배는 제대로 개선되었는가. 집값 폭등으로 가진 자는 더 늘어났지만 취업난으로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스스로를 하류층으로 보는 가구가 45%를 넘었고, 지난 3년간에도 46만 가구나 증가하였다. 국민의 47%는 앞으로 신분상승의 가능성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으니 분배정책이 오히려 양극화를 고착시킨 역설적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집값 폭등에도 분배와 균형정책이 기여한 바 크다. 가진 자에 대한 세금 중과에 집착한 나머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려야 하는 시장원리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로 집약되는 균형 전략도 마찬가지다. 땅 매입 자금만도 5년간 68조원에 달한다니 투기의 씨앗은 정부가 먼저 키우기 시작한 셈이다. 시작이 어디든 부동산은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과 같다. 게다가 높은 양도세와 종부세까지 겹쳐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거품에 어떤 계기로 방아쇠가 당겨진다면 그 파장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최근 통과된 비정규직 보호법도 분배정책의 역설을 그대로 안고 있다. 임시직의 고용안정을 개선하려는 법안의 취지를 누가 힐난하겠는가.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소외계층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임시직은 2년마다 전직(轉職)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정규직은 오히려 줄어들게 될 것이다. 결국 실업은 늘고 양극화는 심화되어 이것 역시 나라의 내일을 어둡게 하는 복병이 될 것이다.
어디 이것뿐인가.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대기업 정책, 평준화만 고집하는 교육정책, 경직성이 강화되는 노동시장 등 사회 곳곳에 침투된 분배와 형평의 코드가 한국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대기업은 역차별적인 규제로 투자의욕을 잃었고, 생산성 낮은 분배지출로 정부 부채는 눈덩이처럼 늘어만 가고 있다.
나라에는 비전이 없고, 국민들은 경쟁력 없는 공교육을 버리고 이 땅을 떠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고위관료는 여전히 코드의 서슬에 눌려있고, 여당은 자중지란을 겪고 있으니 백성들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언제까지 형평의 코드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저소득층을 양산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대통령도, 여야도, 침묵하는 다수도 서둘러 성장 동력을 복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투자와 성장이 있어야 실질적인 분배도 개선되지 않겠는가.
정갑영(연세대 원주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