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서부터, 우리 현대사의 고통을 호도하고 식민통치를 미화한 일본의 일부 검정 현대사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우리의 오늘에 깊숙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라 안에서도 전국의 고등학교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하기'를 조직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로 새로이 취업하는 세대의 역사관이 왜 그렇게 비뚤어졌는지, 새삼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19세기말 동학혁명에서 역사의 시계가 멈춘 철지난 진보운동이 전파 확산하고 있는 좌파민족주의 역사관은 분명히 세계사의 흐름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교과서 포럼은 한국근현대사의 왜곡과 교육을 통한 확산을 바로잡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안교과서의 시안에서 보인 지나침이 또 다른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친북 좌파민족주의의 비뚤어진 역사관의 폐해에는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좌편향을 단순히 우편향으로 맞선다면 이 또한 올바른 것은 아니다. 결국 대안모색의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번 사태가 대안교과서 관계자들의 합의과정을 거치기 전에 몇몇 집필진의 개인적 의견이 사전에 보도된 결과로 생겼다는 사실도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옛말처럼 과함은 부족함보다 못한 법이다. 대한민국의 성립과 발전을 이룩한 우리민족의 현대사는 투쟁의 역사였고, 발전의 역사였다. 이는 근대민주국가를 달성하려던 국가목표의 성취과정이었다. 근대 민주국가는 두가지 혁명을 통하여 성립하였다. 하나는 프랑스 혁명으로 대변되는 민주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이 두 가지 혁명을 위한 간고한 투쟁을 이어왔다. 한민국의 건국을 이루어낸 이승만 박사는 이념의 대립과 전쟁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닦는 데 열심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주혁명에 의하여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세계경제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룩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유신독재의 멍에를 지고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고, 이후의 군사독재는 87년의 민주항쟁으로 막을 내렸다.
역사는 모순의 법칙과 모순의 대립의 법칙에 의하여 발전한다. 마치 대립하는 두 주체 중 한편이 다른 한편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역사적 역할을 제각기 수행할 따름이다. 건국을 이룩한 이승만 박사와 그를 무너뜨린 4월혁명의 주체들은 다같이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닦는 공로를 세웠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와 유신과 군사독재체제를 무너뜨린 민주화의 혁혁한 공로가 합쳐져 자유민주주의의 물적 토대를 만들고, 그 상부구조를 완성시킴으로써 이 나라를 아시아의 대표적 근대민주국가로 만들었다.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은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또 다른 노력에 의하여 극복되어져 새로운 발전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4월혁명이 없었다면 건국목표였던 자유민주주의적 자주국가의 달성은 그 기반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신독재가 한 개인의 정권연장이 아닌 우리나라 중화학공업화를 이루기 위한 체제였다고 할지라도 인권유린과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커다란 모순은 대항하는 세력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순극복과정의 정점이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이었다.
역사는 민족의 정신적 자원이며, 세계와 거래한 과거가 소상하게 적혀 있는 대차대조표이다. 자기 부정적이고 자학적인 역사관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나 이에 대한 비판과 대안 역시 균형을 상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각범(한국정보통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