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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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物 들여다 보기] 박용성

鶴山 徐 仁 2006. 7. 9. 08:35
2002년 2월
 
박용성(朴容晟·62) 대한상공회의소(상의) 회장은 재계에서 해외출장을 가장 많이 다니는 경영인으로 꼽힌다. 작년에 해외출장 143일에 대한항공의 마일리지만 270만 마일을 기록했다. 두산중공업(구 한국중공업)과 OB맥주의 회장을 겸하고 있으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국제유도연맹(IJF) 회장 등으로 육순을 넘긴 나이에도 재계와 스포츠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박회장은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이사회에서 IOC 위원으로 내정돼 2월6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정식으로 선임 절차를 밟는다. 한국은 김운용(대한체육회장), 이건희(삼성그룹회장)씨에 이어 세번째 IOC 위원을 갖게 되는 셈이다. 123명으로 구성된 IOC에서 3명 이상의 위원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스페인 캐나다 독일 등 10개국에 불과하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선친 박두병(朴斗秉) 회장에 이어 2대째 맡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소기협)·한국무역협회(무협)와 경제 5단체를 구성하는 상의 회장에는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직함만 90개가 넘는다.
 
그는 출장중에도 노트북을 들고다니며 모든 결제를 이메일로 대신한다. 그는 기업에서 수억 원씩 연봉을 받는 임원들이 결제를 받기 위해 회장 부속실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은 보기 흉한 비능률이라고 꼬집었다. 박회장은 중요한 이메일은 직접 답장을 쓴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홍보실로 보냈더니 답장은 박회장에게서 날아왔다. 서울 남대문 옆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5층 회장실에서 그를 만나 체육-경제일반-두산그룹 순으로 화제를 이어갔다.
 
유도복도 입어 보지 않은 柔道會長
 
-IOC 위원은 국제 스포츠인이면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명예직이 아니겠습니까. 소감을 말해주시죠.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많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보면 다시 없이 큰 영광이고, 그 동안 저를 뒷바라지해준 두산에 영예를 돌리고 싶습니다. 작년 12월12일 아침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고 컴퓨터를 켜 IOC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도자료를 검색해보니 내 이름이 나와 있더라고요. IOC 집행이사회에서 추천 받은 후보는 총회에서 거의 그대로 인준을 받습니다. 작년 7월 모스크바 총회에서 IOC 위원을 다섯 명이나 가진 스위스가 명분도 없이 여섯번째 사람을 시키려다가 좌절된 적은 있지만….”
 
―자크 로케 IOC 위원장과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습니까. 지난해 7월 모스크바 총회에서 경쟁자였던 김운용 위원을 IOC 위원장으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을 텐데….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습니까.
 
“로케 위원장을 애틀랜타올림픽 때 처음 만났어요. 벨기에 유도가 강하거든요. 로케 IOC 위원이 유도경기를 참관하러 왔을 때 내가 호스트로서 옆에 앉아 얘기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시드니 올림픽 때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외과의사 출신으로 5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인물입니다.
 
IOC에서 모든 국제경기연맹에 IOC 위원 후보를 추천하라고 해 작년 8월 초 IJF이사회를 통해 추천서를 보냈습니다. 이번에 80명 가량이 올라갔는데 자격심사위원회의 윤리위원회를 거쳐야 합니다. 뒷말이 없을 사람인가, 돈 문제에서 깨끗한가, 국제경기연맹 회장을 맡아 잘 했는가…. 이런 것들을 심사해서 IOC 집행이사회 최종명단에 들어간 거지요.”
 
태어나 지금까지 유도복을 한번도 안 입어본 사람이 대한유도협회 회장을 거쳐 IJF 회장까지 올라간 것도 새로운 기록이다. 그가 유도와 처음 맺은 인연은 완전히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돼 온 나라가 들뜬 가운데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생겼다. 1982년 정부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대한체육회 조직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기존 경기단체장들을 모두 물러나게 하고 기업인들에게 한 종목씩 떠맡겼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레슬링, 정몽구 현대 회장은 양궁,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은 수영, 배종렬 한양 회장에게는 유도가 돌아갔다.
 
배종렬 회장 밑에서 일하던 그의 친구가 연락도 하지 않고 부회장으로 밀어넣는 바람에, 박회장은 유도와 첫인연을 맺었다. 부회장이지만 유도협회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가 1986년 봄 한양이 어려워지면서 체육부의 강권으로 회장을 맡게 됐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군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압력을 넣는 바람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으로 맡았어요. 유도협회 회장을 맡아 86아시안게임은 잘 치렀죠.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했고 일본은 선수선발을 잘못하는 바람에, 한국은 7개 체급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올해 월드컵은 16강이 목표입니다만, 서울 올림픽에서는 10위 안에 드는 것이 국가적 목표여서 유도가 금메달을 따줘야 했지요. 1988년 추석날 저녁 8시경 김재엽 선수가 금메달 땄어요. 전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을 때 최고의 선물을 안겨준 거죠.
 
88올림픽이 끝나고 87만 달러의 배당금이 나왔는데 IJF 회장이 그 돈을 개인 호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유도인들이 1989년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 총회에서 그를 내쫓았어요. 1991년에 바르셀로나 총회에서 스페인 사람이 회장이 됐는데, 나보고 자기가 하던 재무위원장을 맡으라고 하는 거예요. 1993년 IJF 총회가 끝나고 평소 얼굴을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현 회장이 인심을 잃었으니 회장에 나가보라”고 해요. 기왕 발을 들여놓은 김에 한번 도전해보기로 하고 그때부터 유도인들이 모인 곳에 열심히 나가서 밥 사고 얼굴을 익혔지요.
 
1995년 총회에서 현직 회장이던 스페인 사람하고 나하고 일본 회장이 3파전을 벌였어요. 일본유도협회 회장은 할아버지가 유도를 만든 사람이고 아버지는 초대 IJF 회장이었습니다. 힘든 싸움이 벌어졌는데 발을 너무 깊게 들여놔 그만둘 수도 없었지요. 1차투표가 끝나고 나니까 현직 회장이 24표를 받았어요. 내가 1등이고 일본사람이 2등이에요. 2차 투표에서 내가 88표, 일본사람이 69표였죠. 국제경기단체장을 맡았으니 당연히 IOC 위원 욕심이 생겼지요. 내가 열심히 하면 IOC 위원장이 내 공로를 알아서 언젠가는 시켜주겠지 하고 IJF를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국제스포츠계에서도 눈도장을 찍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년말 필드하키 회장이 여성이 됐는데, 이 여성은 되자마자 몇 달만에 IOC 위원이 됐어요. 나는 6년을 기다렸지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시켜주리라고 생각했는데 소식이 없었어요. 그 다음 총회가 모스크바였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김운용씨가 출마해서 유럽과 대판 붙었으니까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자크 로케 회장이 당선되자마자 축하를 보내고 10여 일 뒤 뮌헨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초청했더니 선선히 수락했어요. 뮌헨에서 나를 대하는 걸 보니 IOC 위원 시켜줄 것이라는 감이 오더군요. 나는 IOC 회장 선거에서 김운용씨를 밀었고, 그는 김운용씨하고 처절한 싸움을 했기 때문에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때까지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서양이나 동양이나 사람 대하는 것을 보면 알아볼 수 있잖아요. 이심전심이죠.”
 
―혹시 이번에 IOC 위원이 되실 때 이건희 위원이나 김운용 위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으셨습니까.
 
“IOC 위원 추천은 옆에서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해요. 80명 추천후보 중에서 자격심사 등을 통해 떨어뜨리고 마지막 낙점 찍는 건 위원장이 합니다.”
 
―IOC 위원장이 거의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봐야 되겠네요.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월드컵, 한국홍보 기회로 삼아야”
 
―한국의 월드컵 준비에 관해서 여쭤보겠는데요. 공동개최국인 일본의 질서, 청결과 비교돼 한국의 체면이 깎이지 않을까 걱정돼요. 특히 숙박시설이 부족하지나 않을까요? 여유 있는 가정을 엮어 대대적인 민박조직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지.
 
“제가 월드컵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회의할 때 준비상황을 들어보는데 88올림픽 때처럼 잘 할 수 있다고 봐요. 올림픽은 나라에 주는 것이 아니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준 겁니다. 월드컵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주최합니다. 그 점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이 분명히 다르죠. 88서울올림픽 때는 성화가 지나가는 시골길 담장에 페인트 칠까지 했습니다. 월드컵도 잘 치러보자고 하는 국민적 컨센서스만 이루어지면 잘될 겁니다. 숙박시설이 좀 모자란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많이 오면 부족할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월드컵은 전국에서 열립니다. 부산 경기도 비행기 타고 아침에 가서 낮에 보고 저녁에 올라올 수 있습니다. 인천 수원 게임은 서울에 묵으면서 지하철 타고 갔다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숙박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겁니다. 자원봉사자도 인터넷으로 접수해 4대1의 경쟁률로 선발했습니다. 오히려 일본보다 경쟁률이 높았어요. 사회인프라는 일본만 못하고 청결에서도 뒤지지만, 대회운영 면에서는 우리가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제품을 알리는 것은 개별 기업에 맡기고, 이번 기회에 한국과 개최도시를 세계에 잘 알려야 됩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예선을 1위로 통과할 경우 울산에서 준준결승을 치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은 유럽인들이 국민들이 울산 경기를 지켜볼 것입니다. 유럽인들에게 울산을 홍보하고 간접적으로 현대자동차를 알리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한국에서 그냥 울산이 어떤 도시라고 유럽 텔레비전에 광고하면 유럽 사람들이 보겠습니까? 관심이 이쪽으로 집중됐을 때 보여주는 거죠. 수원은 유네스코에서 정한 문화유산이 있는 성곽도시라는 것을 자꾸 외국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특집으로 나가게 해야죠.
 
월드컵에 정부가 2조4000억원을 투자했다는데 홍보비용으로 1000분의 1인 24억원이라도 써야 합니다. 하계올림픽은 앞으로 50년 내에는 다시 안 올 것이고 월드컵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한테 못 옵니다. 아시아에 올 기회가 있으면 중국한테 갈 것이고 동남아도 컸으니까 한번 하겠다고 나설 겁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추산으로 전세계적으로 연인원 600억 명이 월드컵을 시청한다고 합니다. 조금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연인원 300억 명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습니까. 프랑스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서울도 잘 모릅니다. 울산은 현대차를 만들고, 수원은 애니콜 전화기를 만드는 도시라는 것을 자꾸 알려야지요. 수십조원을 들이는 잔치 몇백억 원은 홍보비로 써야죠. 내가 20년쯤 스포츠에 관계하면서 보니까 대회가 잘됐다 못됐다고 하는 평가는 누가 내리느냐 하면 방송과 신문기자들입니다. 그 사람들한테 지금부터 식사 대접을 하고 잘 해줘야죠.”
 
“이재용씨 같은 사람이라면…”
 
월드컵 경기가 현 지방단체장들의 임기말에 치러지다 보니 선거법을 고쳐서라도 일정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겉으로는 월드컵 걱정을 하는 척하지만 여당은 월드컵 분위기를 지방선거에까지 몰아가 기선을 잡으려 하고, 야당은 월드컵 이전에 게이트의 연장선상에서 선거를 끝내려는 속셈이다. 박회장은 “시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일생일대의 기회를 잘 활용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온 나라가 양대 선거에만 신경쓰느라 월드컵이 조금 소외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에요. 1월7일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대통령께서는 월드컵 등 4대 행사를 잘 치르기 위해 총재직을 사퇴했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정치에 관여하면 월드컵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총재직을 그만두셨다고 말했어요.”
 
―차세대에는 어떤 사람이 IOC 위원이 돼야 합니까? 신문에 보니까 돈과 영어가 자유로운 삼성그룹 이재용씨 같은 사람이 IOC 위원이 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더군요
 
“우선 시간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공직자나 현업 경영인은 시간을 내기 어렵죠. 시간과 돈의 여유가 필요하죠. 구차하게 초청을 기다리지 말고 자기 돈으로 여행하면서 각종 스포츠행사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와 불어를 자유롭게 해야 IOC 위원의 교두보인 국제경기연맹의 간부가 될 수 있지요.
 
30, 40대로서 그러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스포츠계에 별로 남아있질 않아요. 이재용씨 얘기는 신문이 잘못 쓴 거예요. 기자들하고 이재용씨 이야기를 하다가 이씨 같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우리 회사에 지원하면 나는 눈 감고 뽑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IOC 위원 얘기가 나왔는데 기자들이 앞뒤를 섞어서 그렇게 쓴 거죠.”
 
―IOC 위원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저 영예죠. 제가 운동기구를 만든다든지 텔레비전 방영권과 관련한 사업을 한다면 상당히 도움이 되겠지만…. 간접적인 도움이라면 그래도 IOC 위원이니까 엉터리는 아니겠구나 하는 정도 입니다.”
 
스포츠에 관한 대화를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화제를 경제문제로 돌렸다. 그는 여기서 윗저고리를 벗고 목소리가 커지며 “우리 좀 편하게 이야기 합시다”고 말했다.
 
그는 신동아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새벽에 일어나 얘기할 내용을 미리 정리했다고 말했다. 정리한 내용을 기자에게도 인터뷰 전에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메모 없이 말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말을 빼먹고 인터뷰가 끝난 뒤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박회장은 ‘신동아’ 애독자다. 이번 인터뷰에 대비해 기자가 작년에 썼던 고건 시장, 박세리 선수, 강봉균 KDI 원장 인터뷰 기사를 참고 삼아 읽어보았다고 한다. 준비성이 대단하다.
 
“공휴일 줄이고 주5일 근무”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주5일 근무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합니다. 국민소득이 한국에 훨씬 못 미치는 중국도 주5일 근무제를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지금 당장 실시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데,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많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들은 그렇지만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싱가포르는 아직 주 6일 근무예요. 대개 1만달러 수준에서 주5일 40시간 근무제로 가거든요. 우리도 갈 때가 됐지요. 한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외국에 물건을 팔아서 먹고사는 나라입니다.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주5일 근무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측에서 옛날에 누리던 휴일을 그대로 두고 주 40시간을 일하자고 요구하니까 경제계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거죠. 주 근무시간을 40시간으로 하려면 공휴일을 17일에서 13일로 줄여 국제수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생리휴가나 월차휴가를 없애야 해요. 노는 날 심야에 일을 시키면 평상 임금의 200% 이상을 줘야 하는데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125%만 주라고 합니다.
 
현상태에서 법정근로 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이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14% 가량 오르는 효과가 생깁니다. 연평균 임금 인상률 6%에 14%가 더 올라가면 과연 견뎌낼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린이날이 왜 5월5일이어야 합니까? 5월 첫째 토요일이면 어떻습니까? 식목일이 왜 4월5일이어야 합니까? 4월 첫째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어떻습니까? 현충일은 왜 6월6일이어야 하고 근로자의 날은 왜 5월1일이어야 합니까? 부처님 오신 날, 크리스마스를 굳이 공휴일로 할 필요가 있느냐고 따지면, 아마 종교계에서 난리를 치겠지요. 그런 식이라면 유림에서 왜 공자 탄신일은 놀지 않느냐고 따져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집에서 제사 지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습니까?”
 
월드컵을 취재하기 위해 전세계 기자들이 1만 명 가량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들이 축구경기만 취재하고 가는 것은 아니다. 자국의 경기를 전후해 월드컵 개최도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관해 기사를 쓰게 된다. 기업인들은 월드컵을 전후해 과격한 노사분규가 벌어지면 한국이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을 세계 만방에 선전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월드컵 기간에 노사 평화선언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노동운동이 지나치다”
 
―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노동운동에 관해 발언을 자주 하더군요. 한국의 노동운동이 외국에 비해 과격한 편입니까.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과격해진 것은 1987년 6·29 선언 이후입니다. 그전까지는 탄압이 심해서 노동운동이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였고, 6·29 선언 이후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지요. 15년 동안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끝날 때도 됐는데 아직도 요원합니다. 통계로 보면 파업 횟수 등은 2000년보다 2001년에 많이 줄었어요. 12%의 조직화된 노동자를 과보호하다 보니 88%의 비조직화된 노동자가 희생을 당합니다. 정규직을 너무 보호하니까 비정규직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겁니다.
 
저는 노조 간부들에게 ‘당신들 아들 딸이 취직되지 않는 것은 당신들의 권리가 너무 강해 기업인들이 사람 채용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하는 분이 생산직 사원을 4년 동안 안 뽑았다고 자랑하더군요. 정규직은 노조 때문에 골치 아프고 임금을 많이 줘야 하니까 비정규직과 외국인노동자를 데려다 쓴다고 합니다. 노동시장이 경직돼 고용의 유연성이 없으니까 누구든 채용을 안 하려는 거죠. 이래서는 한국 경제의 앞날이 없습니다. 최근 포드자동차에서 2만 명을 해고한다고 하는데 포드에서 데모한다는 소리 들으셨어요? 미국 사람들은 바보라서 데모 안하는 거예요?
 
대기업에서 20년 근무한 생산직 사원은 신입사원에 비해 임금을 2배 가까이 받습니다. 미국은 1년짜리나 20년 근무한 사람이나 같은 일을 하면 임금도 똑같아요. 그러니까 해고할 때 나중에 들어온 사람부터 잘라 숙련공을 남겨둡니다. 우리는 인건비용을 줄이기 위해 오래된 사람부터 해고합니다. 2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나이가 40대 후반, 50대입니다. 아이들 대학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드는 시기에 해고를 당하는 거죠. 그러니 극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해고하게 되면 1∼2 년치 월급을 얹어주지 않습니까? 해고로 생길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해고비용으로 다 나가버려요.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2년 이상 더 기다려야 됩니다. 이런 경직된 고용형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답변이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듯 줄줄 나와 인터뷰하기에 아주 편한 사람이다. 인터뷰 분량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 같아 사전에 보내준 질문 중에서 집단소송에 관한 것을 빠뜨렸더니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집단소송제는 민감한 문제라 미리 정리해놓았으니 그대로 써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소송남발 방지책은 형식적인 것이어서 실효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법무서비스도 개방이 불가피한데 외국의 ‘못된 변호사(Shark Lawyer)’ 들에게 황금어장을 만들어줄 셈입니까? 기업의 우등생인 삼성전자, SK텔레콤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이 손을 볼 일이지 왜 시민단체가 제기하는 집단소송으로 잘못을 고치려 합니까? 감독기관의 직무유기를 집단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것인가요?”
 
최근에 참여연대가 제기한 소송에서 수원지법 판사가 삼성전자 이사들에게 ‘회사에 977억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 중에서 이사회가 충분한 검토 없이 한 시간 만에 이천전기 인수를 결정해 나중에 이천전기가 부도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부분이 논란거리다. 재계에서는 70% 가량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인데 이렇게 경영판단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물으면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항변한다.
 
―제왕적 오너 경영인의 결정을 형식적으로 추인하던 거수기 이사회에 경종을 울려준 의미는 없다고 보는지요.
 
“미국 변호사에게 물어봤더니 미국에서도 그런 판결은 없다더군요. 미국이 소액주주 보호와 이사들의 잘못에 대한 손해배상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진보적인데도 그런 판결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판결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경영을 해요? 한 시간 동안 이사회를 하기 위해 안건을 내는 쪽에서는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이리저리 다 따져보고 합니다. 기초자료를 놓고 계산기 두드리는 것부터 검토시간에 포함시켜야지요. 회사의 흥망을 좌우하는 법안도 국회에서 연말에 몇초 만에 방망이 두드리고 다 끝내잖아요? 이사회에서만 갑론을박하면서 싸움하고 논쟁을 벌여 통과시켜야 이사로서 의무를 다한 겁니까?”
 
“기업 경영 투명해야”
 
―현 전경련 회장은 4대그룹 출신이 아닌 경방의 김각중 회장입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4대그룹 오너 가운데서 차기 전경련 회장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제가 상공회의소에 나오는 신문기자들하고 연말에 저녁을 같이 먹었거든요. 저녁을 다 먹고 2차로 노래방에 갔더니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후배 기자가 옆에서 ‘형님 형님’ 하면서 물어요. 내가 이런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가 남의 집 얘기를 했어요. 제가 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남의 단체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웃기죠. 자꾸 김각중 회장은 과도체제고 이 다음에 누가 돼야 하느냐고 물어서 ‘누가 되기는 누가 돼? 회비 많이 내는 4대그룹 오너가 해야지’라고 말했지요. 4대그룹이 내는 회비가 비중이 크고, 4대그룹이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이 크니까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무게가 실리는 건 당연하죠.”
 
그는 1940년 두산그룹 2대 회장인 고 박두병씨의 3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했다.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몰아주셨다.
 
―현 정부가 IMF 극복을 과제로 출범해서 4년이 지나고 1년 남았습니다. 경제가 작년 연말부터 조금씩 회복되는 기미를 보여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현재 1년 정도 임기를 남겨둔 정부에 대해 한마디 해주시죠.
 
그는 이 질문도 민감하다고 판단했는지 미리 준비한 문건으로 답변을 대체하자고 제의했다. 1월7일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앞에서 그대로 읽은 내용으로 누구를 시켜서 쓴 것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정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한 4대 부문 개혁을 보면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지만 공공과 노사부문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감이 있습니다. 4년간 국내기업들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깨졌다는 것입니다. 30대그룹 가운데 16개 그룹이 사라졌습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경쟁력을 갖췄느냐 여부가 생존의 전제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기업의 가치는 바로 주식의 가치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든 주가를 높이려면 기업경영이 투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제 누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기업 스스로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투명성을 적극적으로 높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일부 벤처기업을 빼고는 주가조작 등 불법행위와 관련된 스캔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입니다. 기업경영이 투명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불신하고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재고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민의 정부가 1년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새로운 정책을 자꾸 내놓는 것보다는 지금껏 추진한 개혁 프로그램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도와 완급을 조절해가면서 대응해 나간다면 개혁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든 연설할 때 비서실에서 써준 것 대신에 그의 생각을 정리한 메모를 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직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취임연설문을 쓸 능력이 없으면 그 기관에 취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비서실에서 써준 것을 읽으면 아무도 듣지 않아요. 조금 더듬으면 어때요? 상공회의소 회장 연설이 무슨 역사에 남을 기록이라고 써준 것을 그대로 읽습니까.”
 
“먹고 살 것은 전통산업뿐”
 
―작년에 무역수지 95억달러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자동차, 조선이 선전해 반도체가 무너진 부분을 메워줘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올해 수출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엔저 문제가 심각해 중·일간에 환율전쟁이 벌어져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하고 나서지는 않겠습니까.
 
“가장 큰 걱정이 엔화의 약세입니다. 국제시장에서 일본하고 치열하게 싸우면 큰일입니다. 자동차, 조선이 우리 경제의 효자업종입니다. 조선 최강국 자리가 3년 전에 일본에서 우리한테로 넘어왔죠. 엔화 약세가 1달러당 140∼150엔으로 가면, 일본 조선이 살아나면서 우리 조선산업이 고전하게 될 겁니다. 별의별 자구책을 다 써봐도 경제회복을 못하고 있는 일본이 계속해서 약한 엔화로 나갈 거냐? 그러면 중국이 가만있을 거냐? 중국도 절하하면 우리도 자연히 절하하게 되는 거죠. 일본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제를 살리려 하기보다는 구조조정을 철저하게 해야죠.
 
일본은행의 부실자산이 공식적으로는 30조엔이라고 하지만 정말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빨리 털어야 하는데 털려면 당장 적자 내고 배당을 주지 못하니까 연리 0.2%도 안되는 이자로 돈 꿔다 메워놓고, 은행장 하는 동안 적자 안내고 그냥 넘어가면 된다는 식이죠. 그러니까 구조조정할 필요가 없는 구조입니다. 과연 일본이 그렇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 자기네들끼리 서로 계열화해서 형님 아우 하면서 주고받고 하는 유통구조로 과연 일본이 언제까지 끌고갈 수 있는 거냐? 결국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일본도 구조조정을 빨리 해 다시 경쟁력 있는 메이커로 태어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국내총생산(GDP)의 몇 배 되는 돈을 들여 공공사업을 벌이고 국민들한테 쇼핑하라고 쿠폰을 주는 짓은 하지 말자 이거죠. 이건 정상적인 경제해법이 아니에요. 금융기관부터 철저하게 구조조정을 해서 기업이 경쟁력을 찾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합병한 은행이 20년 동안 인사부를 계속 2개로 유지하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는 큰 홍역을 치렀지만 확실하게 했지요. 일본은 화학적으로 합해야 되는데 물리적으로 간판만 합한 거예요. 화학적으로 은행이 합병을 했다면 바로 옆에 지점이 2개 있을 경우 합해서 하나로 만들어야죠. 인사부가 2개 있으면 하나를 줄여야 합병효과가 나타나는 것 아니에요?
 
유럽연합(EU)이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쓴 지 불과 1주일밖에 안됐지만 너무 스무스(smooth)하게 잘 돌아가요. 영국이 버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6개월 안에 유로화를 쓰기 시작할 거라고 봅니다. 거기다 EU에 들어오려고 하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그런 나라들이 다 들어오면 미국을 능가하는 큰 경제권이 형성됩니다. 그러면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죠.
 
한국 일본 중국이 힘을 합해서 뭔가 좀 해봐야죠. 일본이 싱가포르하고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지만 한국은 아직 하나도 없고 중국은 이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습니다. 동북아시아 세 나라가 같은 경제권에 있으면서 언제까지 담을 쌓고 살 수는 없습니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선심정책이 남발하고 집단이기주의가 날뛰면,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여기에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겹치면 혹시 1997년 같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시안게임이나 월드컵은 경제에 굉장한 플러스효과를 주겠지만 양대 정치행사가 얼마나 경제의 발목을 잡을 지는 아무도 몰라요. 제발 나쁜 영향을 줄여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죠. 대통령선거 때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 우리 경제에 짐이 될 겁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헛공약하는 사람이 당선이 안되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싹터야 합니다. 이제 국민들도 실현 불가능한 공약, 거짓말 공약을 가려내야 합니다.”
 
―민주당에서는 8룡이니 9룡이니 하고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씨로 굳어지는 것 같은데 경제와 관련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분들한테 당부 같은 것은 없습니까.
 
“시장경제의 원칙에 충실하게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분이라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상관 없는 거죠.”
 
“정부는 노름판 지원하지 말라”
 
―미국에서도 신경제니 해서 닷컴 붐이 엄청나게 일다가 꺼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에서 테헤란로 벤처기업으로 인재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코스닥 주가가 10배 20배로 뛰는 벤처열풍이 일었습니다. 지금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꺾여버렸는데….
 
“앞으로 10년 동안 먹고 살 게 뭔가부터 따져보자고요. 제가 보기에 전통산업밖에 없어요. 한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는 안나옵니다. 기껏 해야 남의 일 뒤치다꺼리 해주는 소프트웨어 회사 정도겠지요. 한국에서 획기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리가 없습니다. 결국 전통산업으로 먹고 살아야죠. 전통산업에 어떻게 하면 빨리 그런 훌륭한 소프트웨어, 정보통신(IT) 생물산업(BT)기술을 접목시키느냐가 관건이지요. 전통적인 제약산업에 새로운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접목시키면 경쟁력있는 수출산업이 되는 것입니다.
 
신경제를 얘기하는 미국도 지금 전통산업이 먹여살리고 있어요.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닷컴이나 벤처로 먹고살 수 있습니까. 말이 조심스러운데 벤처가 원래 노름판입니다. 대박 터지면 몇 백배로 올라가지만 성공할 확률이 고작 2∼3%입니다. 100달러 투자하면 평균 2∼3달러로 떨어지다가 제대로 들어맞으면 몇 백배 올라가는 것이지요. 어떻게 나라의 운명을 그런 도박에 의존하느냐 이겁니다. IT 벤처 중에서도 수익모델이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수익이 있는 제조관련 기업을 장려해야 합니다.
 
실체가 있고 경쟁력을 갖추어 국제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포털은 확실한 1등 하나 정도 살아남겠지요. 우리가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벤처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기존 전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효율을 늘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막힌 용접 기술이 개발되면 조선업이 몇 년 더 버틸 수 있고, 새로운 항생물질을 발견하면 제약산업이 국제 경쟁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 거죠.
 
벤처만 가지고 먹고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옛날에 이런 소리 하면 굴뚝들이 배 아파서 하는 소리라고 했지만, 불과 2년 전에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 지금은 퇴출당했어요. 세상에 노름판 지원해주는 정부가 어디 있어요? 오히려 중소기업 창업을 지원해야죠. 실제로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갈 수 있는 중소기업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걸 놔두고서 불확실한 벤처를 도와주려고 하다니….”
 
벤처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가 나서 2주 동안 대통령이 다섯 명이나 바뀌는 사태가 났는데요.
 
“24시간 대통령을 해도 평생 대통령 연금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거기서 배울 것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아르헨티나와 멕시코가 IMF에 입학했다가 한 5년 동안 죽도록 고생해서 졸업하고 나면 또 다시 입학하잖아요? 입학과 졸업을 반복하는 것은 바로 포퓰리즘 때문이지요. 조금 살 만하면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돈을 펑펑 쓰기 시작하는 거죠. 미국 스웨덴 같은 나라는 한번 혼나고 그대로 상승했고…. 기업이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꼴이 되는 거예요.
 
아르헨티나는 자원이 풍부합니다. 정부가 세금 걷어 제대로 써야 되는데 퍼주기 식으로 사회보장에 쓰니까 거덜나고 밤낮 그 꼴입니다. 멕시코도 마찬가지죠. 근본적으로 정부의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IMF 입학과 졸업을 반복할 겁니다. 경제가 불안하니까 돈만 생기면 들고 해외로 튀죠.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만 다 붙잡아두어도 외채문제가 해결된다고 합니다.”
 
두산을 흔히 100년 기업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인 1896년 33세의 박승직이라는 젊은이가 서울 배오게에 면직물을 취급하는 조그만 점포를 차렸다. 이 가게는 날로 번창하여 각 지방에 지점을 열었다. 1946년에는 박회장의 선친인 박두병에 의해 두산상회로 바뀌며 두산의 현대사가 시작되었다. 1952년 OB맥주를 설립했고, 1990년대에는 27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두산도 차입경영을 통한 문어발식 확장경영에서 예외가 아니었지만, IMF 경제위기를 예견한 것처럼 한 해 전인 1996년 주력기업을 팔아치우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때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100년 기업 두산도 아마 IMF 경제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다른 많은 기업들과 함께 스러져버리는 별똥별이 됐을 것이다.
 
―구조조정의 성공 비결은 뭡니까.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내분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1996년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우리 형제들이 모여 어떻게든 살아남자고 합의했습니다. 계열사가 27개였는데 26개를 팔고 하나만 살아남아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화의나 워크아웃으로 가면 끝이었습니다. 형제들간에 합의하고 그대로 실천해 우리가 살아남았습니다. 우리가 1996년 말 30대그룹 중에서 27등이었고, 부채비율이 700%를 넘어 망하기 직전이었어요. 하지만 작년말 기준 부채비율이 140%입니다. 이거 팔고 저거 파는 과정에서 ‘네가 사업 잘못해 이렇게 됐다’ ‘누가 하자고 했느냐?’는 식으로 내분이 나면 그 날로 끝이죠. 두산은 컨센서스가 분명히 이루어졌고 매킨지라는 선생님을 잘 모셨습니다. 1996년 매킨지에게 조사를 시켰더니 ‘이대로 두면 내년에 부도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자기네들이 시킨 대로 하라고 해서 거의 그대로 따랐습니다.”
 
두산, IMF 직전 구조조정 완성
 
―덩치가 큰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경험도 없이 잘하겠느냐는 걱정들이 많습니다.
 
“노조도 똑같은 소리를 했지요. 두산중공업이 파업을 한번 세게 해서 난리법석을 피웠는데, 노조 대자보에 술이나 만들지 뭣하러 왔느냐는 소리뿐이에요. 그래서 내가 발전기는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운 것 정도뿐이지만, 누가 발전기를 잘 만들고 누가 발전기 잘 팔고 누가 관리를 잘하는지는 안다고 답했지요.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 그 사람들한테 목표를 주고 동기를 부여해, 잘 하면 최고의 상을 주면 되는 겁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사업부문이 14개나 되는 문어발기업입니다. 방송국부터 시작해서 금융회사까지 오만가지 잡회사가 다 있습니다. 잭 웰치 회장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누가 거기에 가면 제일 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NBC 방송국에서 편성을 어떻게 하는지는 알 바가 아니고 누가 NBC 사장으로 있을 때 최대한 이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골라내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내가 두산중공업에 가서 ‘발전기는 이렇게 만드는 거야’ 소리는 안합니다.”
 
―임직원들의 공기업 체질이 쉽게 바뀌겠습니까.
 
“굉장히 비싼 대가를 치를 각오가 돼 있습니다. 여태까지 인원조정이 한번도 없었으니 참 좋은 직장이었죠. 우리가 들어가 희망퇴직을 실시했습니다. 이젠 한전에 수의계약으로 발전기를 팔던 시대가 지나갔어요. 한전도 6개 회사로 쪼개졌잖아요? 각각의 발전회사들이 저마다 발전기를 싸게 사야 전기를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고 그래야 전력거래소에 가서 싸게 판단 말이에요. 요새 우리가 죽을 맛이죠. 수요처는 그렇게 변했는데 우리가 옛날 공기업 같이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한전 자체가 6개 회사로 쪼개져서 서로 경쟁하느라 우리더러 발전기 값 깎으라고 야단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한국중공업 인수비화라고 할까요…. 혹시 특혜를 받으신 건 없습니까.
 
“특혜 받았다면서 두산게이트라고 이름도 없는 잡지에서 헛소리를 썼더라고요. 우리가 특혜 받았으면 여태까지 내가 이렇게 성하겠어요? 요새 게이트가 많지만 기껏해야 몇십억원 가지고 온 나라가 난리 법석인데….
 
한국중공업 주식이 3850원 하던 날 우리가 8150원에 샀어요. 그날 아침 가격보다 두 배 넘게 줬습니다. 그러니까 특혜시비가 나올 수 없는 거죠. 3850원 하는 날 우리가 3000원 주고 샀다면 특혜시비가 나올 수 있지만 시가의 배 이상 주고 샀는데 무슨 특혜입니까?
 
우리가 1990년 12월5일 한국중공업 입찰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더니 은행장들이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세 군데를 돌았는데 모두 무슨 돈으로 살 거냐고 물어요. 그때 OB 주식 50%를 파는 협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기가 새나가면 협상이 깨지니까 말도 못하고 6개월 시간을 달라고 했죠. 6개월 동안 두산의 총부채가 늘어나면 꿔준 것 다 회수하라고 했지요. 빚내서 살 생각은 추호도 말라고 해서 반드시 그러겠다고 약속했지요. OB 주식을 6000억원에 팔아 3000억원 주고 중공업을 샀고, 남은 돈으로 빚 갚았습니다.”
 
“OB주식 팔아 한국중공업 인수했다”
 
―한국에서 창업자에서 4대까지 내려온 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자랑스럽겠습니다만, 전문 경영인 시대에 문제점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세리, 박찬호뿐만 아니라 김정태와 유상부가 스타가 되는 세상이 와야죠. 대학을 나와 기업에 들어온 사람들이 나도 열심히 노력해 30년 뒤에는 저렇게 돼야겠구나 하는 꿈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동안은 전문경영인이 자랄 토양이 아니었습니다. 구속용 대표이사라고 놀리잖아요. 회사에 나쁜 일이 생기면 대신 감옥에 가는 구속용 대표이사 말입니다. 권한은 주지 않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니까 황제경영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러한 토양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문경영인이 마음대로 경영할 수는 없지요. 이사회에서 위임받은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전문경영인의 역할입니다. 옛날에 일부 회사는 말만 전문경영인이지 사실 방만한 경영이었어요.
 
잭 웰치도 이사회가 정해준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사회에서 정해준 룰 안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게 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본인이 깜짝 놀랄 정도의 돈으로 보상합니다. 헛것으로 사람을 꼬이려고 하지 말자 이거죠. 교육에 의한 효과는 사흘밖에 안가요. ‘네가 이거 해오면 얼마 줄게’ 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게 어디 있어요? 외국 기업을 보더라도 4대까지 내려온 게 4%밖에 안돼요. 창업자의 손자가 된다 안된다고 하지 말고 시장에서 평가를 받게 해야죠.
 
삼성의 이재용씨도 실제로 경영에 들어가서 하는 결과를 갖고서 평가해야 합니다. 아무리 오너의 아들이라고 해도 시장평가에서 떨어지면 스스로 퇴출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포드에 이번에 4세가 다시 들어갔지만, GM과 크라이슬러하고 피눈물 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야 너는 오너 아들이니까 사장은 하지 말라’고 해서는 말이 안되죠.”
 
雜讀·多讀狂
 
―두산중공업, 상공회의소, IOC까지 하려면 힘겹지 않으세요?
 
“내가 일일이 간섭하려 들면 힘들겠지만 목표를 정해주고 평가하는 회의들 한 번밖에 안 하는데 힘겨울 게 있겠어요? 회사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졌을 때나 상의하러 옵니다. 비밀 하나 털어놓을게요. 1996년에 매킨지가 ‘우선 당신부터 구조조정하면 두산 구조조정의 반이 끝난다’고 하더군요. 나를 구조조정해 경영 스타일을 바꿔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회사와 주고받은 이메일 1년치를 카피해서 줬어요. 물론 절대로 비밀은 보장하는 조건이었지요. 출장을 많이 다니니까 결제를 거의 이메일로 했습니다. 바로 옆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메일을 보낼 때도 많아요.
 
그 이메일을 매킨지에서 전부 분석해보고, 이것 저것 간섭하는 경영 스타일을 없애라고 하더군요. ‘회사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는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 전략에 따라 목표를 세워주며 사장이 책임지고 달성하라’는 경영 스타일로 바꿨지요. 그러니까 지금은 회의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사장 중에도 나를 1년에 두어 번 보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목표를 주고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사장이 하고 그 다음에 벌을 받든지 상을 받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그런 형태로 경영한 것이 삼성입니다. 그 반대가 대우였죠. 회장이 차 치고 포 치고 다 했어요. 오늘날 대우가 어떻게 됐어요? 분명하게 목표를 주고 그 목표를 달성한 사람한테 상 을 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벌을 준 삼성은 어떻게 됐고, 회장이 직접 뛴 대우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걸 보면 한국 회사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잖아요?”
 
―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역점을 두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중소기업에게는 테헤란로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보다 멀어요. 한 중소기업인이 회사제품을 소개하는 영문 카탈로그를 만들어 전세계 코트라(KOTRA) 지사 등 3000여 곳에 보냈다고 자랑하더군요. 아마 대부분의 카탈로그가 보지도 않고 쓰레기 통에 들어갔을 거예요. 홈페이지를 만들면 최소한 몇 사람이 들여다보고 나갔는지는 기록에 남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등 회원기업 정보화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회원기업 정보화의 핵심사업이 기업내용과 그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입니다.”
 
박회장은 신문을 많이 읽는다. 집에서 7개를 보고 회사에서 7개를 본다. 경제면은 꼼꼼히 읽는 편이고 정치면은 제목만 보고 훌훌 넘긴단다. 경제 시사관련 주간지 월간지 외국잡지 등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그렇게 잡독 다독을 하시면 어떤 도움을 얻으십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데이터베이스가 넉넉해야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에서 잡서를 한 보따리 사다가 대충대충 읽고 던지니까 누구한테 권할 책은 별로 없어요. 내가 지금 복잡한 경영이론이나 사회이론을 파고들어 뭘 하겠습니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시면 가족들이 싫어하지 않으세요?
 
“마누라는 훈련이 잘됐어요. 그렇게 썼다가 마누라한테 혼날라…. 어느 지역 며칠 간다고 하면 딱 짐을 싸줘요.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같이 나가지요.”
 
한국은 독일 방향을 따를 것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슨 운동을 합니까?
 
“1989년 춘천에 우리 골프장이 생겼습니다. 요즘에는 1년에 10번 치나? 전성기에는 80대 중반을 쳤는데 지금은 100을 넘지 않으면 잘 치는 거죠. 골프를 치면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잖아요? 우리 집에서 떠나 춘천 가서 골프 치고 오면 12시간 걸리거든요. 요즘에는 걷는 것이 좋다고 해서 주로 걸어다니죠. 남산 가서 한바퀴 돌면 한 8km 되거든요. 한강 둔치에서도 걷습니다. 공기가 맑고 눈치볼 사람도 없고….”
 
―경제부 체육부 기자들을 많이 만날텐데 언론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까.
 
“거두절미하고 지면 가운데 이상한 걸 타이틀로 뽑아놓으면 육두문자부터 나옵니다. 나도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어야죠. 상공회의소 출입기자들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요. 나는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주니까. 기자들하고 갈등 생기는 게 주로 꼼수 부리다 그렇게 되잖아요. 나는 있는 대로 다 터놓고 내가 잘못 했더라도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한번 봐달라는 식으로 접근하지요. “
 
―동아일보 간부 연수회에 와서 언론에 대해 일갈했다면서요.
 
“동아일보 간부들이 연수할 때 저보고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대한민국은 언론 공화국이다’ ‘주권은 신문사에 있고 권력은 기자로부터 나온다’고 했어요. 모든 국민이 신문을 교과서로 알지요.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도 신문 보고 그것에 따라서 하잖아요. 기업하는 사람들도 비슷해요. 이제는 신문의 지도편달에서 벗어날 때도 됐는데…. 솔직하게 얘기하면 기사를 제대로 써줘야죠. 지금같이 잡다하게 타이틀만 나오는 기사는 그만두고 길고 깊이있는 기사를 써야 합니다. 동아일보 연수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제 신문도 차별화해야 합니다. 칼럼을 빼면 나머지 기사들은 다를 게 없잖아요.”
 
―술은 어느 정도나 하세요?
 
“포도주를 좋아합니다. 소주는 두산이 소주 만들면서 먹기 시작해 한 병은 먹어요.”
 
2시간 동안 인터뷰를 끝내고 바로 옆 삼성빌딩 태평로클럽으로 자리를 옮겨 메독 포도주를 반주로 저녁을 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코스 요리를 시켰는데 가장 싼 것은 아니고 두번째로 싼 것을 시켰다. 판공비로 밥 먹으면서 비싼 것을 먹으면 안된다고 주석을 달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씀씀이가 짜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세평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기분으로 돈을 쓰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짜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쓸 때와 안쓸 때를 분명히 가립니다.”
 
메독 포도주에서 우러나온 박 회장의 인생과 기업경영 철학을 몇 가지 소개하면 이런 것이다.
 
“얕은 수로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금방 펑크가 나게 돼 있다. 평생을 진실되게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세상의 룰이다. 한 번 속일 수 있어도 두 번 속일 수 없다. 경영자는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해야 한다.”
 
“남자가 성공하려면 돈에 깨끗해야 한다. 푼돈에 눈이 어두워 일생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놓고 돈 몇푼에 일생을 망치는 사람 이야기가 요즘 신문지면에 넘쳐난다.”
 
“독일에서는 세금 한번 떼먹으면 영원히 추방하고, 모든 모임에서 왕따 당한다. 우리는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참여연대는 더 빨리 가자고 하고, 기업들은 눈치 보며 느리게 걷고 있지만 한국도 종국에는 독일 같은 방향으로 갈 것이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자료출처 :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