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줄담배를 연달아 피워대는 탄압받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인상은 여러 일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의 고단했던 그의 삶의 여정 때문이기도 하고, 또
거대하고 격렬하면서도 어딘지 억눌린 듯 비틀린 유머로 가득한 그의 교향곡들이 주는 느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쇼스타코비치는
엄청난 양의 소위 '가벼운' 음악의 작곡자이기도 합니다.
오페레타나 발레, 영화음악 등의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덜 진지한 음악을 일컫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진지함과 희유성이라는 두 가지 면모의 쇼스타코비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 장의 음반은 瀏?歐?후자의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증거입니다.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익살스럽고 위트에 찬 패러디가 있고, 때로는 씩씩한 리듬에 호쾌한 행진곡이 울려 퍼집니다.
눈부신 관현악의 향연에 빠져 들다 보면, 세 장의 음반이 끝날 무렵에는 그동안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를 이 천재 작곡가에 대한 왜곡된 일면적인 인상이 상당히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90년대에 데카 레이블로 차례로 내어 놓은
이 세 장의 음반에는, 각각 Jazz Album, Dance Album, Film Album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정통 레퍼토리 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있어서 특히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 유능한 지휘자에 대해 여기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샤이의 음반들은 대부분 곡의 핵심을 꿰뚫은 명연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역동적이고 눈부신
연주만으로도 하나의 모범이 되는 음반들이 아닌가 합니다. 이 세 장의 쇼스타코비치 음반에서도 각각 콘서트헤보우, 필라델피아, 다시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기용하여 빼어난 연주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가벼운' 장르의 음악이라 하여도 결코 그저그런 이류 음악이 아님은 일단
들어보면 누구라도 공감하지 싶습니다. 데카의 선명한 녹음이 대편성 관현악 감상의 쾌감을 더합니다.
(가져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