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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마오(毛)’ 인기의 비밀

鶴山 徐 仁 2006. 6. 1. 15:39

▲ 송의달 홍콩특파원
요즘 중화권 매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노병(老兵)이 한 명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이다. ‘10년 대동란’(1966~76년)으로 불리는 문화혁명의 총지휘자로, 최대 1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주범(主犯)인 그를 추념하는 열기가 중국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골동품 상가가 밀집해 있는 베이징(北京) 판자위안(潘家園) 거리와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뒷골목에는 마오 관련 기념품들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의 얼굴을 담은 기념 휘장과 도자기, 배지 등은 10여 년 전보다 가격이 최고 1000배 가까이 치솟았다고 홍콩 언론들은 전한다.

가령 1928년 징강산(井崗山)에서의 마오와 주더(朱德) 모습을 함께 담은 유화는 장당 20만 위안(약 2500만원)을 호가한다. 지난달에는 그의 저작을 통째 금으로 만든 권당 1만~2만 위안짜리 ‘황금서(黃金書)’가 저장(浙江)성 등에 등장, 선물과 소장용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방과 서민들의 추모 열기도 상상 이상이다. 그의 고향인 후난(湖南)성의 성도인 창사(長沙)시는 미국 자유의 여신상보다 80m 이상 높은 동상 건립을 추진 중이다. 마오 키(183㎝)의 100배인 183m짜리로 세계 최고이다.

올 들어 탄광이나 각종 공사현장의 기공식 때마다 마오의 초상이 등장하고 있고, 집 안에 그의 사진이나 석고상을 모셔놓고 복을 비는 농민들도 부쩍 늘었다. 홍콩 언론들은 “마오가 가정의 복과 안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되살아났다”고 전했다.

공산당은 아예 문혁의 ‘과오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복권을 사실상 선언했다. 당 기관지 광명일보는 얼마 전 이렇게 주장했다. “마오쩌둥이 당 역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시간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건설의 지도 사상이며, 우리는 이를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올 음력 설날 마오의 혁명 근거지였던 옌안(延安)을 찾아 마오의 혁명정신과 농촌 중시 사고를 배우자고 역설했다. 중화권 언론들은 “탄신 100주년(1993년) 이후 13년 만에 마오 열기가 가장 뜨겁다”고 평가한다.

이는 올 2월 말 사망 9주년을 맞았던 덩샤오핑(鄧小平)에 대해 관영언론과 당이 일절 침묵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만한 차이다.

사회 전반의 급격한 자본주의·개방화 속에서 ‘덩샤오핑 퇴조’와 ‘마오쩌둥 부활’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던 선부(先富·먼저 부자가 된 다음 이를 확산한다)론에서 ‘다 같이 잘 살자’는 균부(均富)론으로 ‘국가경영 코드’가 바뀌는 신호탄이라는 지적이다.

홍콩의 중국 전문가들은 외국 기업·자본에 대한 반감 표출과 러시아·미얀마 등과의 연대 강화, 마르크스주의 연구 붐으로 상징되는 정통 사회주의 노선 복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몸통’은 자본주의지만, ‘머리’는 공산주의로 이념 무장을 굳게 다진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경제·군사·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가 한층 긴밀해지는 것도 한 증표이다. 중국 사회의 이런 ‘대전환’은 한·중 관계에도 파장을 던지고 있다.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니 경제교류 급증 같은 자화자찬에 들뜰 게 아니라, 더 냉정하고 치밀한 ‘용중(用中·중국 활용) 전략’이 긴요한 이유이다.

송의달 홍콩특파원
입력 : 2006.05.30 19:23 54' / 수정 : 2006.05.30 23:22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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