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최초의 승리와 산타 클라라 대첩
We will not
allow another Cuba - Che
Guevara
1956년 1월 16일 살아남은 대원들은 본격적으로 게릴라전을 개시했고,
1957년 라 플라타 병영 습격을
성공하므로써 게바라는 첫번째 승리를 이루었다.
이 역사적 승리를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전쟁의 회고]에서 이렇게
적고있다.
"1957년 초, 우리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악지방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라 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소규모의 병영(라 플라타 병영)을 습격하여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험준한 산간벽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알려져 쿠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습격은 게릴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투쟁의 준비가 완전히 끝났음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였고, 부대전체에 있어서는 앞으로 다가올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것이었다.
게릴라군은 이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승리의 전과는 약 36명의 바티스타군을 22명의 게릴라
부대가 습격, 라 플라타 병영에 붙잡혀 있던 포로들을
이끌고
유유히 사라졌다.
쿠바 국내에서는 독재자 바티스타 일당이 국민들에게 더 이상
게릴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뉴욕 타임즈의 허버트 매튜즈라는 기자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 속의 게릴라 기지에 들어가 카스트로와
회견을
했다(1957년 2월 17일).
사진까지 곁들인 이 회견기사는 정부측 주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4월에도 미국의 방송국 기자인 봅 티버를 초청하여 기자회견을
했다. 이 회견 장면이 미국 전역에 TV로
방영되었다.
산속의 게릴라군과 도시의 레지스탕스는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산속과 도시에서 통일전선을 구축했다.
이러한 통일전선은
게릴라 활동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체 게바라는 이렇게 회고했다.
"열악한 조건이었다.
의약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산속의 환자는 모두 비슷한 증세로 앓고 있었다.
이빨이
몽땅 빠져버린 노인, 기생충이나 구루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
여러가지의 비타민 결핍증, 이 모두가 시에라 마에스트라 농민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었다.
나는 단순한 치료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조건 자체를 철저하게 변혁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57년 6월에는 치과의사로도
개업했다.
내가 진료한 첫환자는 이스라엘 프라도였다. 그는 완전히 나아서 돌아갔다.
두번째 환자는 호엘 이글레시아스였는데, 그의
충치를 뽑기 위해서는 이빨에 맞춘 치료용
화약이 필요했다.
그건 일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런 힘겨운
전쟁을 치렀지만 이빨은 그대로 남아 잇몸에 달려 있었다.
그것을 뽑아내려고 온갖 짓을 대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치과의사역을 해
보기는 처음이었고, 진통제 한 알도 없었다.
그래서 심한 충치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심리적 마취를 십분 활용했다.
즉 고통스런
치료가 성공하도록 주문을 외우게 하는 방법이었다.
게바라는 의사로서 활동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산속에서의 전투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라 플라타병영 습격에서부터 엘 우 베로 전투, 엘 옴 브리트 전투,
그리고 알토스 데 콘라도, 브웨이시토, 피노 델
아구아, 마르 베르데 등의 전투에까지....
이 공적이 인정되어 7월에는 소령으로 진급되었다.
게바라는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갖추고
있었고, 조직가로서의 능력도 탁월하였다.
그의 생애중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의 25개월간은 그를 조직이론가, 사상가, 전략전문가
그리고
영웅으로 만들었다.
게릴라군은 산속의 근거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게바라는 병영본부를 건설하고 야채밭, 목장, 진료소, 빵 공장, 간이
방송국, 담배와 신발,
무기제작창 등을 세웠다.
물론 사소한 일이라도 신중하게 추진했다.
이 모든 것은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이 와중에도 게바라는 등사판 신문 [자유 쿠바인]을 발간하여 병사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1958년, 게릴라들은
세력을 확장하고 역량을 강화해 갔다.
이해 2월, 게릴라군은 드디어 산을 내려가 혁명전쟁을 개시할 것을 결의했다.
시가전이
조직되었고, 독재자에 대항하는 투쟁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개되었다.
날이 갈수록 전선은 확대되었다.
1.
피델 카스트로,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속에 남아 전부대 지휘.
2. 3월 라울 카스트로, 시에라 크리스탈 지역에 동부의 제2전선을
구축.
3. 후안 알메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를 포위하기 위해 하산.
4. 카밀로 시엔후에고스
별도의 공격부대 지휘를 맡기 위해 섬의 서쪽으로 출발.
5. 8월 31일, 체
게바라, 제 8공격부대와 함께 출발.
6. 에스캄브레이 산속에서는 또 다른
저항그룹이 형성되고 있었다.
핵심적인 그룹은 '대학생동맹'과
'인민사회당(공산당)'이었다.
게바라가 이끄는 부대는 농민들로
구성된 소규모 부대였다.
옷은 너덜너덜하게
헤어지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배를 채웠지만, 조국해방에 대한 신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다.
들판에서는 하늘에 노출되어있어
자주
비행기의 폭격을 받았다.
게다가 이해관계 때문이거나 혁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참가했던
병사들은 자주 도망을
쳐서 밀고해버
리곤 했다.
이런 와중에도 게바라 부대는 20개 이상의 강을 건너며 섬 중앙부를 횡단하여 마침내, 에스캄브레이 산속의
게릴라들과 합류했다.
게바라는 그곳에서 가축을 훔치는 등,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던 산적과 다름없는
"자칭
혁명가"들의 규율을 바로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 도적떼 같은 가짜 혁명가들에게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민중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에게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1958년 12월, 마침내 바티스타군은
패주하기 시작했다.
독재의 날들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게바라 부대의 산타클라라 공격은 독재자 바티스타 일당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최후의
일격이 되었다.
산타 클라라 전투의 상황을 게바라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산타
클라라는 쿠바섬의 중앙평원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 15만의 이 지역 중심
도시였다.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온갖 소문이나 정보가
가장 빠른 시간에 모여들고 퍼져나갔다.
우리는 공격 당시 소총부대를 상당히 증강시겼고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
만한 역량도 갖추었다.
비록 폭탄은 부족했지만 중화기도 갖추고 있었다.
바티스타군의 전차대를 공격할 바츄카포도
입수했다.
우리들은 까마후아니가의 도로 입구에 장갑차를 앞세우고 경비에 임하고 있는 바티스타군
에게 선제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12월 29일, 해방조국을 향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까피로 언덕의 수비는 상당히 완강했다.
30일, 이곳에서
하룻동안 전투를 계속하는 동시에 시의 다른 지역을 점차 장악해 들어갔다.
정부군은 본부와 장갑부대 사이의 통신이 두절되자 까피로 언덕이
포위되어버린 것을
알고는, 그제서야 당황하여 철도를 이용해 도주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미 철로를 파괴해 퇴로를 끊어 놓았기
때문에 기관차와 객차 여러대가
탈선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집중 폭격을 퍼부어 대자 장갑열차는 성냥곽처럼 부숴졌다.
고사포와
기관총, 그리고 엄청난 양의 총탄을 고스란히 내놓고, 적들은 22대의 차량과 함께
항복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바라 부대는 12월
31일 경에 산타 클라라의 거의 전지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날 밤.....
1959년 1월 1일, 새해의 첫날 새벽, 바티스타의 탈출작전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현금과 보석자루가
비행기에 실리고, 공포에 질린 바티스타
부부와 그들의 절친한 몇몇 외국인 친구들이 함께 탑승했다.
(※ 영화 "대부"에 이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비행기는 산토 도밍고를 향해 소리없이 이륙했다.
새벽 2시 10분에 너무나도 황급히 떠나야 했기 때문에
경호원
이나 수행원들은 거의 따라가지 못했고, 측근들은 작별인사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바티스타의 부인 루시아는
귀금속이 달린 블라우스
와 현란한 장미빛 판타롱을 차려입고 한껏 멋을 부렸지만 불안
해하고 초초해하는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바티스타는 측근들에게 자신이 출발한 직후 일어나는 일들을 반드시 보고하도록 당부했다.
그리고 두 명의 장군에게 집무를
대행하도록 명령하고, "체 게바라"라고 알려져 있는
아르헨티나 의사 따위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는 정권이 절대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人物情報 參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6. 제 3의 길을 향하여... (0) | 2005.09.30 |
---|---|
[스크랩] 5. 쿠바해방! 또다른 시작 (0) | 2005.09.30 |
[스크랩] 3. 혁명의 시작 (0) | 2005.09.30 |
[스크랩] 2. 일어서는 체 게바라 (0) | 2005.09.30 |
[스크랩] 1. 탄생과 진실을 향한 여행 (0) | 2005.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