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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 일어서는 체 게바라

鶴山 徐 仁 2005. 9. 30. 12:29

2. 일어서는 체 게바라

We are fighting against misery - Che Guevara

볼리비아 라 파스에서 그는 아르헨티나의 변호사 리카르도
로호와 만나게 되는데, 조국에서 추방된 이 반페론주의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고, 남미 일부국가에서
이미 현실화 되어가는 사회개혁 운동과 부딪히면서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이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로호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1953년 볼리비아 혁명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기도 하고, 그의 의견에 따라 베네수엘라로 가지 않고, 과테말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마야와 잉카문명에 관한 고고학 쪽에 관심을 두어 오래도록 머물렀다.
과테말라는 당시 혁명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마르크스와 레닌에 심취한 적이 있었지만, 공산당 가입은 거부했고 따라서 정부가 좋은 조건으로 제의해온 의료담당관 자리도 거부했다.
그는 그곳에서 인디오 혈통의 마르크스주의자 가디아(Hilda Gadea)와 기거하며, 정치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 훗날 쿠바혁명의 둘도없는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의 조직원
로페즈(Nico Lopez)를 소개받아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1954년 과테말라 중미의 이 작은 나라에서 자유주의적 좌파인 하코보 아르벤즈가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면서, 혁신적인 정책을 폈는데, 당시 막강했던 유나이티드 프루츠사
(미국 곡물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경작지를 국유화시킨 후, 그것을 인디언과 소농
에게 분배하려는 개혁을 실시하려는 중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지독한 빈곤상태에 충격을 받고, 아르벤즈의 이 없는 자를 위한 정책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또한, "민중은 물질적으로 굶주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 굶주려 있다"는 아르벤즈의 사상에 대한 경외심을 그는 일생동안 간직한다.
이러한 경외심을 품고, 그는 드디어 혁명의 실천을 위해 패덴드 순켈에 의사로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에 과테말라의 우익 망명인사인 호세 카스틸료 아르마가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원조받고 군대와 비행기를 동원하여 아르벤즈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일으킨 쿠데타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미국 CIA의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헐벗고 굶주린 민중을 철저히 파괴하는
반혁명 대리공작을 낱낱이 목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과테말라 좌익정부의 전복이 계기가 되어 그는 막스-레닌에 관한 학습을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알게된 것은 가난하고 착취받는 나라의 혁명정부는 계속적인 착취와 수탈을
위해,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자본가 세력에 의해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과테말라 침공을 통해 게바라는 미국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과 제국주의에 대한 엄청난 혐오감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미국의 범죄에 정면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대항하기로 마음 먹는다.

마침내,
"
혁명은 오직 무장봉기로만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Guevara de la Serna)
이 평범한 스페인어 이름의 청년은 후세 휴머니스트이며, 리얼리
스트인 진정 위대한 게릴라 "체 게바라(Che Guevara)"로 다시 태어났다.
"
체(Che)"는 스페인어로 "오!", "어이 친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친숙과 존경을 표현하는 호칭이다.
하지만, "
게바라"""가 붙으면 그 의미는 엄청난 것이 된다.
"
체 게바라"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 바로 격동의 60년대를 온몸으로 뜨겁게 살다간 가장 완성된 사람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실천하는 이성이 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인터뷰가 있어 소개한다. 이 인터뷰는 현재는 행방불명이 된 아르헨티나의 신문기자 호르헤 리카르도 마셋티와의 대화이다.

"나는 아르벤즈 정부의 요직에 앉을 생각은 전혀 없소.
명백한 정치경제적인 침략을 자행한 미국과 미국자본의 횡포에 덩달아 날뛰는 반민족적인
매판자본가들에게 맞서기 위해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하려 했을 뿐이요.
과테말라는 지금이야말로 투쟁이 필요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소."

미국 CIA는 처음부터 심각하게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간섭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가의 거의 모든 나라가 선교사를 앞세운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을 통해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갔다. 과테말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과테말라의 여러 지역이 CIA의
조정을 받고 있는 군대에 의해 폭격을 받았다. 아르벤즈는 피신할 틈도 없었다.
과테말라 쿠테타는 시작되자마자 어이없이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게바라는 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했다.
투쟁을 촉구하기도 하고 무기를 운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게다가 미 CIA의 사주를 받은 과테말라정부의 재판부가 이미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을 결정,공고하였기 때문에, 게바라는 과테말라인 친구 엘 파토호와 함께 멕시코 시티로 도피한다.
이때가 1954년 9월 21일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게바라와 파토호는 어미잃은 새처럼 극도로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게바라는 이 역경을 혁명이론과 마르크스주의, 각국의 민족해방전쟁의 전술을 두루 연구하는 기회로 삼는다.
굶주림과 억압 그리고, 독서를 통해 게바라는 철저한 급진주의자로 변해갔다.


 
가져온 곳: [꿈깡끼꾀꼴]  글쓴이: 가인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