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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 탄생과 진실을 향한 여행

鶴山 徐 仁 2005. 9. 30. 12:26

1. 탄생과 진실을 향한 여행

HASTA LA VICTORIA SIEMPRE (승리를 위해 끝없는 전진을) - Che Guevara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1928. 6. 14 ~ 1967. 10. 9

본 명 :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Ernesto, Guevara de la Serna)
출생지 : 아르헨티나
국 적 : 쿠바
저 서 : 《게릴라전》, 《혁명전쟁 여행》외
추 모 : 1997년 체 게바라 서거 30주년을
맞이하여
Hasta Siempre
Comandante Che Guevara!

(체 게바라 사령관이여! 영원하라!)라는
주제로 헌정앨범이 발표되었다.
앨범명 "
El Che Vive! 1967-1997"
속에 수록된 Carlos Puebla가 부른
체 게바라 추모곡 Hasta siempre
(듣기☞)는 특히 남성적 톤의 애절하면서도 힘있는 선율이 인상적이다.


체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자리오에서 중류층 가정의 미숙아로 출생했다. 아버지는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는 귀족의 후손이고, 어머니 세실리아 데 라 세르나는
독립전쟁 당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모두 노동자와는 거리가 먼 부르조아 계급 출신이었고, 무신론자였으며,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자유주의적 좌파에 가까웠다.
모두 5남매의 자식을 두었으며, 게바라가 맏아들이었다.

어린시절의 체 게바라 에르네스토는 두 살 때 천식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되는데,
이 천식은 그의 일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이 천식의 고통이 후에 그를 의사로 만들었고,
병에 걸려 신음하는 민중을 치료하다가, 이들이 걸린 병마보다,
가진 자들의 억압과 착취가 더 큰 문제임을 인식하여 마침내,
민중해방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불사른 위대한 게릴라 전사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천식에 고통받는 그를 위해 가족들 모두 코르도바
(근처의 알타그라시아)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천식증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초등학교 과정을
어머니 곁에서 자택학습으로 배운다.
비록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그는 활동적이고 자립심이
강했으며, 돈에 대한 집착이 없었고, 옷차림도 자유롭고 활달했다. 그는 고독을 즐길 줄 알았으며, 광적으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프로이드의 저서에 심취했으며,
1941년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문학과 체육과목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후에 그의 이 문학적 역량은 유감없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의 편지와 일기, 연설문 및
저서에서 보여지는 것외에도 회견장에서 자작시를 낭독체 게바라 육성 자작시 낭송 듣기 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당시 스페인 내전에 휘말린 정치적 망명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던 에르네스토는
좌익 파시스트가 득세한 독재국가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상황에 환멸을 느껴
"反 페론"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벌써 이시기에 그는 파시즘적 군사정권에 강하게 반발했으며, 부르조아들의 "부(富)의 독점"
그중에서도 특히, 힘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통렬히 비판했고,
그들을 풍자하는 무언극을 쓰기도 했다.

청년 체 게바라 청년 에르네스토는 특히 여행을 통해서 많은 지식과 견문, 그리고,
후에 혁명을 위한 경험들을 얻게 되는데,
열일곱살 때, 자전거로 아르헨티나의 중부지방을 둘러보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곳을 답사하게 된다.
1947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 진학한 그는 의학을 전공했으며,
급진적 학생운동은 하지 않았고, 다만 그들의 행동을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당시만 해도 그는 행동하는 이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의학을 공부하려 한 것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두살때부터
줄곧 자신을 괴롭혀온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서 였지만, 차츰 나병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즈음 그의 부모님들은 불화끝에 1950년에 이혼하고, 그는 어머니와 생활하게 된다.
그는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을 돕고 학비를 벌기 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한 건설회사
에서 한때 사무원으로 일하며 공부했다.
1951년 그의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데, 북 아르헨티나를 자전거로 일주했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병들고 가난한 인디오 원주민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들과 교분을 나눈다. 같은 해 의사시험에 합격하자, 다시 여행을 떠나는데, 칠레에서 한때 좌파정부를 세워
대통령에 올랐다가 반혁명 혐의로 사형 당한 아옌데(Salvador Allende)를 만나기도 했고,
페루의 나환자촌에서는 한동안 봉사활동에 열중했다.
콜롬비아를 여행할 때는 폭동이 일어나, 시위대로 몰려 잠시 구금되는 헤프닝을 겪기도 했다.
여행은 그에게 남미대륙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을
대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상 파울로 나환자촌에서의 노동을 통해
"
인간들의 사랑과 유대감은 고독하고 절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싹튼다"
소중한 진실을 깨닫는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서 그곳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과 그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알 수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해방에 기초한 인식의 굳건한 토대를 쌓게 되었다.
이러한 소중한 여행으로 인해서 훗날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땅에서도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술회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억압받는 힘없는 민중은 이미 그의 가족이자,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 중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어 마이애미에서 1개월간 더 머물게 된적이 있었는데,
이때 그는 미국의 실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8월에 귀국한 후, 다시 의학공부에 몰입하여 1953년 3월,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평소에 관심 가지고 있던 나병과의 인연으로 <알레르기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피부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만, 중류계급을 보장받는 개업의가 되길 원하진 않았다.
결국 그는 두달만에 흰가운을 벗어 던지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새로운 정권이 수립된
볼리비아로 갔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그는 혁명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가져온 곳: [꿈깡끼꾀꼴]  글쓴이: 가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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