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진실’을 강조했다. 미사여구와 비유법, 법률적 전문용어를 동원했다. 하지만 자기고백에 대한 검찰과 법원, 학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곽노현(57)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9일 구속되기에 앞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읽었던 최후진술이 추석 연휴인 13일까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법대 교수가 쓴 글에 대한 관심이 적잖은 것이다. 검찰은 “팩트 없는 궤변 ” “‘불편한 진실’에 대한 물타기 시도”라고 비판했다.
곽 교육감은 최후진술을 통해 “지난해 10월 말까지 (돈 거래 조건의 이면합의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이후에도 법적·도덕적 의무가 없음을 명백히 하고, 추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2~4월 박명기(53·구속)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준 사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진실의 고해성사’ 차원에서 “(혐의 액수가) 1억3000만원까지 나온 상황에서 2억원을 건넸다고 더 큰 액수를 시인했다”는 주장도 “수사 상황을 전해 듣고 어쩔 수 없이 2억원이라는 액수를 먼저 밝혔다고 본다”는 지적(공상훈 전 서울중앙지검 2차장·현 성남지청장)에 부딪혔다.
그는 “지난해 11월 28일 곽 교수를 ‘긴급부조’하기로 하고 따뜻한 저녁 회동을 가졌다”는 ‘자백’도 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돈을 주기에 앞선 범죄 모의 회동으로 인식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는 “뜨거운 형제애를 느꼈다”고 감회를 피력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실체적 진실을 가릴 수 있는 팩트의 한 부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전문용어를 사용해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면합의는) 권원(權原·법률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근거)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 의사표시의 편의적 결합”이라는 표현은 형사사건인 이번 사안에 적용하기 어려운 민법상의 표현들이다. “박 교수의 자세가 해프닝에 기초한 권리모드에서 형제애에 기초한 구제모드로 바뀌었을 때” “저의 멍에, 저의 십자가” “제 40년 친구와의 우정을 살리는 길” 등의 문구들이 팩트로 승부하는 영장실질심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돈을 준 것이) 단일화를 원했던 민주진보진영의 도덕성을 살리는 길이었다” “불법의 관점에서 보면 2억원은 큰돈이지만 선의의 관점에서 보면 적을 수도 있는 금액” 등은 현실 인식이 떨어진 주장이라는 비판을 초래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자들이 불법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식으로 우회해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행적에 대해 일종의 물타기를 하는 것”이라며 “곽 교육감도 본인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서, 제3자가 보기에는 ‘난센스’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설득력 있는 해명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승재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는 “ 정상적인 항변으로는 영장 발부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구체적 항변보다는 추상적·거시적·현학적 발언을 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14일부터 곽 교육감 등을 재소환해 곽 교육감이 출처 확인을 거부한 1억원 중에 선거 잔금 등 불법적인 자금이 섞여 있는지를 조사할 방침이다.
글=박진석·채윤경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곽노현 영장실질심사 최후진술 주요 내용
- 국가의 법정에서 법적으로 자기부죄의 위험성이 있을지언정 진실에만 충성하고자 했습니다.
- 권원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 의사표시의 편의적 결합이었습니다.
- 박 교수의 자세가 해프닝에 기초한 권리모드에서 형제애에 기초한 구제모드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이 원칙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그러면서 긴급부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 첫눈이 탐스럽게 내리던 11월28일자 따뜻했던 저녁회동은 형제애의 확인 자리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 사자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높은 정직과 진실에의 충성의무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긴급부조(緊急扶助)=긴급하게 남에게 돈이나 물건을 보내서 도와주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