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강정마을
경찰청 기동대 320명, 공사현장 경비 위해 제주도에 투입 대기
野정치인·종교인들 "토벌대다" 지역 민심 자극
16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이곳에서 중덕삼거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승용차들이 지그재그로 세워져 차량 통행을 막고 있었다.해안에 쳐놓은 천막에서 밤을 지낸 해군기지 건설 반대 사회단체 회원과 일부 마을 주민은 교대로 불침번을 서고 짝을 지어 마을을 순찰했다. 이날 새벽이나 오전에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있을 것이란 소문 때문에 긴장된 분위기였다. 날이 환히 밝을 때까지 경찰력 투입이 없자 이들은 모기장과 비닐천막에서 휴식에 들어갔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세력이 3개월째 공사 현장을 점거하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야당 정치인들과 일부 종교인들이 지원에 나서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4일 경찰청이 기동대 320명과 진압장비 등을 제주도에 투입한 데 대해 "토벌대"라며 지역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민노당 이정희 대표와 권영길 원내대표 등은 16일 오전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금 강정마을에는 4·3 공포가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며 "'종북좌파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제주도와 강정마을을 또다시 제2의 4·3 공포로 몰아넣는다면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손학규 대표가 제주도를 방문해 해군기지 반대 목소리를 뚜렷이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당내에서는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조배숙 최고위원, 강창일 의원 등이 강정마을을 방문한 바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야5당 공동 기자회견에서 "제주도민들은 육지에서 병력이 투입된 것에 대해 '토벌대가 도착했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 ▲ 16일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올레 7코스 초입에 자리 잡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 농성현장에서 마을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천막을 치고 길을 지키고 있다. 이날 강정마을에는 경찰 기동대가 투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16일 성명서를 내고 "역사적 상처로 고통받는 지역민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지는 못할망정, 물리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면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은 지난 14일 서울경찰청 기동대 소속 3개 중대(290여명)와 경기도 여경(女警)기동대 30명 등 320여명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현장 경비인력으로 내려 보냈다. 제주해군기지 사업단에서 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공사장 주변에 안전펜스(65m가량)를 설치할 계획인데, 반대 세력들이 몰려들어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이유에서다.
제주경찰청에는 전·의경 7개 중대(600여명)가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해안경비가 주임무이며, 2개 중대(160여명)만 경비 인력으로 활용된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해군기지 공사현장 주변에 전·의경 부대를 배치해 놓고 있는데, 공사중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며 "피로에 지친 젊은 전·의경들이 시위대와 충돌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교대 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