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하원 정치부 차장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2000년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 당시 외교부 북미국장이었다. 우리측의 SOFA 협상 대표를 맡고 있던 그는 같은 해 12월 28일 5년에 걸친 협상을 타결시켰다. 당시 그가 밝힌 소감은 한동안 외교가에서 화제였다. "한·미 SOFA가 그동안 불편한 소파(sofa)여서 앉아 있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번 개정을 통해 큰 불편 없이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소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송 의원이 '편안한 소파'를 만들었다고 확신했던 이유 중 하나는 환경권 조항 신설이었다. SOFA 합의 의사록에 "미국이 한국의 환경법령을 존중(respect)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1966년 한·미 SOFA가 체결된 후 처음이었다. 특별 양해각서도 만들었다. 양국의 환경법령 중에서 엄격한 기준을 따라 주한미군의 환경관리 지침을 2년마다 보완토록 했다. 그가 "환경 문제에 대해 일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국 외교부 장관의 성명을 내는 데 그쳤지만, 우리는 법적인 조항을 만들었다"고 밝히던 모습이 기자의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SOFA 개정 후에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환경에 대한 선언적 문장만 들어가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작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적인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선의(善意)에만 의존할 뿐, 배상 관련 규정을 명문화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1978년 고엽제가 매립됐던 사실이 알려진 후 SOFA 개정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체 면적이 미국의 버지니아주밖에 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환경 문제의 파급력이 크다. 2000년대 들어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여러 미군기지에서 환경문제가 제기됐다. 24일에는 캠프 캐럴에 이어 경기도 부천에 있었던 캠프 머서에도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몇년 전에는 용산 미군기지에서 시작된 한강의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영화 '괴물'이 제작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미국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신속하게 한·미 공동조사를 받아들인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2002년 발생했던 여중생 사망사건의 교훈을 잊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지난 10년간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눈높이 진화는 휴대폰의 첨단화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이를 고려할 때 한국도 최소한 미국과 독일 간의 SOFA처럼 "상대국의 환경법규를 준수(observe)한다"는 규정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독 SOFA는 환경오염 제거 비용의 부담 및 배상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있어 미군들이 상대적으로 이런 문제에 더 주의를 기울여왔다.
한·미 SOFA는 명문화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개정된 것은 두 차례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는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소파(SOFA)'를 만드는 것이 양국관계를 한 단계 더 승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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